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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Feb 13. 2021

기괴하지만, 동화책입니다.

코렐라인 by 닐 게이먼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작가, 닐 게이먼


이 책의 저자인 닐 게이먼은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의 이야기들은 환상적이고, 기괴하며, 어둡다. 이런 현상은 '동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도 딱히 달라지지 않는다. 그가 쓴 동화들은 죽음과 괴물이 일상적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이 인기가 있고, 뉴베리 상도 받고, 뮤지컬로 변주되기도 하는 걸 보면 분명 묘한 매력이 있음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책들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과 요정들의 이야기인 <스타 더스트>, 부모와 온 가족이 살해된 후 공동묘지에서 유령들에 의해 길러지는 소년 이야기인 <그레이브야드 북>, 영국 지하에 있는 4차원 공간을 다룬 <네버 웨어> 등이 있다. 사실 그의 작품이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늘 "이것만 읽고 이 작가 책은 다시는 읽지 말아야지." 했는데, 4번째 책 <코렐라인>을 또 읽게 됐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작가다. 



원서 표지.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다. 표지만 봐도 뭔가 무서워 보이지 않는가?

출처: Goodreads



 

동화지만 아이들에게 읽히기 꺼려지는


표지부터가 음울한 기운을 팍팍 뿜어내고 있는지라 처음에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읽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건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책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역시 한번 실망한 작가의 책이라도 몇 번은 기회를 줘야 하는 걸까? 


이 책은 '코렐라인'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주인공이다. 그녀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는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는 문이 있다. 예전에는 옆집과 연결된 큰 집이었는데, 가운데 벽을 세우고 두 개의 집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문 뒤에는 그냥 벽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문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뭘까? 밤중에 그 문을 연 코렐라인은 벽이 사라지고 그 문이 다른 곳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 문으로 들어간 곳은 코렐라인의 집과 똑같이 생긴 곳이었다. 마치 평행 우주에 온 것처럼, 그 가짜 집 밖으로 보이는 세상도, 이웃집들도 똑같다. 심지어 그곳에 엄마와 아빠도 계신다! 하지만 이내 코렐라인은 그 '가짜 엄마'와 '가짜 아빠'가 사실은 괴물들이라는 걸 눈치챈다. 그들은 코렐라인의 진짜 엄마 아빠를 납치하고선 코렐라인에게 자신들과 살자고 제안한다.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코렐라인은 '가짜 엄마'에게 역으로 제안을 한다. 이곳 어딘가에 갇혀 있는 자신의 진짜 엄마 아빠, 그리고 예전에 (아마도 수백 년 전에) 이곳에 갇혀버렸을 아이들의 영혼을 모두 찾아내면 자신을 다시 원래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과연 코렐라인은 진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이곳에 갇힌 아이들의 영혼을 모두 찾을 수 있을까?



출처: 다음 영화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가짜 집이 있는, 닫힌 문 너머의 평행 우주에서 유일하게 코렐라인의 친구가 되어주는 건 길고양이다. 원래 세계에서 넘어온 그 고양이는 이 가짜 세계에서는 코렐라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Cats don’t have names,” it said.
“No?” said Coraline.
“No,” said the cat. “Now, you people have names. That’s because you don’t know who you are. We know who we are, so we don’t need names.” (p. 43-44). 

"고양이들은 이름이 없어." 고양이가 말했다.
"없어?" 코렐라인이 말했다.
"없어." 고양이가 말했다. "너희 사람들만 이름이 있지.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거든.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알아, 그래서 우리는 이름이 필요 없어."


그래서 우리는 이름에 집착하나 보다. 자신이 누군지 몰라서.

이름을 알리려 하고, 유명해지려 하고. 



2.


I’m not frightened, she told herself, and as she thought it she knew that it was true. (p. 142) 

난 무섭지 않아, 하고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진짜로 무섭지 않았다.


역시, 자기 최면은 효과가 좋은가 보군.



3.

가짜 집에서 같이 살자고 꼬시는 가짜 엄마. 여기에 머무르면 뭐든지 원하는 걸 다 준다고 유혹하는데.


“If you stay here, you can have whatever you want.”
Coraline sighed. “You really don’t understand, do you?” she said. “I don’t want whatever I want. Nobody does. Not really. What kind of fun would it be if I just got everything I ever wanted? Just like that, and it didn’t mean anything. What then?” (p. 144-145).

"여기에 머무르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가질 수 있어."
코렐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줌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걸 뭐든지 다 갖고 싶은 게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 다 그래요. 진짜로는. 내가 원하는 걸 뭐든지 다 갖게 되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냥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다 가지고 나면, 그 다음엔요?"


똑똑하고 똑부러지는 코렐라인. 하지만 원하는 걸 어느 정도는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못난 어른.. 



4.

벽 너머 가짜 세상 말고, 진짜 세상을 보며 코렐라인이 느낀 것.


 The sky had never seemed so sky, the world had never seemed so world. (p. 166). 

하늘이 이렇게 하늘다웠던 적이 없었고, 세상이 이렇게 세상다웠던 적이 없었다.



5.

닐 게이먼의 책에 인용된 문구.


Fairy tales are more than true: not because they tell us that dragons exist, but because they tell us that dragons can be beaten. —G. K. Chesterton 

동화는 진실된 이야기이다. 용들이 존재한다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용들도 물리칠 수 있다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 G. K. 체스터튼





제목: 코렐라인

원서 제목: Coraline

저자: 닐 게이먼 (Neil Gaiman)

특이사항: 2009년에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졌음.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이 책은 아직 한글 번역본이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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