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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Feb 06. 2021

너무나 빨리 와버린,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 by 폴 칼라니티

죽음.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어느 누구도 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 책의 저자는 뇌신경학 의사였다. 열성적인 엄마의 도움으로 학구열을 불태우던 고교 시절, 문학에 탐닉하며 영문학 교수가 될까 잠시 고민까지 했었던 대학 시절을 거쳐, 그는 결국 의사가 되는 길을 택했다. 의사였던 아빠와 형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문학과 의학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죽음'이었다. 죽음의 의미, 그리고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 우리는 왜 살며, 왜 죽는가. 어쩌면 그가 뇌를 연구하고 파고든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곧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마지막 학기 레지던트를 마치면 그의 앞길은 누구보다도 더 창창할 것이었다. 그에게는 같은 의료인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유명 병원들은 서로 자신의 연구소로 그를 데려가려고 애썼다. 유수 대학을 졸업한 것은 물론이요, 그의 수술 솜씨도 탁월했기 때문이다. 고연봉, 넓은 집, 그곳을 웃음소리로 가득 채울 미래의 자녀들.


그런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이 '폐암'이라는 모습으로 그에게도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누구나 다 그렇게 느끼듯, 그도 이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코피 쏟아가며, 잠도 제대로 못 자가며, 밝은 햇살과 자연을 즐기지도 못하면서 십수 년 동안 달려왔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책과 의료용 시체와 수술실에서 20대를 다 보냈다. 그리고 이제 막 그의 삶이 보상을 받으려 하는데,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폐암 말기라니.



아래에도 첨부하겠지만, 원서와 표지가 거의 같다. 영어 제목이 더 크게 쓰여있어서 원서인지 번역본인지도 헷갈릴 정도.

출처: 교보문고




우리는 끝에 가서야 생각을 한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에서야 비로소


하지만 이 책은 잘 나가던 사람이 일찍 죽어서 안타깝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사는 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제 죽을 날이 몇 달 혹은 몇 년 남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는 고민한다. 남은 나날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신이 사랑하는 일(뇌 수술)을 계속할 것인가. 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인가. 늘 하고 싶었지만 '나중에'라는 핑계로 미뤄뒀던, 책 쓰는 일을 할 것인가. 아이를 가져야 할까. 내가 죽으면 아내가 혼자 남을 텐데, 가족을 남겨줘야 할까. 내가 일찍 죽을 텐데 아이를 갖는 건 이기적인 일일까.


이 책은 저자가 죽기 직전까지 집필한 자서전 겸 에세이이다. 안타깝게도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는 바람에 책을 끝마치지 못했고, 맨 마지막 챕터는 아내가 채워 넣었다. 매 순간 담담하고 솔직하게 글을 써나가는데, 읽다 보면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는 숨결이 바람이 될 순간이 다가오자 비로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이 다가오자 삶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책 덕분에 우리는 죽음을 당면하지 않고도 삶에 대해 생각할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가.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어보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원서 표지.

출처: Goodreads




나를 깨우는 말들


1.

The closest I ever came to vomiting was nowhere near the lab but on a visit to my grandmother’s grave in New York, on the twentieth anniversary of her death. I found myself doubled over, almost crying, and apologizing—not to my cadaver but to my cadaver’s grandchildren. (p. 48). 

내가 토할 뻔했던 것은 실험실 근처에서가 아니었다. 그건 돌아가신 지 20주기를 맞아 뉴욕에 있는 할머니의 무덤에 방문했을 때였다. 나는 몸을 숙이고, 거의 울먹이며 사과를 했다. 해부용 시신들에게가 아니라 그 시신들의 손주들에게.


의과대생들은 해부용 시신을 해부하며 신체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물론 해부를 하기 전에 시신을 기증해준 분들께 감사의 묵념을 하기는 하지만,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철부지 의대생들이 그 진실의 깊이를 알 수 있을까? 해부용 시신 앞에서 별생각 없이 떠들고 장난치고, 그저 '지식'에만 매달려 칼과 톱을 휘둘렀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그는 할머니 무덤 앞에서 뒤늦게 운다. 그 시신들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었을 텐데. 그 시신들에게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생전 그들을 사랑했었을 손주들에게 미안해서 운다.



2.

It was becoming clear that learning to be a doctor in practice was going to be a very different education from being a medical student in the classroom. (p. 63). 

실제 진료를 하는 의사가 되는 과정은 교실에서 의학 공부를 하는 학생 때와는 굉장히 달랐다.



3.

At those critical junctures, the question is not simply whether to live or die but what kind of life is worth living. (p. 71).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는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4.

We decided to have a child. We would carry on living, instead of dying. (p. 143) 

우리는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죽는 대신 계속 삶을 살아나갈 것이다.


아내와 고민하고 토론한 끝에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한 저자. 추후 책이 출간된 후 이 부분에 대해 저자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곧 죽을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이 왜 아이를 갖느냐는. 하지만 당시 그는 새로 시작한 치료약 덕분에 예후가 좋았고, 적어도 몇 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갑자기 약이 듣지 않아서 아기가 태어나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났지만. 만일 자신의 삶이 더 일찍 끝날 거라는 걸 알았다면 그는 아이를 갖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아이를 가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개인적이 결정이라 외부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것 같다.



5.

I got out of bed and took a step forward, repeating the phrase over and over: “I can’t go on. I’ll go on.” (p. 149) 

침대에서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딛으며,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더 이상은 못 해. 그래도 계속할 거야."


폐암으로 인해 점점 쇠약해지는 몸, 약으로 인한 구토증. 그래도 병원에서의 일은 마무리를 해야 한다. 쓰기로 결심한 이 에세이는 끝마쳐야 한다. 매일 아침 그는 이대로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고 체념하다가, 그래도 계속하겠다고 이를 악문다. 매일 아침.



6.

Even if I’m dying, until I actually die, I am still living. (p. 149) 

내가 비록 죽어가고는 있지만, 내가 실제로 죽을 때까지는 난 계속 살아갈 거다.





제목: 숨결이 바람 될 때

원서 제목: When Breath Becomes Air

저자: 폴 칼라니티 (Paul Kalanithi)

옮긴이: 이종인

출판사: 흐름출판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이종인 님의 번역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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