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도 아닌.

내가 발 디딜 땅은 어디인가

by 불이삭금

원제: Native Speaker

저자: Chang-rae Lee (이창래)

한국어판 제목: 영원한 이방인

특이사항: 한국계 미국 작가 이창래의 첫 장편소설. PEN/Hemingway Award 수상작.

영어소설 난이도:


한국어판 <영원한 이방인> 표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은 '우리' 나라가 아니다. 한국인의 모습이지만 한국을 모른다. 난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미국과 한국, 내가 발 디딜 땅은 어디인가.


헨리 박.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교포 2세다. 당연히 사고방식도 미국식이고, 영어도 완벽한 native speaker이며, 현재 뉴욕의 사설탐정소에서 일하고 있다. 적어도 겉보기에 그는 성공한, 혹은 미국 주류사회에 잘 적응한 재미교포로 2세로 보인다. 허나 그는 미국인 아내와의 사이가 삐걱거리고 있고, 속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돈을 겪고 있다. 저자인 이창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3살 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사실상 그 자신이 재미교포 2세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헨리가 겪었을 혼란과 고뇌가 책 속에 아주 잘 드러나있다.


많은 재미교포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발단은 부모님인 이민 1세대와 그 자녀인 이민 2세대 간의 시각 차이, 관점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간 죽어라 영어만 공부해도 막상 미국인을 만나면 어렵고 떨리기 마련인데, 처음 이민 온 부모님들은 어땠을까.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생과 고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일도 겪고, 수치스러운 일을 당해도 참고, 자존심이 상해도 고개 숙이고, 억울해도 그저 이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고생은 자녀들이 미국에서 성공하면 다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녀들을 닦달한다. 공부하라고, 성공하라고, 돈 많이 벌라고. 꿈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서 판사나 변호사나 의사가 되라고.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한인이 되라고. 아이들은 이런 부모님의 기대와 강요가 버겁다.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드리고 싶진 않다.


부모님은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라면서도 막상 미국 사회를 배척한다. 백인은 우리를 무시한다고 욕하고, 흑인은 범죄자가 많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히스패닉은 무시한다. 아이들에게는 미국 주류사회에 들어가라면서도 자녀들이 '미국 아이들'처럼 성적으로 개방되고 버르장머리 없어질까 봐 노심초사한다.


부모님은 미국 사회에 불신과 불만이 가득하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나라, 성이 개방된 나라, 마약을 버젓이 하는 나라, 총을 쏴대는 위험한 나라.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들은 미국이 자신이 믿고 의지하고 두 발을 디뎌야 할 세상인지, 아니면 늘 경계해야 할 적지인지 알 수가 없다.


남들은 모르는 건 부모님에게 물어보지만, 이들은 부모님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부모님은 미국의 역사도, 문화도, 이 곳의 지리도 모른다. 학교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 생활은 어떤지, 그들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도, 선생님과 면담 날짜가 잡혀도 영어를 모르는 부모님은 꿀 먹은 벙어리다.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도, 기댈 언덕도 되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자식이 커갈수록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의지한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만 돼도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런 편지가 날아왔는데 무슨 뜻이냐? 네가 읽고 가서 해결해봐라." "네가 영어로 해봐라." 관공서나 가게에서 일을 처리할 때도 아이들을 불러다 일을 맡기면서 뿌듯해한다. "이젠 우리 애가 영어 나보다 더 잘해. 이젠 이런 거 다 애들이 알아서 하잖아."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보상받은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도 전에 마치 자기가 가장이 된 것 같은 짐을 지게 된다. 부모님은 그걸 뿌듯해하시지만, 이들은 그것이 버겁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해야 하는 건 어른이다. 온갖 서류와 관공서, 어른들 사이에서 부모님 대신 일을 처리하기엔 이들은 아직 어리다.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해 모른다. 한국 문화나 역사를 배워본 적이 없다. 우리말도 못한다. 영어를 어서 배워야 한다고, 빨리 영어를 익혀 미국에 적응해야 한다고 부모님은 집에서도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하셨다. 부모님은 늘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자식들에게 한국은 애틋함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에게 고향은 '한국'이 아니라 바로 이곳 '미국'이라는 사실을 부모님은 모르는 것 같다.


미국 시민이지만 미국이 낯설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미국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인 것만 같다. 이들에게 미국은 마음껏 뛰어 놀 마당이 아니라 힘겹게 살아내야 하는 정글이 되었다. Korean-American이지만, Korean도 American도 아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상황이 충분히 수긍이 가고, 이해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게 예전의 모습이라 그런걸까. 영어도 더 잘하고, 정보도 더 많은 요즘의 이민 1세대와 그 자녀들은 좀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교포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도, 미국인으로서도 충분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원서 "Native Speaker"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리고 아직 많은 교포들이 주인공의 모습에 공감을 하고는 있겠지만, 이제 이런 전형적인 이민 2세의 이야기는 그만 읽었으면 싶다. 이제는 좀 더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의 새로운 Native speaker 혹은 새로운 Korean-American에 대한 책이 나오길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벌써 나와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작가도 주인공도 한국 사람이라서 한국의 문화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온다. 영어로 읽을 때 "이걸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구나."하고 들여다보는 재미가 꽤 있었다. 영어소설 난이도는 '중상' 혹은 '상'이다.




나 를 깨 우 는 말 들

잠을 깨우는 모닝커피처럼

무지에서, 편협한 사고에서, 무기력한 일상에서 나를 일깨우는 말들.


1.

I know over the years my father and his friends got together less and less. Certainly, after my mother died, he didn't seem to want to go to the gatherings anymore. But it wasn't just him. They all got busier and wealthier and lived farther and farther apart. (p. 72)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와 친구분들은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확실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그런 모임에 더 이상 나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건 아버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버지와 친구분들은 모두 더 바빠졌고, 더 부유해졌고, 점점 더 먼 곳에 살게 됐다.


나와 내 친구들을 생각하게 됐다. 시간이 흐르고, 직장을 잡고, 가정을 가지게 되면서 우리는 모두 더 바빠졌고, 학생 때보다 더 부유해졌고, 점점 더 먼 곳에 살게 됐다.


2.

"So what's her name?" Lelia asked after a moment.

"I don't know"
"What?" I told her that I didn't know. That I had never known.

"What's that you call her, then?" she said. "I thought that was her name. Your father calls her that, too."
"It's not her name," I told her, "It's not her name. It's just a form of address."

It was the truth. Lelia had great trouble accepting this stunning ignorance of mine. (p. 95)


"그래서 그분 이름이 뭔데?" 잠시 후 렐리아가 물었다.

"몰라."

"뭐라고?"
난 그녀에게 이름을 모른다고 말해줬다. 이름 같은 건 아예 모른다고.

"그럼 부를 때 뭐라고 하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난 그게 그분 이름인 줄 알았는데. 네 아버지도 같은 말로 부르시던데."

"그건 이름이 아니야." 난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이름이 아니고, 그냥 부를 때 쓰는 호칭이야."

그건 사실이었다. 렐리아는 내가 어떻게 그분의 이름을 모를 수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평생 '아줌마'라고만 불렀기 때문에 진짜 이름을 모른다는 주인공의 말에 경악하는 렐리아)


3.

I'm afraid that the world isn't governed by fiends and saints but by ten thousand dim souls in between. (p. 257)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건 악당과 성인군자가 아니야. 그 중간쯤에 있는 수천 명의 흐릿한 영혼들이지.


* 여기에 있는 한글 해석은 직접 번역한 것이다.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 세상은 선한가 악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