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은 이해 못 해
* 아래 이야기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한 내용입니다.
무언가를 밟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등 뒤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방 안이 아수라장이 됐다. 널브러진 택배 상자, 브랜드 쇼핑백, 가격표도 떼지 않은 물건들이 보였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남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 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며칠 후 카드 이자 연체 독촉장을 본 남편이 폭발했다.
"지현아, 이게 뭐야? 카드 대출까지 받았어? 내가 준 생활비는 다 어디 썼어?“
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 버튼을 누를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함, 몇 초 만에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는 쾌감이 일상이 되었다.
화가 풀리지 않은 남편이 새로 산 물건들을 강제로 중고 거래 앱에 올렸다. 물건이 팔려나갈 때마다 상실감이 밀려왔다. 애써 모아둔 것들을 남에게 넘길 때마다 가슴이 찌르듯 아팠다.
억지로 물건을 다 정리하고도 지현은 여전히 충동구매 욕구를 느꼈다. 스마트폰을 켜면, 수십 개의 쇼핑몰 광고가 쏟아졌고 그녀의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쓸어내렸다. 신상품을 보면 다시 심장이 뛰었다.
그러다 옷장 틈에서 미처 팔지 못한 브랜드 지갑을 보았다. 한때 그렇게 사고 싶어 했던 물건이었는데,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한참 지갑을 들여다보던 지현은 천천히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쇼핑 중독과 마약 중독이 작동하는 원리는 같다
국내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서 쇼핑 중독 유병률이 남자는 13.5% 여자는 16.5%로 나타났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4.1~15.5%로 나타났다.
쇼핑 중독과 마약 중독이 작용하는 원리는 같다. 이전과 같은 즐거움을 느끼려면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해 점차 쇼핑 횟수와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쇼핑 중독을 없애려면 ‘구매를 유혹하는 자극’에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쇼핑 자극’이 없으면 ‘쇼핑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든 소비자가 상품에 접근하도록 판매자들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 TV홈쇼핑, 온라인 쇼핑몰, 할인판매 전단, 이벤트 행사 등이 모두 위험 요인이다. 차단하고 피하는 데 한계가 있다.
쇼핑 자극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도 충동구매 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겠다.
부부가 협의하여 생활비와 용돈은 현금으로만 주고받는다. 카드는 신용카드를 없애고 한도가 있는 체크카드만 사용한다. 이렇게 카드 한도를 조절하면 충동구매를 줄일 수 있고, 예산 내에서 소비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쇼핑 충동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결재를 지연하면 중간에 충동이 식는다. 쇼핑하고 싶을 때마다 대체할 행동을 미리 정해둔다. 예를 들어 ‘물건을 사는 대신 15분 동안 산책하기’ ‘쇼핑몰 대신 도서관이나 카페 가기’ ‘5일 후에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남편과 함께 구매 결정하기’ 등의 방법이 있다. 더불어 쇼핑을 대체할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취미 활동을 하면 소비 욕구가 점차 약해진다.
남편과 함께 상품을 정리하면서, 안 쓰는 물건들을 직접 중고 거래 앱(당근마켓, 번개장터 등)에 올려 판매한다. 상품을 판매하면서 무분별한 쇼핑 습관을 반성하게 되고, ‘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경험을 쌓게 된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왜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하는지 스스로를 직시해야 한다. 스트레스와 외로움 때문인지, 어린 시절 가난을 보상받기 위해서인지, 젊은 시절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인지… 대부분 경험했겠지만 물건에 대한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쇼핑 중독은 채워지지 않는 심리적 불만과 불안을 물건을 삼으로써 잊으려는 행위다.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만족할 때 쇼핑 중독은 저절로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