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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Dec 21. 2023

어쨌든,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야

<This is Where I Leave You>

제목: This is where I leave you

저자: Jonathan Tropper

한국어판 제목: 당신 없는 일주일



출처: Goodreads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 아들 저드는 부랴부랴 부모님 집으로 달려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슬픈 일이었지만, 그의 삶도 힘들기로는 만만치 않았다.


결혼기념일날 자기 집에서 직장 상사와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했고, 그래서 이혼을 준비하며 별거 중이고, 직장도 때려치워서 백수가 된 저드. 안 그래도 자기 삶이 진창으로 굴러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라 빨리 장례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어머니가 폭탄선언을 한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시바'를 치르겠다고.


유대교 식 전통 장례문화인 '시바'를 치르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집에 머물며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 긴급 재난 상황이니까 한 번 더 말하겠다. '온 가족'이 '한 집'에서 무려 '일주일'을 '함께' 보내야 한다. 살인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준재앙이 시작되는 거다.


출처: 교보문고



거침없는 말솜씨와 역시 거침없는 과감한 패션으로 더 유명한 어머니, 육아에 지쳐가는 누나 웬디, 일 중독자인 매제, 자신 때문에 운동선수의 커리어가 날아가서 자신을 원수 보듯 하는 형 폴, 어디에서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 모를 막냇동생 필립, 필립이 데리고 온 어머니 나이뻘의 여자친구.


이것만 해도 혼란스러운데, 여기에 세 명의 여자가 더 나타난다. 저드의 '아직까지는' 부인인 젠, 예전 여자친구인 페니, 예전엔 저드의 여자친구였으나 지금은 불임으로 고통받고 있는 형수 알리스.


이 숨 막히는 곳에서 저드는 과연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과 공기와 식량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억지로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저드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안고 힘들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시바가 끝났을 때 모든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드라마틱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그는 백수고, 누군가는 헤어지고, 누군가는 비밀을 털어놓고, 누군가는 새로운 비밀을 간직하게 된다.


그래도 그는 생각한다. 적어도 그에게는 아직 선택권이 남아 있다고. 중요한 건 바로 그거라고.


여기까지 봐서 알겠지만, 절망적인 상황들이 꽤나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 있다. 때로는 피식거리며, 때로는 혀를 차며 읽다 보면 엉망진창인 저드의 가족을 통해 '가족'과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게 만드는 책이다.


또한 아무리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라 할지라도, 미래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숨어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제목에 대하여


This is where I leave you는 직역하자면 '이곳이 내가 너를 떠나는 곳이다.'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반드시 '장소'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여기에서 멈추자."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백수가 되고, 바람피운 아내와 이혼을 앞두고 있고, 막 아버지를 여읜 저드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다 털어놓은 뒤. "내가 독자인 너희에게 해 주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야."라는 의미로 말하고 있다.

그 뒤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우리말 제목은 <당신 없는 일주일>이다. 나쁘지 않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직역이 어렵고 의역을 해야 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다만, 원제가 '지금까지는 이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하고 미래를 열어놓는 느낌이라면 <당신 없는 일주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바'를 치르는 딱 그 일주일에만 국한하는 느낌이라 살짝 아쉽긴 하다.





내가 사랑한 문장들


1)

It would be a terrible mistake to go through life thinking that people are the sum total of what you see.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건 엄청 실수하는 거야.


2)

You never know when it will be the last time you'll see your father, or kiss your wife, or play with your little brother, but there's always a last time.
이번이 아버지를 뵙는 마지막일지, 아내와의 마지막 키스일지, 남동생과 마지막으로 노는 것일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항상 마지막은 있는 법이다.


3)

You're terrified of being alone. Anything you do now will be motivated by that fear. You have to stop worrying about finding love again. It will come when it comes. Get comfortable with being alone. It will empower you.
혼자가 된다는 게 무섭겠지. 그래서 뭐라도 하려고 들 거야. 다시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부터 그만둬. 때가 되면 사랑은 또 오겠지. 혼자라는 걸 편안하게 여겨 봐. 그게 널 강하게 만들 거야.


4)

And I just want to tell you, at some point it doesn’t matter who was right and who was wrong. At some point, being angry is just another bad habit, like smoking, and you keep poisoning yourself without thinking about it.
이것만은 말해 주고 싶어. 어느 순간이 되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느 순간이 되면 화를 내는 건 그저 흡연처럼 나쁜 습관에 불과해. 딱히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계속 너 자신을 중독시키는 거지.


5)

We are injured and angry, scared and sad. Some families, like some couples, become toxic to each other after prolonged exposure.
우리는 상처받고, 분노했으며, 무서웠고 슬펐다. 커플들도 그렇지만, 어떤 가족들은 오래 노출되면 서로에게 유독성을 띤다.


6) 

I sit idling in a gas station just before the interstate junction, drawing maps in my head. I can be at the skating rink in ten minutes. I can be back in Kingston in ninety. According to the GPS, I can be in Maine in seven hours and seven minutes.
Penny. Jen. Maine. None of the above.
There are options, is my point.
나는 주간(州間) 고속도로 분기점에 들어서기 전 주유소에서 머릿속으로 지도를 떠올리며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10분이면 스케이트장에 갈 수 있다. 킹스턴 집까지는 한 시간 반이면 된다. 내비게이션에 따르면 일곱 시간 남짓이면 메인 주에도 갈 수 있다.
페니냐, 젠이냐, 메인 주냐. 혹은 전혀 다른 곳이냐.
내 요점은, 내게는 선택권이 있다는 거다.


'아직까지는' 아내인 젠을 용서하고 그녀와 다시 합칠 수도 있다.

예전 여자 친구인 페니와 새롭게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다.

혹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지금 그의 인생은 (겉으로 보기에)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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