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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Sep 04. 2021

그들은 누구인가?

나를 보내지 마 by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 수상함. 2010년 <네버 렛미고>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17년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 수상함. 2010년 <네버 렛미고>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겉보기엔 평범한데, 뭔가가 다르다


(책 내용에 대한 소소한 스포일러가 살짝 들어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조금의 스포일러도 싫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책의 화자는 캐시다. 그녀는 장기 기증자들을 돌봐주는 일을 몇 년째 해오고 있다. 장기를 기증한 후 몸이 회복될 때까지 병원에서 그들을 돌보는 게 그녀의 일이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한 환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과거 자신이 다녔던 기숙학교 ‘헤일셤’을 떠올리게 된다. 모두가 특별하다고 여겼던 학교, 헤일셤.


친구들과 어울려서 수다도 떨고, 공부도 했던 학교.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캐시가 과거 자신의 학창 시절의 풋풋함을 떠올리는구나 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읽을수록 뭔가가 이상하다. 여느 학교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이 학교에는 아니, 이 학생들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가족’이나 ‘부모님’에 대한 언급이 한 번도 안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커서 뭐가 될지, 꿈 이야기를 하는데, 듣고 있는 선생님이 불편해한다. 불안해한다. 어쩔 줄을 몰라한다. 왜 그러지?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꿈을 가져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장기기증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클론, 복제 인간이었다.



출처: 교보문고

한글 번역판 표지. 표지에 나온 '카세트테이프'는 책 속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나온다. 주인공 캐시와 토미를 연결해주는.



예술품과 마담


이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는 바로 각 학생들이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림이 됐건, 소묘나 조각이 됐건. 이들은 1년에 한 번 자신의 예술품을 전시한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전시품을 구경도 하고, 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예술품을 전시하는 큰 이유는 바로 ‘마담’ 때문이다. 마담은 해마다 전시회에 와서 고르고 고른 작품 몇 점을 가지고 나간다.  그 마담이 누군지, 작품들을 어디로 가져가는지, 왜 학생들에게 그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라고 하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도 학생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뭘까.



출처: 교보문고   

영어 원서 표지. 별로 마음에 드는 표지는 아니다.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면 집어 들고 싶지 않게 생긴. 그저 슬픈 로맨스물 책인 것처럼 보여서. 물론 책 속 내용에 사랑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이건 단순한 로맨스물이 아니니까.



우정과 사랑. 인간의 존엄


복제 인간이지만 이들은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머뭇거리고, 욕심을 부리고, 미안해한다. 그런 이들을 ‘장기 기증’이라는 이유로, 마치 부품처럼 소모해도 되는 걸까? 이들은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질 수 없는 걸까?

요새 한참 동물권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복제인간에게도 복제인간권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출처: 다음 영화

2010년 <네버 렛미고>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과거의 기억 속 한 순간. 외부 인사였던 '마담'은 그때에도 아이들이 제출한 예술품을 고르기 위해 학교에 찾아왔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학교 건물로 들어가던 캐시 일행은 마침 혼자서 밖으로 나오려던 마담과 마주친다.

그런데. 마담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 저 표정은 뭐지? 마치 우리와 옷깃이라도 스치기 싫다는 듯한 저 몸짓은 뭐지?

우리를 경멸하는 걸까? 우리를 싫어하는 걸까? 우리를... 무서워하는 걸까? 


That there are people out there, like Madame, who don’t hate you or wish you any harm, but who nevertheless shudder at the very thought of you - of how you were brought into this world and why - and who dread the idea of your hand brushing against theirs. The first time you glimpse yourself through the eyes of a person like that, it’s a cold moment. It’s like walking past every day of your life, and suddenly it shows you something else, something troubling and strange.

세상에는 마담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널 특별히 미워하거나 네가 잘못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너’라는 존재에 대해 - 네가 왜,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에 대해 -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치는 사람들, 네 손이 자기 손과 스친다는 것조차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말이야. 그런 사람의 시선으로 너 자신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건, 아주 차가운 순간이지. 그건 마치 매일 자기 삶을 살아가는데, 갑자기 뭔가 다른 걸, 뭔가 곤란하고 이상한 걸 보여주는 것과 같아.


난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한순간 내가 불가촉천민이 된 것 같은 느낌.

마담은 왜 그런 행동을 보인 걸까?


2.

What made the tape so special for me was this one particular song: track number three, “Never Let Me Go.” (p. 64)

그 테이프가 내게 특별했던 건 바로 이 한 곡 때문이었다. 3번 트랙. “나를 보내지 마.”


책 제목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나를 보내지 마."

그런데.

‘나’는 누굴까? 누구한테 보내지 말라고 하는 걸까?

상대에게 떠나지 말라고(Don’t go/ Don’t leave me) 말하는 게 아니라, 나를 보내지 말라고(Never let me go) 말하는 그 속마음은 뭘까?



3.

기숙학교 헤일셤에서 유별났던 한 선생님. 어느 수업시간 도중, 아이들은 각자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뭘 할지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하게 됐다. 그러자 선생님이 머뭇거리며 아이들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다.


Your lives are set out for you. You’ll become adults, then before you’re old, before you’re even middle-aged, you’ll start to donate your vital organs. That’s what each of you was created to do.

“Well so what? We already knew all that.” (p. 74)

너희들 인생은 다 정해져 있어. 너희는 성인이 될 거고, 너희가 늙기 전에, 너희가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도 전에, 너희들은 주요 장기들을 기증하게 될 거야. 너희 각자는 그러기 위해서 창조되었으니까.

“그게 뭐요?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데요.”


이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각자 자신이 원하는 꿈을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꺼낸다. 

“너희는 장기 기증을 위해 만들어졌어. (그러니까… 장기를 다 기증하고 나면 너희는 죽겠지... 너희가 꿈꾸는 그런 미래는 없을 거야…)”

그런데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우리도 다 알고 있다고요. 그냥 모른 척할 뿐.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 바꿀 수 있나? 아니잖아요.

어쩌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

그 대답이 너무나 슬펐다.



4.

“We took away your art because we thought it would reveal your souls. Or to put it more finely, we did it to prove you had souls at all.” (p. 238)

“우리가 너희 예술품을 가져간 건 그 예술품들이 너희의 영혼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좀 더 세련되게 말하자면, 너희에게도 영혼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랬던 거야.”


그랬던 거다. 바깥세상에서는, 이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믿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이 학교에서는 그나마 이들의 복제인간권(?)을 환기시키기 위해 이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이들이 만든 예술품을 세상에 보여줬던 거다.



5.

You wouldn’t have become absorbed in your lessons, you wouldn’t have lost yourselves in your art and your writing. Why should you have done, knowing what lay in store for each of you? You would have told us it was all pointless, and how could we have argued with you? (p. 245)

너희는 수업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거야. 예술도, 글짓기도 열심히 하지 않았겠지. 너희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 알고 있다면 왜 그렇게 하겠니? 너희는 아마도 이건 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라고 말했겠지. 그러면, 거기에 우리가 어떻게 반론을 했겠니?


어떤 게 더 잔인할까?

어차피 장기 기증을 하고 죽을 운명이니까, 학교 수업도 듣지 않고, 그림이나 글짓기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몸'만 건강하게 살게끔 놔두는 것.

아니면, 지금 시간을 들여 배우고 연습하고 공들이는 게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 작품이 영원히 남지도 않을 거고, 그 전공을 더 배울 수도 없고, 그걸 직업으로 삼을 수도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아이들에게 수학과 문학을 가르치고, 그림과 글짓기에 힘을 쏟게 만드는 것.

아. 잔인하다.





제목: 나를 보내지 마

원서 제목: Never let me go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옮긴이: 김남주 옮김

출판사: 민음사

특징: 2017년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 수상함. 2010년 <네버 렛미고>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김남주 님의 번역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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