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카버와 소주 2잔

- 소설보다 삶

by allwriting Mar 20. 2025

카버는 현대 미국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단편보다 훨씬 짧은 글을 주로 써서 미니멀리스트라고 불리지만 카버는 그 말을 싫어했다. 카버는 실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들이 사용하는 말로 썼다. 그래서 문장도 짧고 읽기 쉽다. 하지만 그 짧은 글 아래, 여백 속에 해일처럼 엄청난 감정이 휘몰아친다. - 그래서 카버의 글을 읽으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세계에 도착하는 느낌이 든다.    

 

그를 소개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카버에게 더욱 매료되었다. 카버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8살에 결혼해 두 살 어린 아내와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면서 글쓰기를 배웠다. 공사장 인부, 정원사, 청소부... 세탁소에서 일할 때는 덜덜거리는 세탁기 위에 노트를 올려놓고 글을 썼다. 그러다 한계를 맞았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죽기로 결심했다. 

     

난 아홉 살이었다

평생을 술 근처에서 살았다

내 친구들도 마셨지

하지만 걔들은 술에 지지 않았다.

카버 <우리 모두중에서     


누구도 없는 데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술만 마셨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 마셨다. 그런데 누워있는 머리 위로 빛 한 점이 떠돌아다녔다.  

   

“그 빛을 잡으려 쫓아다니다 보니 소설가가 돼 있었어요.” 후에 그가 한 말이다.     


카버는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내게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다. 그처럼 짧고 쉬운 문장을 쓰려고 노력했고 군더더기를 삭제하려 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삶이었다.  

   

카버처럼 우리 집도 가난했다. 나는 지금은 ’달동네 박물관‘이 있는 인천 수도국산 판자촌에서 자랐다. 월세방 한 칸에 7명이 살았다. 초등학생 때만 6번 이사를 했는데 점점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월세가 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자 마침내 멈췄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한 집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술뿐이었다. 나도 어려서부터 술맛을 알고 컸다.     


중학생 때까지는 사람이 다 평등한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아니었다. 전 학년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공고로 들어갔다. 더 이상 육성회비 때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공고에 다니면서 사는 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교회를 다녔는데 여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특수고에 다니는 친구가 인기를 독차지했다. 호떡 장사를 하는 엄마처럼 내 몸에서도 기름 냄새가 났다.    

 

그런 차별은 견딜만했다.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니까. 괴로운 건 따로 있었다. 중학생 때까지 잘 나가던 성적이 공고에서는 중간을 넘지 못했다. 1학년 때는 전공 상관없이 줄질(야수리)을 배웠는데 내가 깎은 쇠는 울퉁불퉁 늘 오차 한도를 넘어섰다. 손으로 쓸어도 보고 하다못해 침까지 발라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밤에도 혼자 남아 줄질을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집에 왔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카바이드 불을 밝힌 포장마차가 있었다. 아껴 둔 버스비를 내면 주인이 말없이 소주 두 잔을 따라주었다. 그 술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쓰레기장 옆에 서 있는 소나무를 맨주먹으로 후려치다 어느 날 학교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서울 대학교에 들어갔다. 

    

이렇게 써놓고 읽어 보니 나는 카버의 글보다 그의 삶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술과 불빛, 그 주위를 퍼덕이며 날던 나방이처럼 빛을 그리워했던 모양이다. 회사 다니면서 술과 고기는 맘껏 먹게 되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 빛이 없었다. 카버를 읽으며, 소설을 쓰면서 나는 또다시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이전 03화 첫 글쓰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