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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Dec 19. 2020

나니아, 그 마지막

마지막 전투 by C. S. 루이스

나니아 연대기 7편 <마지막 전투>


드디어 대망의 7권 차례다.


나니아 연대기 1편인 <마법사의 조카>에서는 어떻게 나니아라는 나라가 만들어졌는지가 나온다. 마치 태초에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사자 아슬란이 목소리로 세상을 창조하고, 말하는 동물들을 만들어 낸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나니아 연대기의 마지막 7편에서는 그 세계, 즉 나니아의 종말이 그려진다. 온세상의 선과 악이 서로 대항해서 싸우는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 시리즈 전반에 걸쳐서 기독교의 사상이 곳곳에 배어 있는데, 특히 7권에서는 그 색채가 더욱 강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최후의 전쟁 아마게돈을 연상시키는 전투하며, 영악한 원숭이가 순진한 당나귀를 꼬셔서 그에게 사자 가죽을 씌운 뒤 가짜 '아슬란' 행세를 하게 하는 것, 믿음을 가진 자들은 아슬란에 의해 구원받는 모습 등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기독교적 상징들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줄거리


영악한 원숭이 시프트는 어느날 우연히 물에 떠내려온 사자 가죽을 발견한다. 순진하고 둔한 당나귀 퍼즐을 꼬셔서 이 가죽을 쓰게 하고 사자 아슬란 흉내를 내면 어떨까? 사실 퍼즐은 그 가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감히 아슬란 흉내를 낸다는 게 무섭기도 했고, 사자 가죽은 너무 답답하고 더웠다. 하지만 원숭이의 꼬임과 협박에 넘어가 아슬란 흉내를 내기 시작하는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더니, 힘들게 아슬란 흉내를 내는 건 당나귀인데 온갖 권력은 원숭이가 갖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나귀가 말을 하게 되면 아슬란이 아니라는 게 들통날 테니, 원숭이는 당나귀를 헛간에 가둬놓고 아주 잠깐씩만 다른 동물들에게 슬쩍슬쩍 보여준다. 그리고 오직 자신만이 아슬란과 얘기할 수 있다며 혼자 아슬란 당나귀와 독대를 하고, 아슬란의 지시라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사람들에게 명령한다.


이 장면들은 마치 가짜 그리스도(적그리스도)가 떠오르기도 하고, 자신만이 신의 뜻을 온전히 해석할 수 있다면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부를 챙기는 일부 잘못된 목회자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쨌든, 나중엔 그가 가짜 아슬란이라는 게 밝혀지는데, 그런데도 다른 동물들은 그걸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진짜 아슬란이 나니아에 나타난 지는 너무 오래됐다. 진짜가 과연 있기는 있는 거냐? 사람들은(동물들은) 믿음이 없어졌고, 그저 각자의 욕망에만 휘둘려 살게 된다.


그래서.


진짜 아슬란을 믿는 사람들과 가짜 아슬란을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는데.



논란거리


읽으면서도 약간 갸우뚱했던 부분이 있어서 조금 더 자료를 찾아봤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책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우선 먼저 언급할 부분은 인종차별적인 묘사일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금발의 백인으로, 악한 사람들은 머리에 터번을 두른 어두운 피부색의 사람으로 나온다. 사실 저자의 인종차별적인 묘사는 이전 책에도 종종 나왔기 때문에 (분명 잘못된 일이긴 하지만)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내가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수잔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 내용을 조금 언급해야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기 싫으신 분들은 아래 부분을 건너뛰고 다음 구분선이 있는 곳으로 쭉 스크롤을 내리셔도 된다.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고, 나니아는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지만 아슬란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동물들)은 일종의 천국에 머무르게 된다. 지금 당장 전투를 치렀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수백년 전에 이미 죽었던 사람들도, 노년의 병든 모습이 아니라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되살아나 아슬란의 천국에 합류한다. 여기에 펜시브네 남매들 피터, 에드문드, 루시, 그들의 사촌인 유스타스와 그의 친구 질, 태초에 나니아의 건설을 목격했었던 디고리와 폴리까지 모두 영국 런던을 떠나 아슬란의 천국에 와 있다. 펜시브네 네 남매 중 수잔만 빼고.


도대체 왜 수잔만 빠진 걸까? 2권에서는 활을 쏘며 나니아와 아슬란을 위해 용맹히 싸웠던 수잔이 왜 마지막 권에서는 아슬란의 천국에 들지 못하고 혼자만 현실 세계인 영국 런던에 남아있게 된 걸까?


이것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함께 모험을 했던 이들 중 수잔만 홀로 남게 됐는데도, 나머지 세 남매는 이것을 전혀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이들은 수잔에 대해서 '더이상 나니아의 친구가 아니다', '나일론과 립스틱에만 관심이 있다'는 식의 언급을 하며 수잔이 변했다는 걸 암시해준다. 수잔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들은 수잔이 함께 아슬란의 천국에 오지 못한 걸 마치 "그래도 싸지"라는 듯 매정하게 선을 긋는다. 난 이 부분이 무척 아쉬웠다. 단지 수잔이 어린 날의 동심을 잃고 외모와 이성에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로, 즉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처럼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아슬란의 천국에서 내친다는 건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저자인 C. S. 루이스가 7편 이후에 <나니아의 수잔 Susan of Narnia>라는 제목의 책을 한권 더 집필하려고 계획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집필을 하기 전에 사망했고, 그가 8권에서 어떤 내용을 다루려고 했는지는 영원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혹시 그는 수잔이 회개(?)하고 다시 나니아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기획했던 걸까?


나니아 연대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여본다. 영국의 작가 닐 가이먼은 <수잔의 문제 The Problem of Susan>이라는 단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책 속에서 주인공인 수잔이 펜시브네 남매 중 하나인 수잔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정황상 그녀가 수잔 펜시브일 것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이 추측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 단편에서는 흥미롭게도 기차 사고로 모든 가족을 잃고(왜냐하면 나니아 연대기에서 나머지 가족들은 수잔만 남기고 모두 아슬란의 천국으로 들어갔으니까) 홀로 살아남은 수잔이라는 여성이 나온다. 남겨진 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나 할까.




여러 모로 내가 기대했던 결말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할 나니아의 결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찌됐건 시리즈의 마지막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본다. 아쉬움이 남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런 저런 거 신경쓰지 않고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만 따질 아이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 번역판 표지. 사람들과 동물들이 뒤섞인 마지막 전투 장면.

출처: 교보문고


 

영어판 표지. 유니콘의 뿔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모습이 불길한 예고를 하고 있다.

출처: Goodreads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줄


1.

They have chosen cunning instead of belief. Their prison is only in their minds, yet they are in that prison.  

그들은 믿음 대신 영악함을 선택했다. 감옥은 그들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들은 그 감옥 속에 살고 있다.


난장이들은 나니아의 천국에 들어왔지만, 자신들이 여전히 어둡고 좁은 헛간 속에 있다고 믿고 있다. 나머지 사람들과 동물들은 드넓은 들판을 달리며 천국의 삶을 누리는데, 난장이들은 여전히 자기들 눈에만 보이는 상상 속의 헛간 속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자기들이 천국에 들어왔다는 걸 믿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감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2.

One always feels better when one has made up one's mind.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되면 기분이 훨씬 좋아지는 법이지.




제목: 마지막 전투

원서 제목: Tha Last Battle

저자: C. S. 루이스 (C. S. Lewis)

옮긴이: 햇살과 나무꾼

출판사: 시공주니어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시공주니어 출판사 것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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