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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Sep 25. 2021

눈을 감아라, 살고 싶다면.

버드 박스: 새장 속에 갇힌 사람들 by 조시 맬러먼

절대로, 눈을 뜨면 안 된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광고하는 영화의 포스터를 봤다. 산드라 블록이 눈을 가리고 있는. 뭔지는 몰라도 굉장히 흥미로워 보였기 때문에, 그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걸 알고는 바로 원작 소설을 집어 들었다. 나는 원체 뭔가에 혹하면 영상보다 책을 먼저 보는 사람이라.


어느 날부턴가 세상에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뭔지는 모른다. 어떤 현상인지, 어떤 생명체인지. 사람인지, 동물인지, 외계인인지.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본 사람들은 모두 미쳐 버렸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 후 스스로도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뉴스 속 괴상한 살인사건보다도 자신의 배가 더 큰 문제였다. 계획에 없던 하룻밤 원나잇으로 배 안에 생명이 생겨버린 것이다. 세상이 뒤숭숭한데, 이 아이를 낳아야 할까?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까? 혼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동생과 둘이 살던 멜로리는 혹시 몰라 집 안의 창문을 모두 가리고, 절대로 창밖을 바라보지 않기로 동생과 약속한다. 그런데, 갑자기 위층에서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황급히 올라가 보니 창문을 가렸던 이불 한쪽이 걷혀 있다. 뭔가를 봐버린 동생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따로 살고 있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으신다. 병원도, 경찰서도, 소방서도. 어느 곳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죽었거나, 도망을 쳤다.


멜로리는 부른 배를 안고, 더 안전한 장소로 도망을 치기로 한다.

눈을 가린 채.



한글 번역본 표지.

출처: 교보문고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과 뭔가 으스스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본다는 것. 볼 수 없다는 것.


어느덧 시간이 흘러 멜로리는 4살이 된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들은 이름도 없다. Girl과 Boy라고만 부른다. 그녀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들이 사는 집 근방에는, 아마도 이 동네 자체에는 이들밖에 살아남은 이가 없을 것이다. 이들은 예전에 쟁여놓은 통조림으로 근근이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집 안에만 있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살 만한 삶일까? 창문과 문은 다 가리고, 어쩌다 문을 열 때면 두 눈을 꽁꽁 감싼다. 하늘도 한번 못 보고, 구름도 못 본 아이들. 그건 어떤 삶인 걸까?


멜로리는 또 한 번 중대 결심을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탈출을 하기로. 4살 된 두 아이를 데리고, 셋 모두 눈을 가린 채, 이들은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전에 읽었던 <Blindness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앞을 못 보는 현상'이 전염되어 온 세상 사람들이 장님이 되었던 세상. <버드 박스>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두들 자발적 장님이 되어 버린다. 창문과 모든 틈을 다 가리고, 집 밖을 나갈 때는 검은 천으로 눈가리개를 한다.


눈이 있지만 볼 수 없다는 것, 봐서는 안 되기에 더욱 궁금해진다는 것. 이 책은 금기와 공포가 섞인 그 묘한 세계를 참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영어 원서 표지. 넷플릭스에서 영화화됐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출처: 교보문고



매력적인 공포 소설, 마음을 후벼 파는 공포 소설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만큼, 영화화가 결정될 만큼 책은 매력적이다.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을 해주고 싶다. 다만, 나 같은 경우는 책 속에 묘사되는 풍경이 너무 살벌하고 메말라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책을 읽다가 종종 덮어야만 했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그 끔찍한 세상이 떠올랐다. 안타까운 그들의 죽음이,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막막한 세상이.

매력적인 만큼 마음을 후벼 파는 소설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소설.

원작 소설과 영화는 내용이 살짝 다르다. 둘을 모두 보고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Is there a point, Malorie wonders, where the clouds in the sky become unreal, and the only place they’ll ever feel at home is behind the black cloth of their blindfolds?

What kind of life is she protecting them for? (p. 4)

멜로리는 궁금했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실재하지 않는 곳이라면, 오직 눈가리개를 해야만 그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면,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녀는 어떤 삶을 위해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걸까?



2.

You are saving their lives for a life not worth living. (p. 5).

너는 아이들을 구해주고 있지만, 아이들은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

파란 하늘도, 예쁜 꽃도, 무지개도, 풀잎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아이들. 언제까지 이렇게 눈을 가리며 살아야 할까?

멜로리가 아이들을 위해 더 안전한 곳으로(먹을 것이 많고, 눈가리개를 풀 수 있는) 탈출하기로 마음먹게 되는 이유.

그런데...

세 사람 모두 눈을 가리고 탈출하는 게 가능할까? 과연 세상에 더 안전한 곳이 있기는 한 걸까?


3.

Malorie is not only afraid of the things that may wade in the river, she is also fascinated by them. Do they know what they do?
Do they mean to do what they do? (p. 57).

멜로리는 강 속에 있는 것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또한 매료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까?
그들이 하는 행동을 의도한 것일까?


4.

Are you a good mother? Does such a thing exist anymore? (p. 73).

난 좋은 엄마일까? 좋은 엄마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생존을 위해 아이들을 훈련시켰다. 밖에서는 절대로 눈가리개를 벗으면 안 된다는 걸,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걸 가르쳤다.

아이들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눈가리개를 벗지 못하도록 혼내고 훈육했다.

물론 생존을 위한 것이라지만... 갓난아기가 답답해하며 눈가리개를 벗으려 할 때 체벌을 해야만 했던 그녀는 자신이 과연 좋은 엄마가 맞는지 자책감에 빠진다.





제목: 버드 박스: 새장 속에 갇힌 사람들

원서 제목: Bird Box

저자: 조시 맬러먼 (Josh Malerman)

옮긴이: 이경아 옮김

출판사: 검은숲

특징: 넷플릭스에서 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로 방영되었다.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이경아 님의 번역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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