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하는 나는...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
비가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는 이 세상이 비만 오는 줄 알겠지.
비가 그치면 무지개도 뜨고 해도 빛나는데, 하루살이는 그것도 못 보고 죽겠지. 자기가 본 것만이 세상 전부인 줄 알겠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하루살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딱 하루를 사는데, 하필 그 하루에 비가 오다니 말이다. 사실 하루살이가 하루만 사는 게 아니라 여러 날을 살며, 유충 상태에서는 몇 년을 산다는 건 훨씬 나중에 알게 됐다. 하지만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라는 이미지는 꽤 강하게 내게 박혀 있었다.
학교 친구들, 직장 동료들. 우리는 그들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심지어 내 평생을 봐오신 엄마조차도 “내 속으로 낳았지만, 네 속은 도통 모르겠다”라고 하실 정도인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다 안다’고 과신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건 ‘나’에 대해서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동창과 대학교 동창, 그리고 직장동료는 나에 대해 하는 말이 각각 다르다. 어떤 이는 나를 활발하고 똑똑한 사람이라 하고, 어떤 이는 나를 소심하고 답답한 사람이라 한다. 정작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안다고 착각하는 것도 하루살이의 세상살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람은 소심한 사람, 저 사람은 우울하고 어두운 사람, 또 저 사람은 항상 밝고 쾌활한 사람. 어느 한 단어로 그 사람을 정의 내릴 때, 우리는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처럼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To say a person is a happy person or an unhappy person is ridiculous. We are a thousand different kinds of people every hour.
– Anthony Doerr <Memory Wall>
어떤 사람을 두고 행복한 사람이라던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매 시간마다 수천 가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같이 있는 사람에 따라, 자기가 겪고 있는 상황에 따라 우리는 수천 가지 다른 사람이 된다. 어제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나는 또 다르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 리가 없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같은 사람들이다. 눈부시게 파랄 때도 있고, 수줍은 듯 붉을 때도 있고, 번개를 내리칠 때도 있고, 잔뜩 흐릴 때도 있다.
그러니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제약을 두지 말자. 쟤는 원래 그래,라고 미리 재단하지 말자. 그저 오늘의 하늘은 어떤지 열린 마음으로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