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이삭금 Jan 18. 2024

과학적 사고를 탑재한 문과 남자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제목: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저자: 유시민

출판사: 돌베개





깔끔하면서도 과학을 잘 보여주고 있는 표지. 마음에 든다. 출처: 교보문고



과학에 관한 인문학 이야기


나름 과학 교양서를 몇 권 읽었고, 과학에 아주 약간이나마 흥미를 가지고 있다. 교양 프로그램 <알쓸신잡> 시리즈로 호감을 가지게 된 유시민의 글 솜씨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상황. 그러니, 유시민이 과학 교양서를 썼다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냉큼 구매해서 읽어 보았다.


그런데 내가 오해를 한 게 있다. 나는 이 책이 '과학 교양서'인 줄 알았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썼던 여타의 책들처럼 과학에 대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책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물론 책에 뇌과학, 물리학, 수학, 생물학 등을 비롯한 과학 얘기가 빼곡하게 적혀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과학 교양서라기보다 그의 말마따나 과학에 관한 인문학 이야기였다.



운명적 문과는 과학에서도 인문학 얘기를 한다


유시민은 스스로를 '운명적 문과'라 칭한다. 과학 설명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수학은 마치 외계의 언어 같다. 하지만 비단 이런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운명적 문과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과학적 사실 앞에서도 자연스레 문과적 사고를 하고 인문학 얘기로 가지를 뻗는다. 그래서 운명적 문과인 것이다.


혹독한 추위를 버티고 새순을 틔운 나무를 보며 (그 나무가 어떻게 겨울을 견뎠는지 과학적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잘 버텼다고 안도하고, 검은색이 탄소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검은색에서 '중립적인 탄소'를 떠올린다.


굳이 문과냐 이과냐를 나눈다면 나 또한 운명적 문과다. 하지만 같은 문과라도 유시민과 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있지 않겠나. 이 책에서 그가 문과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 내용도 나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좋았다.

아니, 그래서 더욱 좋았다.


과학적 사고를 탑재한 문과 고수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또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문과와 이과가 더해져서 상승효과가 날 때


과학 교양서를 읽을 때는 새로운 사실에 신기해했다. 인문학 교양서를 읽을 때는 내 사고의 깊이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과학적 사고체계를 기반으로 인문학을 바라보자,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일례로 이 책에서는 ESS(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과 TFT(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둘 모두 생태계 안에서 생물들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취하게 되는 전략이다. ('전략'이라고 적혀 있긴 하지만, 그 생명체들이 정보를 모으고 미래를 예측해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식의 전략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직관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책에서 서술하듯, '전략'이란 과학적 사실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빌려 쓰게 된 단어이다.)


여기에 책의 내용을 모두 옮길 수는 없지만, 유시민은 생명체의 이런 전략이 인간들의 군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려 준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서로 선을 넘을 시간


유시민은 자기가 인생과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20대 때 과학을 알았더라면, 헛된 고민의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100% 동의한다.


문과들은 조금 더 과학을, 이과들은 조금 더 인문학을. 서로 선을 넘어 배우고 익히면 좋지 않을까. 사고의 깊이를 더해주고,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며,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올바른 대답을 찾는 방향성을 제시해 줄 테니까.


덧글)

과학에 대한 교양서를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거기에 화학은 없었다. 내가 주로 읽었던 분야는 물리학(고전역학, 양자역학, 열역학), 천문학(별의 탄생, 우주, 죽음), 생물학(진화) 등이었다. 이 책에 나온 화학 내용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그동안은 화학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로 싫어했다. 구독하는 과학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도 화학이 주제로 나오면 건너뛰곤 할 정도. 그랬는데. 화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난 왜 몰랐지? 왜 나한테 아무도 안 알려 준 거지? (물론 알려 줬을 거다. 내가 거부했겠지.)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나도 선을 넘어 화학에 대한 책도 읽어 보고 싶다.






내가 사랑한 문장들


1.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해일과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퇴락해 사라질 운명이다. 자유의지는 그런 곳에 기거한다. 있다고 말하기엔 약하고 없다고 하기엔 귀하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확인하지 못하겠다. 뇌과학을 조금 알고 나니,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p. 100~101)


'자유의지'도 내 오랜 화두였는데, 지금까지는 뇌과학적으로 바라볼 생각을 못 했다. 그저 신이 자유의지를 허락했나 하는 관점에서만 생각을 했으니. 헛짓을 한 셈이다.


2.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기엔 흉하고 절멸하기에는 아깝다. 그 운명이 어찌 될지 나는 알지 못하고 책임질 수도 없다. 단지 나 자신의 삶 하나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애쓸 따름이다. 악과 누추함을 되도록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남은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자. 이것이 내가 뇌과학에서 얻은 인문학적 결론이다. (p. 101)


캬, 멋집니다!


3.

운명적 문과도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감동을 느낄 만한 과학 정보를 들려주었다. 무인도에 책을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그 책을 선택할 것이다. 밤하늘, 별, 바다, 풀, 나무, 새, 구름, 바람, 비가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고독을 견디는 게 수월해질 테니까 (p. 105)


여기에 나오는 '그 책'이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는 봤는데,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다큐멘터리도 좋았으니 - 게다가 유시민도 이렇게 '강추'하는 책이니 - 조만간 이 책도 읽어 봐야겠다.


4.

다윈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 더한 시련을 겪었다. 누구는 진화론을 오용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고, 누구는 진화론을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 이론이라 비난하고 배척했다. 오용한 쪽은 '우파', 배척한 쪽은 '좌파'다. (p. 111)


지금까지는 그저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진화론이 사회에 끼친 영향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5.

유난히 추웠던 겨울, 나는 버드나무의 안위를 걱정했다. 공기 깨끗하고 햇살 좋은 2월 어느 날 늘어진 가지에 연두색 꽃대가 맺힌 것을 보고 나도 몰래 손바닥을 가슴에 대었다. 진부한 표현이라는 걸 알지만, '안도의 한숨' 말고는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 가만히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잘했어. 걱정했어.' 이러는 내가, 나는 마음에 든다. (p. 121)


6.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p. 127)


과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는 대목.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하라. 이렇게 명쾌할 수가!


7.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직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전자, 타인, 사회, 국가, 종교, 신, 그 누구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창틀을 붙잡고 선 채 죽은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p. 128)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허무해진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문장이다.


8.

기후위기와 핵폭탄에서 우리 자신을 구하려면 인류 전체가 협력해야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그 일을 해낼 것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없다. 그래도 무언가 하긴 해야 한다. 우리 자신 말고는 누구도 우리를 구할 수 없으니까. (p. 160)


9.

나는 과학의 사실에서 별 근거 없는 감상을 함부로 끌어내는 습관이 있다. 과학 공부를 해도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문과다. (p. 192)


저도 문과입니다, 선생님.


10.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나는 러셀의 말에 공감한다.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중략)......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길든 짧든 사람한테는 저마다 남은 시간이 있다. 나는 그리 길지 않을 시간을 조금 덜어 이 책을 썼다. 쓰는 동안 즐거웠다. 남들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전부다. (p. 256)


캬, 멋집니다! (이 감탄 분명 한 거 같은데.)

매거진의 이전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