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읽고싶다며 특별히 한국의 지인에게 부탁해서 책을 받았다. 그런데 받은 후에도 읽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만 놨었다. 책을 읽고나면 그 여파가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거 같아서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영화는 몇 편 봤지만 책으로는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영화도 비교적 최근작들은 보지 못했고, 예전 영화 <꽃잎>, <26년>, <화려한 휴가> 정도만 봤다. 그럼에도 이 주제가 담고 있는 깊이와 무게를 알기에, 선뜻 책을 집어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이 시기에 책을 읽게 됐다.
책은 주인공 소년 동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게 각각 한 챕터씩 할애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호의 이야기를,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치유받지 못한 상처들을 풀어낸다.
처음 등장하는 주인공 동호는 중학교 3학년이다. 아직 어린 이 소년에게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을 한다거나, 독재를 몰아내야 한다는 거창한 신념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군인들이 죄없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함께 있었던 자신의 친구가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어가는 걸 목격했을 뿐이었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눈물을 쏟아내는 그 거리를 달려나가 땅에 쓰러진 친구를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겁이 나서 숨어만 있었던 동호는, 계속 친구의 죽음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친구의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광주도청 상무관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와 형의 말도 무시한 채.
이후의 챕터에서는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했었던 청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각자 어떤 지옥을 뚫고 살아왔는지, 아직도 아물지 않은 그 상처를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특히나 첫 챕터는 2인칭 시점으로 쓰였는데, 계속해서 동호를 '너'라고 지칭하며 서술하는 방식이 무척 독특했다. "너는 바닥에 앉는다. 너는 몸을 기울인다." 이런 식으로. 때로는 마치 내가 동호의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친밀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도 있었고, 때로는 마치 나를 '너'라고 부르며 하는 말인 것 같아 놀랄 때도 있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숨졌던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때로는 책을 덮어야만 할 때가 있었다.단순히 글자를 읽는 행동이지만 그 행동이 너무 힘들어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떨쳐내고 싶어서, 나를 그 자리로 데리고 가는 작가의 마법에 저항하느라 책을 덮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읽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이 글을 썼을까?
(그렇다고 책에 무자비하게 잔인한 장면이 많다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그 비극적이고 슬픈 상황이 피부로 느껴지게 다가왔을 뿐.)
책을 읽고 난 후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 '작가 한강' 편을 찾아서 들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로 설명하는 작가의 말을 들으니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됐고, 책을 쓰면서 굉장히 힘들었을 그녀의 고뇌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신 후에, 이 팟캐스트도 찾아서 들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소년이 온다>에 대한 본격적인 인터뷰는 '작가 한강 2편'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