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명절에 대한 이미지, 뉘앙스가 있다.
시골집 할머니의 푸근한 밥그릇.
오랜만에 늘어지게 한잠 자고 일어난 오후.
왁자지껄한 친척 어르신들의 술자리 말소리.
사촌들과의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인사.
차례상에 대한 스트레스 혹은 트라우마.
사람마다 제각각 명절을 떠올리는 관념이 다 다르다.
나에게도 명절에 대한 느낌이 존재한다.
내게 설날, 추석이란 어린 시절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흐르고 지나도 변함없이 계속 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오래된 큰 집의 밥상 같다.
일 년에 딱 두 번 만나러 오면서 이렇게 늦었냐며,
것도 빈 손으로 왔냐며 꾸짖는
엄한 큰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명절이 주는
설렘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차례상에 꼭 올라가곤 하는 약과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들어있는 약과는
제각각 비닐에 힘껏 싸여있었다.
명절 때마다 큰 집에 가면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식탁 앞에 앉아 꾸깃꾸깃 싸인
약과의 비닐을 벗기곤 했다.
그 동글동글한 모양들이 너무 예쁘고 귀엽게 느껴졌다.
주로 차례상에 올라갈 약과였지만
비닐을 까서 찐득해진 손으로
약과를 두어 개는 꼭 먹었다.
그러면 그 찐득한 단 맛이 너무 맛있었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하고 쫄깃한 그 달달함.
본래 약과는 조선시대 궁중 고급 디저트였다고 한다.
약과라는 이름의 첫 글자 ‘약(藥)‘은
정말로 몸에 좋은 약을 뜻했다.
옛날에는 꿀과 참기름이 귀한 약재 취급을 받았다.
밀가루 반죽을 여러 번 접어 튀겨내고
그 층 사이사이로 꿀과 참기름을 듬뿍
스며들도록 한 약과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꾸덕한 식감으로 인기가 좋았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고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과자였다.
만드는 방법도 까다롭고 재료도 너무 비싸서
‘약과 금지령’까지 내렸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 치명적인 럭셔리 디저트였던 것이다.
손바닥 하나에 쏙 들어오는
그 작은 사치스러운 디저트가
조선에서부터 지금까지 핫하게 이어져왔다니.
게다가 약과 금지령까지 있었을 정도로
재료도, 만들기도, 먹기도 사치스럽고 어려웠던
그런 약과를 우리는 아무 때나
사 먹을 수 있는 거였다니.
차례상에 올라갈 약과의 비닐을 벗기며
때론 투덜거리기도,
입에 한가득 배어 물며 즐겁기도 했다니.
그 사실에 감격스럽고 뭉클해진다.
우리의 약과는 더 작고 귀엽고 매번 새로워진다.
유행하는 디저트 트렌드에 맞춰서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더 바삭해졌거나
꽃잎 모양처럼 더 예뻐졌거나
유자, 초코, 카라멜, 흑임자 등
다양한 맛을 집어넣기도 한다.
성수동의 핫한 디저트 가게에서,
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새로운 컨셉의 약과를
마주치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닌 요즘이다.
럭셔리 디저트를 이미 즐길 줄 알아서
금지령까지 받은 바 있던 조상의 후손다운 세태랄까.
그렇게 젊은 사람들에게 약과는 더 이상
어르신들의 고리타분한 차례상 전통 다과가 아니게 되었다.
작고 귀엽고 달달하고 재미있는 선물 같은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즐기는 전통 디저트가 되었다.
약과의 귀여움이 전통을 지켜낸 것이다.
그러니까 귀여워서 살아남았다고나 할까.
귀여움이 있어야 전통은 이어질 수 있나 보다.
약과의 귀여움은 전통을 지켜내고
그 전통을 오히려 새롭고 다채롭게 만들어낸다.
누구에게나 귀여움으로 다가와서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달래주고
바삭하고 찐득한 달달함으로 무장해제 시킬 수 있어야
고리타분한 전통이라 취급받지 않고
설레는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명절이 주는 엄한 꾸짖음이나 고리타분함,
제사상에 관한 가족 구성원들의 속다툼과 균열,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단단한 바위 같은 관습도
결국 귀엽지 않기 때문에 점점 힘이 약해질 것이다.
귀엽지 않은 전통은 결국
아무도 찾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약과의 귀여움이 전통을 지켜낸 것처럼
내가 지켜내고 싶은 우리 가족의,
또 나만의 전통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일 년에 두 번, 커다란 명절인 설날과 추석에
어떤 귀여운 전통을 새로 만들어야
매번 소소하게 설레고 즐거울 수 있을까.
나는 먼저 딸아이에게 명절마다 고운 한복을 입히고
고리타분한 차례상 앞에서 펼쳐지는
엄격한 명절 스트레스 대신
예쁘고 귀엽게 포장된 약과의 태생과 역사,
그 귀여운 전통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함께 바삭하고 찐득하며 쫄깃한
단 맛의 약과를 베어 물며
명절이 주는 설렘을 가득 느끼도록 해주고 싶다.
선조가 대대로 만들고 즐긴 약과를
우리가 지금 귀엽고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듯
전통을 대하는 귀여운 태도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다.
더 이상 명절이 누군가에게
스트레스 혹은 트라우마가 아니라
귀여운 약과처럼 바삭하고 찐득한
단 맛으로만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