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t nursing
"이 말이 영어로 이거였구나."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영단어. 친구들 앞에서 잠깐이나마 으스대고 잘난 척할 수 있게 해주는 영어단어.
오늘 잘난 척할 영어 단어는 wet nursing이다. 가만있어보자, Wet은 ‘젖은, 축축한’이라는 뜻이고, nurse는 ‘간호사’라는 뜻이니까 wet nurse면.. 으응??
잠깐만!! 여기에서 괜한 오해를 받기 전에 설명하자면, nurse는 ‘간호사’라는 뜻 말고도 ‘유모, 아이 돌보는 사람, 젖을 먹이다, 수유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wet nurse는 명사로는 ‘유모, 다른 사람의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돌봐주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동사로는 ‘유모가 되다, 유모가 되어 (엄마 대신) 젖을 먹이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동명사 형태인 wet nursing이라고 하면 이게 바로 ‘젖동냥’이 되는 것이다.
젖동냥은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서구에서도 엄마가 아프거나 죽었거나 혹은 기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젖을 줄 상황이 안 될 때 젖동냥을 했고, 어떤 이들은 젖을 주는 유모를 아예 고용해서 곁에 두고 살기도 했다. 태양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루이 14세도 젖을 주는 유모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엄마 젖을 못 먹고 자랐으니 슬프겠다고? 하지만 젖동냥이 마냥 슬프고 안된 일이기만 한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었건, 선택에 의해서건 그 부모들은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일 테니. 이런 부모의 마음과 사랑을 헤아릴 수 있다면 단순히 엄마 젖을 못 먹었다고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심청이가 젖동냥 때문에 효녀가 되진 않았겠지만, 앞 못 보는 아버지가 젖동냥을 해가며 자기를 키워준 그 마음을 알았기에 더욱 효심이 깊어지지 않았을까.
There was nothing Tom could do for the baby. He needed milk to survive, and there was none: no villages where Tom could seek a wet-nurse, no sheep or goat or cow that could provide the nearest equivalent.
톰이 아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기가 살아남으려면 젖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젖동냥을 할 마을도 없었고, 그나마 젖과 비슷한 우유를 줄 양이나 염소, 소도 없었다.
- Ken Follett의 <The Pillars of the Earth> 중에서
친구: 너 기사 봤니? 미국에서 애 엄마가 갓난아기만 놔두고 가출해버려서 아기 분유값을 구하려고 도둑질 한 아빠 말이야.
나: 응. 아빠도 불쌍하고, 아기도 불쌍하고. 물론 도둑질 한 건 잘못한 거지만.
친구: 그러게. 우리나라였다면 심봉사처럼 젖동냥을 다녔을 텐데. 하긴, 요즘 세상엔 그것도 어림없지만.
나: 서구에도 젖동냥을 하던 문화가 있어. 젖동냥을 영어로 wet nursing이라고 하거든. 태양왕으로 유명한 루이 14세도 젖을 주는 유모가 따로 있었대.
친구: 그렇구나. 역시 넌 모르는 게 없어.

나: 살도 찌고, 몸은 찌뿌둥하고. 운동을 해야 하는데.
친구: 나 요새 아침마다 수영 다니잖아.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아.
나: 수영 얘기하니까 심청이 생각이 난다.
친구: 왜?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수영 얘기하는데 왜 심청이가 생각나??
나: 심청이가 수영을 할 줄 알았다면 인당수에 빠졌어도 살아났을 거 아니니. 심청이 얘기하니까, 또 젖동냥이 떠오르는구나. 너, 젖동냥이 영어로 wet nursing인 거 알고 있었니?
친구: (정색) 나 수영하러 갈게. 잘 가.
나: 야, 어디 가? 수영은 아침에 하는 거 아니었어?

* 주의) 밑도 끝도 없이 잘난 척을 할 경우 주위 친구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