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지 Sep 01. 2023

계약직이어도 괜찮아

첫직장 퇴사 후 경단녀로 재취업하기

첫 직장을 호기롭게 그만둔 나는 두 살 아기를  키우면서 대학원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당초 대학원비를 지원(등록금 및 생활비 일부)해 주시기로 한 시댁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 회사도 사정이 어려워져 월급은 동결되고 인센티브 및 복지도 깎였는데, 아기 키우느라 돈은 여기저기 많이 들어가니 외벌이 생활이 한순간에 쪼들리게 되었다.


퇴사를 왜 했을까.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렇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대학원 공부할 마음은 접고 육아에 전념했다.




아이와 하루종일 같이 보내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다. 회사 다닐 때 아이를 상주 이모님께 맡기고 퇴근 후 잠깐잠깐 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였지만, 간식으로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낮잠 패턴은 어떤지, 잠들기 전 어떻게 칭얼거리는지… TMI를 알게 되면서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애착관계도 돈독해졌다.


그렇지만  아이가 행여 잠이라도 들면, 어김없이 구직사이트를 검색했다.


그 때 인사팀의 제안을 못이기는 척하고 퇴직 대신 휴직을 선택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육대학원 가서 임용고시를 보면 어떨까? 대학 다닐 때 교직이나 이수해둘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볼까? 시험 과목이 왜 이렇게 많아.ㅠ


애 딸린 엄마가 아니라 취업을 앞둔 대졸자처럼, 난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을 바꿔가며 진로를 고민했다. 아무도 나더러 돈벌어오라고 재촉하지 않았지만,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그만둔지 1년 반쯤 되었을까? 하루는 남편이 채용공고를 하나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평소 동경하던 직장이었다. 직원을 대거 채용하고 있었고 자격조건은 딱 알맞게 부합하였다. 수 개월에 걸쳐 3차례의 시험을 보았다. 필기 시험과 2차례의 면접 시험. 그리고 합격자 발표날, 명단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너무 기뻤다. 마침 시댁에서 손자를 돌봐주신다며 재취업을 적극 지원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2년여의 경단녀 생활을 마치고 재취업을 했다. 문제는 '계약직'이라는 것이었다. SKY 출신에 계약직이라니…자존심이 상했다. (지금은 SKY 출신에 백수도 많을테지만, 당시는 사정이 달랐다.) 그 회사에는 SKY 출신이 대다수였고, 우리과 선후배들도 많이 다니고 있었다. 물론 나와는 신분이 다른 정규직으로.


ㅇㅇ씨는 이 회사에 언제까지 다닐지 모르겠지만…

그 때쯤 되면 ㅇㅇ씨는 능력이 뛰어나 이미 다른 회사로 옮겼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마치 내가 능력이 너무 뛰어나 이 회사를 곧 떠날 것처럼 말하곤 했다. 마치 내가 스스로 이 회사에 계속 다니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 정규직 동료는 나한테 상담을 요청해와서는 이런 말도 했다.


저 여친이 있는데, 문제는 계약직이에요.

결혼해도 될지..




남편한테도 비밀이지만, 재취업 초반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심리상담을 받았다. 상담이 없는 날에는 요가학원에 가서 깊게 심호흡을 들이마시곤 했다. 그렇게 안하면 살 수가 없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그렇지만,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재취업한 직장인데...다시는 내가 먼저 사직서를 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규직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나도 정규직에 공채 출신이었거든?

네가 먼저 나가나, 내가 먼저 나가나

어디 두고 보자.


Photo by Olena Sergienko on Unsplash
이전 10화 나는 이렇게 종자돈을 날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