폐기도서 _「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여느 때처럼 폐기 예정 도서를 북카트로 모셔와 한 권 한 권 바코드를 찍다가 아주 낯익은 책을 발견했다. 단순한 그림과 여백 많은 글자, 그리고 작가의 이름. 딱 봐도 표지부터가 색이 바랬고 표지 맨 아래에 적힌 출판사명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 아니다. 1977년에 초판, 1990년에 13판으로 발행된 이 책은, 한때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쉘 실버스타인의 책 중 하나인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었다.
출판사는 분도출판사. 책의 예스러운 글씨만큼 이제는 없는 출판사겠거니 했는데 놀랍게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베네딕도(Benedict) 성인의 한자식 명칭인 '분도'를 이름으로 한 분도출판사는, 1909년 독일에서 한국에 진출한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에서 선교의 일환으로 운영해 온 곳이다. 당시 분도출판사에서 '우화 시리즈'로 출간했다가 현재는 시공주니어에서 다시 출간해 판매 중이다. 분도출판사 홈페이지를 방문했더니 이 '우화 시리즈'로 냈던 여러 책들의 재고를 판매 중이었고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은 재고까지 모두 판매되어 절판 상태였다.
어느 때인가 한 번쯤 읽은 기억이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쳐 보았다. 제목에서 보듯 동그란 피자 한 판에서 한 조각이 빠진 모양의 주인공이 길을 떠나 자신의 한쪽을 찾아다니는 내용이다. 그런데 결과가 내 기억과 전혀 달랐다. 나는 단순하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꼭 맞는 한 조각을 만나 완전해지는 것으로 마무리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결국 나에게 꼭 맞는 조각을 찾기는 하지만 너무 꼭 맞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길가의 나비나 벌레들과 노니는 것을 못한다.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었으니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데굴데굴 세상을 굴러다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꼭 맞는 조각과 헤어져 다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길을 떠난다. 에이야 디야, 이런 내용이었다니!
과거의 나는 이 책을 대충 읽고 말았던 걸까. 어쩌면 지금보다 젊었던 그때의 나는 여전히 완벽한 누군가를 꿈꾸었기에 그런 식의 결과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세상을 경험하며 어딘가에 있을 나의 한쪽을 찾던 시기이기도 하니까. 지나고 보니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찾아다니는 나의 한쪽은 정말 진실한 동반자일 수도 있고 진정한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렇게 뽈뽈거리며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진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꼰대 같은 소리려나.
이렇게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20대 때 지독하게 빠졌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두어해 전인 40대에 중반에 읽고 깜짝 놀랐다. 20대의 나에게 완전 어른이었던 레이코 여사가 40대의 나보다 어렸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되게 어른처럼 구네'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쉘 실버스타인의 또 다른 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그랬다. 40대 초반 두 딸아이 육아에 한창 손이 많이 가던 무렵, 이 책을 다시 펼쳤다가 펑펑 울고 말았다. 분명 예전에 읽었을 때도 부모님을 떠올리며 감동했을 터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고 읽은 그 나무의 일생은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어릴 때는 단순히 내 부모에 대한 감사함만을 떠올렸다면, 다시 읽었을 때는 내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갖는 아낌없는 사랑을 알기에 오히려 더 나무의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절절히 와닿았달까. 아이가 나무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도 나무는 가만히 읇조린다. '그래도' 행복했다, 가 아니라 '그래서' 행복했다고.
다시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으로. 이 책의 번역에서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이 빠진 동그라미는 길을 가다 비슷해 보이는 조각을 만날 때마다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른다. 그 신나는 감정의 표현을 구판에서는 '얼씨구 절씨구 에이야 디야'처럼 전통적인(?) 감탄사로 번역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새로 출판된 책에는 어떻게 번역이 되어 있는지 찾아봤더니 확실히 구판보다 싱거운 밋밋한 표현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지만 구판의 번역이 훨씬 동그라미의 캐릭터를 살린 표현 같았다. 흥겨우면서도 정겨운 번역 덕분인지 가까운 외삼촌의 청춘 시절 일기장을 훔쳐보며 실실 웃게 되는 기분이랄까. 이렇게 정다운 책이 어디서건 언제까지나 남아 있어 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