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쟁이 독서가의 별난 책 리스트
‘별난 책 리스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밝혀둘 게 있다. 브런치에 나를 설명하는 글에서도 “책과 영어와 글쓰기를 사랑하는 불이입니다”라고 써놨고, <불이의 책 수다>라는 매거진도 하고 있지만, 나는 명함을 내밀 만한 쟁쟁한 독서가는 아니다. 남들은 다 읽은 베스트셀러도 안 읽은 책이 허다하고, 고전이나 명작도 별로 읽은 게 없다. 어려운 걸 싫어하고, 나와 좀 맞지 않는다 싶으면 읽다 말고 덮어버리는 성격 때문이다. 어떤 책은 너무 어려워서 안 읽고, 어떤 책은 번역투 문장이 눈에 거슬려 안 읽고, 어떤 책은 지루해서 안 읽고.. 한 마디로 책 편식이 좀 있는 편이다.
그나마 읽는 책도 거의 소설뿐이다. 그러니 방대한 양의 책을 읽는 사람이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 사람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정말 존경스럽다. 하지만 내 책 읽는 스타일을 바꾸고 싶진 않다. 어차피 자기계발을 위해 읽는 것도 아니고, 숙제 검사받으려고 읽는 것도 아니고, 나 즐겁고 행복하자고 읽는 거니까. 난 그저 내가 그때그때 구미가 당기는 책만, 소수 정예로 읽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책들 중 좋다고 추천할만한 책은 앞으로도 계속 <불이의 책 수다>에 발행할 생각이다.
엄청난 독서량 같은 거 없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독서도 아니다.
난 그저 행복하려고 읽고 있는, 편식쟁이 독서가다.
그럼 다시 이 글의 주제인 ‘별난 책 리스트’로 돌아와 보자. 책과 관련된 가장 흔한 질문은 아마도 “가장 좋았던/추천하고 싶은/감명받은 책은 무엇인가”라는 말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적고자 내가 지금껏 읽은 책들을 돌아보니, 많은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서 ‘추천리스트 100’ 같은 것은 뽑을 수가 없었다. 또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앞으로 내가 읽게 될 책일 것 같았다. (지금껏 읽었던 책들 중 좋았던 책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앞으로 읽을 책이 워낙 많으니 그중에 더 좋은 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별난 책 리스트’를 뽑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리스트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어~이가 없네~.” 싶으신 분들은 자신만의 ‘별난 책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 그럼 아무도 물어보지 않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나 혼자 재미로 작성해보는 별난 책 리스트. 지금부터 시작한다.
(우리말로 읽은 책은 제목을 우리말로 썼고, 영어 원서로 읽은 책은 제목을 영어로 표기했다.)
1. 내가 처음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읽었던 책.
<닐스의 이상한 모험>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거 같다. 그 당시 내가 즐겨 읽던 다른 책들보다 약간 더 두툼한 책이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밤 12시가 됐는데도 책을 덮을 수 없었다. 기어코 책을 다 읽고 새벽에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학교에서 졸음과 싸우느라 무척 고생했었다.
2. 결말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던 최초의 책
<빨간 머리 앤>
결말이 마음에 안 드는 책들이 종종 있다. 그중 내가 결말에 불만을 가졌던 최초의 책은 바로 <빨간 머리 앤>이다. 앤과 길버트가 사귀길 바랬는데, 책의 결말에서는 그걸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후속작이 있으며, 후속작에서는 결국 둘이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는 걸 몰랐던 나는 왜 이대로 작품을 끝냈냐며 작가를 야속하게 생각했었다. 아마 초등학교 3, 4학년쯤 읽었던 거 같다.
3. 권수가 가장 많은 책
<태백산맥>, <아리랑>
둘 다 대학시절 읽었다. <태백산맥>은 10권, <아리랑>은 12권. 권수는 길었지만 지루하지 않고 정말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다. 그때 내가 읽은 책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거였는데,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빌려 읽는 게 쉽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1권을 빌려 읽었다 해도, 2권을 다 읽은 사람이 반납하지 않거나 반납하자마자 다른 사람이 잽싸게 빌려가면 바로 뒤이어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모든 책을 다 빌려 읽을 수 있었다. 정말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아직 안 읽으신 분이 있다면 추천드리고 싶다.
4. 제일 재미있게 읽은 무협소설
영웅문 시리즈 -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오빠들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 무협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바로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였다. 1부인 <사조영웅전>, 2부인 <신조협려>, 3부인 <의천도룡기>. 모두 각각 8권씩이다. (내가 읽었을 당시에는 그 책이 정식으로 판권을 구입한 게 아닌 해적판이었을 거다. 제목도, 권수도 지금과는 달랐다) 이 <영웅문 시리즈>는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이걸 읽고 난 후에는 다른 무협소설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다른 무협소설들이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 2, 3부를 모두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3부인 <의천도룡기>를 제일 좋아했다. 1, 2, 3부 모두 두세 번씩은 읽었는데, 3부 <의천도룡기>에서 장무기가 ‘증송아지’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긴 채 육대 문파로부터 명교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부분은 아마 열 번도 더 읽은 것 같다. 내용을 안 잊어버리려고 각 등장인물과 이야기 줄거리를 공책에 옮겨서 정리하기도 했다. (그 정성으로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중학교 때 <손자병법>도 읽었는데, 나의 고사성어와 사자성어 실력은 이 <영웅문 시리즈>와 <손자병법>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처음으로 재미있게 완독한 영어 원서.
<The Firm>
영어를 좋아하면서도 감히(!) 영어로 된 책을 읽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당연히 어려울 거라고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읽더라도 짧은 게 무조건 쉬운 줄 알고 <오 헨리 단편집>이나 영한 대역으로 나온 책들만 쉬엄쉬엄 지루하게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는 분이 존 그리샴의 <The Firm>을 읽어보라고 빌려주셨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과연 내가 다 읽을 수 있을까, 괜히 빌렸다가 다 읽지도 못하고 돌려주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가지고만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이게 웬걸.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책이 재미있으니 단어 찾는 것도 귀찮지 않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 읽은 후에는 내가 이렇게 두꺼운 영어책을 완독 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뿌듯했다. 이 책 이후로 영어 원서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6. 나도 영어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꾸게 만든 영어 원서.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영어 원서를 읽더라도 아이들 책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존 그리샴 책으로 시작했으니 계속 존 그리샴의 책을 읽었다. <The Client>나 <The Rainmaker> 같은. 그러다가 이번엔 친구의 권유로 그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영어로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이렇게 묘사할 수 있구나.’하고 영어 글쓰기의 묘미를 느꼈던 것도 이 책이 처음이었다. 영어 문장이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전 7권을 모두 3번씩은 완독 했고, 오디오북으로도 다 들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한 번은 더 읽을 예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희한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전철에서 책을 열심히 읽다가 마침 내릴 역이 돼서 전철에서 내렸다. 내리기 전까지는 책에 코를 박고 읽고 있었지만, 전철에서 내린 후에는 걸어가야 하니까 당연히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책에서 고개를 들자 내 눈앞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승강장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순간 놀라서 멍하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난 조금 전까지 분명 ‘퀴디치 경기장’에 있었는데 갑자기 눈 앞에 서울의 전철역 모습이 보이니까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 내가 책을 읽고 있었구나. 그걸 깨닫자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책을 읽은 것만으로, 마치타 임 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그곳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었을까. (이때는 아직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때라 영화 장면을 떠올린 것도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신기해서 그 자리에 서서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읽었다. 읽는 순간 나는 다시 ‘퀴디치 경기장’에 가 있었다. 마치 내가 직접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책을 덮자, 나는 여전히 신촌역 승강장에 서 있었다.
이 경험은 꽤나 강렬했다.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전철역에서 책 내용에 그만큼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좋았다. 내가 책 읽는 몰입도가 좋았던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묘사가 굉장히 탁월했다. 이 책에 완전히 매료된 나는 나도 이렇게 영어로 멋진 글을 써보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게 됐다. 내가 직접 소설을 쓰건, 이미 써진 다른 이의 소설을 영어로 옮기건간에 재미있고 몰입할 수 있는 글을 영어로 써보고 싶어 졌다. 내 나이 이십 대 중반의 일이었다.
7. 두 번 이상 읽어본 책.
한번 읽은 책은 다시는 안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좋았던 책은 또 보기도 한다. 지금껏 두 번 이상 읽었던 책은 다음과 같다. (어릴 적 읽었던 책들은 제외하고, 성인이 된 후에 두 번 이상 읽었던 책만 포함시켰다. 어릴 때는 읽은 거 또 읽는 게 늘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사실 더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떠오르는 게 없다.)
<Harry Potter 시리즈 7권>, <The Alchemist>, <Tuesdays with Morrie>, <Creative Visualization>
8. 영화보다 책이 확연하게 더 재미있었던 경우.
<About a Boy>
휴 그랜트가 나왔던 영화를 먼저 봤는데, 영화는 그냥 그럭저럭 볼만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책을 읽었는데, 책은 정말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이 내가 저자인 닉 혼비에게 빠져드는 계기가 됐고, 앞으로 영어로 글을 쓰게 된다면 닉 혼비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9. 책 보다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었던 경우.
<Twilight>
영화는 잘생기고 예쁜 배우 보는 맛에 봤는데, 책은 도저히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내가 원래 로맨스 소설을 잘 못 읽는데, 이 책은 완전 오글거려서 정말 힘들게 읽었다. 영화를 봤을 때는 ‘뱀파이어’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책은 완전히 십 대 소녀의 로맨스 소설이었다. 원래는 시리즈를 다 읽으려고 빌렸었는데 1권만 겨우 보고 나머지는 읽지도 않고 반납했다. (사실 영화도 2편부터는 별로였다)
10. 영화를 먼저 보고 재미있어서 책을 찾아본 경우
<반지의 제왕>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극장에 가서 반지의 제왕 1편을 보게 됐다. 영화가 긴 시리즈의 1편이라는 것도 모르고 봤는데, 나는 보자마자 훅 빠져버렸다. 내용이 중간에 끊기듯 영화가 끝나자 다른 사람들은 이게 뭐냐며 웅성거렸지만, 나는 오히려 2편이 너무 기대가 됐다. 이 영화에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책을 읽었는데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책도 정말 훌륭하고 잘 써진 소설이었다. 그 앞 얘기가 궁금해서 <호빗> 책도 찾아봤다. 그 당시에는 소설이 번역된 게 없어서 만화 <호빗>으로 읽었는데, 그것도 재미있었다.
11. 제일 재미있게 읽은 비소설
<Talk like TED (어떻게 말할 것인가)>, <My Stroke of Insight (긍정의 뇌)>
<Talk like TED>는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는 법에 대해 TED 강연을 예로 들면서 설명해주는 책인데, 실질적인 도움도 되고 재미도 있었다. 내가 과연 많은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My Stroke of Insight>는 뇌과학자가 뇌졸중을 겪게 되면서 자신의 몸과 경험을 마루타(?) 삼아서 뇌졸중을 겪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자신이 어떻게 극복하고 치료했는지를 적은 책이다. 그녀의 경험이– 우리의 뇌가 - 얼마나 신비로운가를 깨닫게 되는 책이었다.
12. 베스트셀러인데 나도 좋았던 책
<The Alchemist (연금술사)>
책의 거의 모든 부분을 다 줄 치고 싶었을 정도로 좋았던 책이다.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세 번 정도 읽었던 거 같은데, 읽을 때마다 전에 못 봤던 새로운 것을 보고 깨우치기도 한다.
13. 베스트셀러인데 나는 안 읽은 책. 앞으로도 안 읽을 거 같은 책.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는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해외에서도 꽤나 인정받는 소설가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나와는 뭔가 잘 맞지 않는지, 그의 책이 별로 재미없다. 몇 번 읽다가 포기한 후로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도 그의 책을 읽어보라는 추천을 받았었는데, 아마 안 읽을 거 같다.
14. 읽으면서 너무 힘들었던 책
<세월> 김형경.
20대 중반 무렵 이 책을 읽었는데, 읽을 때 아주 많이 힘들었다. 책이 너무 슬프고, 우울하고, 축 쳐져 있어서 나까지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한동안 참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내가 워낙 깊이 공감하며 책을 읽는 스타일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 책 이후로는 슬프거나 무섭거나 힘든 책은 잘 읽지 않는다.
15. 더 어렸을 때 읽었으면 좋았을 책.
<Catcher in the Rye (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 주인공 홀든이 느꼈을 혼란과 좌절감. 만일 내가 20대 때 이 책을 접했더라면 십분 공감하며 읽었을 것 같다. 어쩌면 인생의 책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나이가 들고 보니, 홀든보다는 홀든 엄마(?)의 입장이 돼서 “아이고, 이 놈아~” 하는 심정으로 읽게 됐다. 책을 어느 시기에 읽느냐 하는 것도 꽤나 중요하구나 생각했다.
16. 나중에 읽어서 다행이다 싶은 책.
<To Kill a Mockingbird (앵무새 죽이기)>
제목만 보고 책이 굉장히 무겁고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읽지 않고 버티다가 나중에 읽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그 많은 함의들과 그 깊이를, 젊은 날의 나는 아마 다 깨닫지 못했을 거다. (내가 젊은 날의 나를 좀 아는데, 분명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다 말았을 확률이 크다.) 묵직한 교훈도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17. 애들 책이라서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의외로 좋았던 책.
<Secret Garden (비밀의 정원)>, <Pollyanna>
<Secret Garden>이라는 책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어릴 때는 읽을 기회가 없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아이들 책이니까, 하면서 전혀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현빈과 하지원이 나오는 드라마로 더 익숙한 제목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어릴 때 읽었으면 좋았을 걸, 조금 아쉽기도 했다.
<폴리애나>도 나온 지 오래된 책이라, 그저 영어 공부나 하자는 심산으로 읽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주인공 폴리애나처럼 ‘always grateful, always glad’ 하려고 노력 중이다.
18.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제목이 기억 안 나는 책.
틱낫한
온갖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20대 시절, 틱낫한의 책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나를 일깨워줬었다. 내가 인터넷상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불이(不二)는 ‘나와 온 우주가/다른 사람들이/온 세상이 둘이 아닌 결국 하나다, Oneness’라는 의미로 지은 것인데, 틱낫한의 책을 읽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게 됐다. 그럴 정도로 틱낫한의 책을 좋아했는데, 세상에나, 책 제목이 기억 안 난다. 줄잡아 서너 권은 읽었는데, 그 책들은 이사를 하고, 또 미국으로 오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인터넷에서 틱낫한의 책 제목을 검색해봐도 이걸 읽었는지, 저걸 읽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도 제목만 기억나고 내용을 모르는 것보다 제목은 잊어버렸어도 그 내용이 가슴에 남아 있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면서 애써 저질 기억력을 위로하고 있다.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는 확실히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다른 책들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에 적은 것 말고도 더 많은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지만 내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고, 사람들의 ‘안물 안궁’ 리스트를 굳이 더 길게 쓸 필요도 없을 듯하여(이미 충분히 길지만) 이만 줄이고자 한다. 책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그래, 그랬었지’하며 잠깐이나마 과거의 추억에 빠질 수 있어서 좋았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별난 책 리스트’를 작성해보면 어떨까 제안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리스트를 작성했으니, 이제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