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이삭금 Sep 18. 2021

주의: 책을 읽으면 달리고싶어 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을 읽으면, 달리고 싶어 진다.


예전부터 달리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가끔 ‘꿈은 꿈대로 놔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로망은 로망으로만 놔두는 편이다. 즉, 나한테는 꿈과 로망이 다른데, 지금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루고 싶은 게 ‘꿈’이라면, 내가 감히 도전은 못하겠지만 이루면 좋겠다고 '막연히' 상상만 하는 게 ‘로망’. (사전적 정의는 모른다. 그냥 나 혼자 이렇게 생각할 뿐.)


나이라도 젊다면 모를까 이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달리기는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가도, 불현듯 달리기에 대한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나곤 한다. '달리기'를 꿈으로 놔둘지, 로망으로 놔둘지 아직 결정을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한번 찾아보고 싶었다. 달리기를 하면 뭐가 좋은 걸까? 나이 들어서도 달릴 수 있을까?


그러다가 찾아낸 책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달리기와 소설에 대해 즉, 자신의 삶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두 가지에 대해 솔직하고 꾸밈없이 얘기해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재미있었고, 나도 그처럼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내가 조금만 더 어렸더라도(?) 달리기를 시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게 달리기는 그냥 '로망'으로만 남을 것 같다.



출처: 교보문고

음... 별로 손이 확 가는 표지는 아니다. 저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된 표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용이 있는 행위, 소용이 없는 행위


살면서 소용이 있는, 목적이 있는 행위만 하고 살 수 있을까? 누가 운동을 한다고 하면 흔히 ‘건강을 위해서, 활력 있는 삶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힘들고 시간도 많이 드는 운동을 도대체 왜 하겠어? 건강하게 살기 위한 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분명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고, 삶에 활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거다. 운동을 하니 자기도 모르게 거저 얻어지는 것들. 이 책을 읽다 보면 ‘달리기’는 어떤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한 걸음 앞에 다음 걸음을 내딛는 것, ‘어디’를 가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다리를 움직이는 것’, 숨을 고르면서 터질듯한 허벅지와 찌릿찌릿한 허파와 따가운 햇살과 차가운 바람을 그대로 느끼는 것. 이것은 소용이 있는 행위일까, 없는 행위일까?


소용이 없다면 또 어쩌랴. 소용없는 행위를 하는 것도 인간의 특권이 아닐까?


생존에 필요한 게 아니라도, 승진이나 합격에 필요한 게 아니라도,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도, 그저 즐거워서 하는 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나’를 위해 하는 일.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달리기는 그런 일이었다.



유명한 작가, 명불허전


무라카미 하루키는 유명한 작가지만, 나는 그의 책을 하나도 읽은 게 없다. 대학 다닐 때 하루키를 포함한 몇몇 일본 작가의 책을(그 유명한 <상실의 시대>를 포함해서) 시도했었는데, 너무나 맞지 않아서 모두 중도 포기했다. 그 후로는 일본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다.


이번 에세이집을 읽으면서도 나와 맞지 않으면 어쩌나 살짝 걱정을 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기우였지만. 역시 작가는 작가다. 생생한 묘사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곳곳에 묻어나는 좋은 수필집.


좋은 수필집을 찾는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Once, I interviewed the Olympic runner Toshihiko Seko, just after he retired from running and became manager of the S&B company team. I asked him, “Does a runner at your level ever feel like you’d rather not run today, like you don’t want to run and would rather just sleep in?” He stared at me and then, in a voice that made it abundantly clear how stupid he thought the question was, replied, “Of course. All the time!”

한 번은 올림픽 출전 선수인 토시히코 세코가 막 선수 생활에서 은퇴를 하고 S&B 컴퍼니 팀의 매니저가 됐을 때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내가 물었다.
“선생님 정도 되는 선수도 오늘은 뛰고 싶지 않다거나, 오늘은 뛰기 싫고 차라리 잠을 더 자고 싶다거나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나요?”
그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그 질문이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항상 그래요!”



2.

There’s one thing, though, I can state with confidence: until the feeling that I’ve done a good job in a race returns, I’m going to keep running marathons, and not let it get me down. Even when I grow old and feeble, when people warn me it’s about time to throw in the towel, I won’t care. As long as my body allows, I’ll keep on running. Even if my time gets worse, I’ll keep on putting in as much effort – perhaps even more effort – toward my goal of finishing a marathon. I don’t care what others say – that’s just my nature, the way I am. Like scorpions sting, cicadas cling to trees, salmon swim upstream to where they were born, and wild ducks mate for life.

하지만 한 가지 내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내가 달리기를 잘 해냈다는 감정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계속 마라톤 달리기를 할 것이다. 내가 나이 들고 약해졌을 때도, 사람들이 내게 이제는 포기해야 할 때라고 경고를 할 때에도,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경기 기록이 더 나빠지더라도, 나는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계속해서 많은 노력을, 어쩌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나는 남들이 하는 말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내 태생이다. 난 그렇게 생겨 먹었다. 전갈이 쏘듯, 매미가 나무에 매달리듯, 연어가 태어난 고향을 향해 강을 거슬러 오르고 야생 오리가 생존을 위해 짝짓기를 하듯 말이다.



3.

This might be similar to practicing drumming. You’re made to practice bass drum patterns only, day after day. Then you spend days on just the cymbals. Then just the tom tom… Monotonous and boring for sure, but once it all falls together you get a solid rhythm. In order to get there you have to stubbornly, rigorously, and very patiently tighten all the screws of each individual part. This takes time, of course, but sometimes taking time is actually a shortcut. This is the path I followed in swimming, and after a year and a half I was able to swim long distances far more gracefully and efficiently than ever before.

이건 드럼 연주 연습과도 비슷할 것이다. 매일매일 기본 드럼 패턴만 연습해야 한다. 그다음엔 심벌즈만 며칠 동안 연습한다. 그다음엔 탐탐만….
물론 단조롭고 지루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 어우러지게 되면 탄탄한 리듬을 얻을 수 있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집스럽게, 엄격하게, 그리고 큰 인내심을 가지고 각 파트들을 연습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때로는 시간이 걸리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수영을 하는 데도 난 이런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1년 반 뒤에는 장거리 수영을 이전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4.

I expect that this winter I’ll run another marathon somewhere in the world. And I’m sure come next summer, I’ll be out in another triathlon somewhere, giving it my best shot. Thus the seasons come and go, and the years pass by. I’ll age one more year, and probably finish another novel. One by one, I’ll face the tasks before me and complete them as best I can. Focusing on each stride forward, but at the same time taking a long-range view, scanning the scenery as far ahead as I can. I am, after all, a long-distance runner.
My time, the rank I attain, my outward appearance – all of theses are secondary. For a runner like me, what’s really important is reaching the goal I set myself, under my own power. I give it everything I have, endure what needs enduring, and am able, in my own way, to be satisfied.

올 겨울이면 난 세상 어디에선가 또 다른 마라톤을 뛸 거다. 내년 여름이 오면 분명 어디에선가 또 다른 철인 삼종경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다. 그렇게 계절은 오고 가고, 해가 지나갈 것이다. 난 한 살 더 먹고, 아마도 또 다른 소설을 끝내겠지.
하나씩, 난 내 앞에 있는 일들을 마주할 것이고, 최선을 다해 마무리할 것이다.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 하나에 집중하며, 하지만 동시에 저 먼 곳을 바라보며, 가능한 먼 곳까지 풍경을 감상하며. 어쨌건 결국 난 장거리 달리기 선수니까. 
내 기록시간, 내가 성취한 순위, 밖으로 드러나는 겉모습. 이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거다. 나 같은 달리기 선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스스로 정한 목표에 나 자신의 힘으로 도달하는 거니까.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쏟아붓고, 참아야 하는 일을 참아내고,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만족할 수 있다.



5.

그는 달리기 경주를 할 때 힘이 들어도, 아무리 속도가 느려도, 끝까지 뛴다. 


Some day, if I have a gravestone and I’m able to pick out what’s carved on it, I’d like it to say this:
Haruki Murakami 1949-20**. Writer (and Runner)
At Least He Never Walked

언젠가 훗날에 내 묘비가 세워진다면, 그리고 거기에 새겨질 말을 내가 고를 수 있다면, 난 이렇게 쓰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1949 ~ 20**
작가 (그리고 달리는 사람)
적어도 걸어가지는 않았다.





제목: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원서 제목: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 走ることについて語るときに僕の語ること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Haruki Murakami)

옮긴이: 임홍빈 옮김

출판사: 문학사상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임홍빈 님의 번역이 아니라 제가 영역본을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민'이 이름과 얼굴을 가지게 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