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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Aug 14. 2021

당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

언테임드: 나는 길들지 않겠다 by 글레넌 도일

나는 치타였어. 그 어떤 우리로도 가둘 수 없는 야생의 동물.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다음 책을 뭘 읽을까 고르다가 인기 도서 목록에 올라와 있는 걸 봤고, 대기 줄이 길어서 책을 읽으려면 무려 6개월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었다. 얼마나 대단한 책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는 걸까? 그렇게 책이나 저자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모른 채 나도 대기줄에 이름을 올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사실은 대기를 걸어놨다는 사실도 까먹고 있었을 즈음) 내 순서가 돌아왔고, 이번에 읽지 못하면 또다시 6개월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책을 펼쳤다.


그리고, 마법이 시작됐다.



출처: 교보문고

영어 원서 표지와 번역본의 표지가 같아서 번역본만 가지고 왔다.

컬러풀한 색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강렬한 표지. 처음 책을 읽기 전에는 너무 산만하게 느껴져서 싫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모로, 대단한 여자


저자는 여러 모로 대단한 여자다. 온갖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봤고, 심지어 그 모습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자신의 본모습을 용기 있게 만천하에 드러냈다. 무수히 돌팔매질당하고, 난도질당할 것을 감수하면서. 하지만 그 용기의 대가는 행복으로 돌아왔다.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그녀는 20대 때 마약을 했다. 그러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정신을 차리고 마약을 끊었다. 아이를 함께 키우기 위해 그때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이자 애아빠와 결혼을 했고, 이후에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가끔 우울증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지만, 나름 건투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끌었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바람이 났다.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다정한 아빠지만 남편으로는 빵점인 이 남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저자는 이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한다. 그런데.


어느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누군가를 만난다. 첫눈에 반한다.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

그렇다. 저자는 그녀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진 순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그녀는 고민에 빠진다.


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난 세 아이들이 있는데. 바람난 남편이 있는데. 이혼을 해야 하나? 이혼을 하고, (꿀꺽) 새로 만난 여자와의 사랑을 인정해야 하나?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드러내야 하나? 교회에서는 뭐라고 할까? 그냥 모든 걸 다 참고, 숨기고, 바람난 남편을 위태롭게 붙잡고 가정을 지켜야 하나?


결국 저자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결심한다. 용기를 내기로 결심한다. 지금 당장 괴롭더라도 그게 더 나은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했고, 첫눈에 반한 그녀와 결혼을 했다. 전남편 사이에 낳은 세 아이는 이 동성 부부가 함께 키운다. 이후 전남편도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이 두 부부는 서로 왕래를 하며 아이들 육아에 함께 참여를 한다. 어쨌건, 그도 아이들의 아빠니까.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더 대단한 내면


그녀의 삶이 미국에서도 그리 흔한 건 아니다. 결혼을 한 후에(비록 남편이 먼저 바람을 폈지만)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하고, 남편과 이혼한 후 동성과 결혼을 하고, 세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이 책에 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참고로, 저자의 동성 아내 Abby Wambach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딴 축구선수이고 꽤 유명한 사람이다.)


어느 날 저자는 세 아이들과 아내, 전남편과 함께 축구 경기장을 찾았다. 고등학생인 딸의 축구 연습을 위해서였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 않은 막간을 이용해 전남편과 전직 프로 축구선수였던 저자의 아내가 축구를 하며 놀고 있었다. 세 아이들은 벤치에 앉아서 그들을 응원했다. 누가 이기든, 이들에게는 아빠와 엄마니까. (동성 결혼을 한 이후 아이들은 저자와 그녀의 아내를 둘 다 '엄마'라고 부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부부가 물었다.

노부부: 저기 축구하는 사람 중에 애들 아빠가 있나 봐요?

저자: 네. (잠시 망설) 그리고 저기에 애들 엄마도 있어요.

노부부: (어리둥절) 당신이 애들 엄마 아니었어요?

저자: 제가 애들 엄마 맞는데요. 저기에 있는 사람도 애들 엄마예요.

노부부: ???

저자: 재혼을 했거든요.

노부부: 아하. (잠시 후 자기들끼리) 근데, 저 여자 유명한 축구 선수 아닌가?

노부부: (저자에게) 당신 전남편이 재혼한 여자가 그 유명한 축구 선수 맞죠?

저자: 그 축구 선수 맞아요. 근데, 전남편이 아니라 제가 결혼했어요.

노부부: ???

저자: 제가 저 여자랑 결혼했다고요.

노부부: ?!?!?!?! (경악)


주변의 오해와 편견, 악담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솔직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는 그녀. 자신이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이 아니라 평원을 누비는 야생 치타라는 사실을 되새기는 그녀. 여성들에게 더 강렬하게 와닿을 책이긴 하지만, 남녀 누가 읽든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에 도움을 줄 책이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My children believe that the shower is a magical portal of ideas. My youngest recently said to me, “Mom, it’s like I don’t have any ideas all day, but when I get in the shower my brain is full of cool stuff. I think it’s water or something.”

“Could be the water,” I said. “Or could be that the shower is the only place that you’re not plugged in so you can hear your own thoughts in there.”

She looked at me and said, “Huh?”

“That thing that happened to you when you’re in shower, babe, is called ‘thinking’. It’s something folks did before Google. Thinking is like… it’s like Googling your own brain.”

“Oh!” she said. “Cool.” (directions)


내 아이들은 샤워를 하는 시간이 좋은 생각이 쏟아지는 마법의 시간이라고 믿고 있다. 내 막내가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 하루 종일 아무런 아이디어도 안 떠오르다가 샤워하러만 들어가면 머릿속에 온갖 멋진 것들이 가득 떠올라요. 아마도 물에 뭔가가 있나 봐요."

난 말했다.

"물일 수도 있지. 아니면 네가 핸드폰을 안 붙잡고 있는 유일한 시간이 샤워할 때니까, 그제야 네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걸 수도 있고."

딸이 나를 바라봤다. "...에?"

"네가 샤워할 때 일어나는 그 일을 바로 '생각'이라고 한단다. 인터넷이라는 게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생각'이라는 걸 했거든. '생각'은 마치... 네 두뇌 속을 인터넷 서핑하는 것과 같은 거야."

딸이 말했다. "와, 멋지네요." 


그래, 잠깐 핸드폰 좀 내려놓고 나도 '생각'이라는 걸 해보자.

... 이 브런치 글만 마저 쓰고...



2.

남편이 바람났다. 남편으로서는 빵점인 이 남자. 그런데 세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만점 아빠다. 내 불행을 생각하자면 이혼해야 하는데, 아이들을 생각하자니 망설여진다. 저자는 조언을 얻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두의 조언이 다 다르다는 걸 발견한 후, 세상에는 문제를 해결할 '단 하나의 옳고 객관적인 해결책'이란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낸다.


Distressingly everyone thought I should do something different. The religious experts insisted that a good Christian would stay. Feminists argue that a strong woman would leave. Parenting articles preached that a good mother thinks only what is best for their children.

All of those different opinions meant that I quite literally could not please everyone. That was a relief. When a woman finally learns that pleasing a world is impossible, she becomes free to learn how to please herself. (know)


정말 괴롭게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두의 의견이 달랐다. 종교 전문가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페미니스트들은 강인한 여자라면 이 결혼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논했다. 육아 관련 기사들은 좋은 엄마라면 오로지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두고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모든 다른 의견들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다. 내가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 그건 다행이기도 하다. 세상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여자는 그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방법을 자유롭게 찾을 테니까.


3.

If you’re uncomfortable, in deep pain, angry, yearning, confused, you don’t have a problem; you have a life. 

만일 당신이 불편하고, 깊은 고통에 시달리고, 화가 나고, 뭔가를 갈망하고, 혼란스럽다면, 당신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다.



4.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 세 아이를 키우게 된 저자. 그런데 그녀가 무려 '여자'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커밍아웃을 하고,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까? 이 사실을 밝히면 그녀의 가족, 친구, 친지, 교회 사람들 모두가 어색해질 텐데. 모두의 안녕을 위해 거짓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Yes, everyone you love will be uncomfortable for a long while, maybe. What is better? Uncomfortable truth or comfortable lies? (terms)

그래,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꽤 오랫동안 불편해질 거야. 하지만, 어떤 게 더 낫겠어? 불편한 진실? 아니면 편한 거짓말?



5.

My children do not need me to save them. They need to see me save myself. I’d quit using my children as an excuse to not be brave and start seeing them as a reason to be brave. (eyes)

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내가 그 아이들을 구해주는 게 아니다. 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내가 나 스스로를 구하는 모습을 보는 거다. 용기 내는 걸 주저하는 핑계로 아이들을 이용하지 않을 거다. 아이들은 내가 용기를 내야만 하는 이유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용기 내는 걸 주저했던 저자. 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용기 내어 난관을 극복하고, 스스로 삶을 헤쳐나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 아닐까? 저자는 아이들을 '핑계'가 아닌 용기를 내야 할 '이유'로 생각하기로 했다. 



6.

저자: Every time you’re given a choice between disappointing someone else and disappointing yourself, your duty is to disappoint that someone else. Your job throughout your entire life is to disappoint as many people as necessary in order to avoid disappointing yourself. 

딸 Tish: Even you?

저자: Especially me. (talks)


저자: 네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느냐 아니면 너 자신을 실망시키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네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거야. 너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만큼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켜야 해. 그게 네 평생을 통틀어 네가 해야 할 임무야.

딸: 그게 엄마라도요?

저자: 더군다나 그게 엄마라면.


살아가다 보면 남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로 자기 자신을 실망시키지 말라고 말한다. 차라리 남을 실망시키라고. 그 상대가 비록 엄마 자신이라 할지라도.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 친구들, 동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자기 자신을 실망시키는 선택을 한 적이 있다면 저자의 이 조언이 뼈에 사무치게 다가올 것이다.



7.

강연을 하러 나간 저자. 강연 말미에 객석에서 한 할머니가 질문을 한다. 

"너도 결혼하고 잘 살다가 동성애자가 됐지. 이혼하고 여자랑 재혼했고. 내 조카도 얼마 전 커밍아웃을 했어. 내가 건너 건너 아는 사람도 동성애자라고 선언했고. 왜 갑자기 모두가 게이가 되는 거지? 이거 전염되는 거니? 그런 게 아니라면 왜 갑자기 너도나도 다 커밍아웃을 하는 거야?"


I don’t think that gayness is contagious. But I’m certain that freedom is. (questions)

동성애가 전염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유가 전염되는 건 확실해요.


갑자기 우리 주변에 동성애자가 많이 보이는 건, 갑자기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동성애가 전염되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 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자유'. 바로 그것이 전염되기 때문이다.  



8.

재혼한 아내와 행복한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린 저자. 그 게시물 밑에 누군가가 댓글을 남겼다. "당신은 참 운이 좋네요."

그럴 만도 하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남편과 이혼하고,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재혼하고, 아내와 세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가족의 지지와 축복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녀는 분명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런데 그 댓글을 보고 그녀가 생각한다.


The braver I am, the luckier I get. (luckies)

내가 용기를 내면 낼 수록, 난 더 운이 좋아졌다.


행운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용기를 냈어도 운이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용기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지금, 당신도 용기를 내어 보자. 





제목: 언테임드: 나는 길들지 않겠다

원서 제목: Untamed

저자: 글레넌 도일 (Glennon Doyle)

옮긴이: 이진경 옮김

출판사: 뒤란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이진경 님의 번역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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