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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시나리오의 차이

- 시나리오 학원에 가다

by allwriting

첫 책 성공에 고무된 나는 바로 다음 소설 쓰기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순수소설이었다. 전문 서적 하나 내면 순수소설 한 편을 출간하기로 마음먹었다. 5개월 동안 열심히 썼다. 소설을 완성하자마자 출판사 사장에게 원고와 함께 메일을 보냈다. 사흘이 지나도록 출판사 사장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출판할 거예요?”

내 질문에 출판사 사장은 가타부타 말이 없이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몇 번을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술이나 한잔합시다.”

우리는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장은 내 잔에 계속 술만 따를 뿐 내겠다, 말겠다 분명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장은 부산 사람이었다. 마치 나훈아 씨의 ‘아아라예’ 노래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내 니를 우째하꼬 모릅니더

거라먼 누가 아노 모릅니더

모릅니더 모릅니더 얼굴 붉히던

첫사랑이 그리워진다


둘이 어지간히 술에 취했을 무렵 사장이 말했다.

“출판할 정도의 소설은 아닙니다.”

사장과 헤어지고 돌아와 원고를 읽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다시 읽었다. 내가 내린 결론도 사장과 같았다. 수준 미달이었다. 이걸 책으로 내자고 한 내가 부끄러웠다.


첫 책 출간의 기쁨도 잠시 나는 고민에 빠졌고 먼저 글쓰기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글쓰기 실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기로 결심했다.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모든 대학을 뒤졌지만, 문창과 야간반은 없었다. 실망해서 스크롤하는 데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영상 시나리오 학원’

읽어 보니 영화 시나리오를 배우는 곳이었다. 여기는 야간반이 있었다. 때맞춰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입학 신청을 했다. 그만큼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충무로에 있는 학원에 가서 입학원서를 내고 모여서 30분간 교수가 내 준 주제로 글쓰기 테스트를 한 후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입학했다. 내가 들어간 ‘기초반’은 6개월 과정으로 매주 금요일 7시에 수업이 있었다.


수업 첫날 퇴근하자마자 허겁지겁 전철을 타고 학원으로 달려갔다. 중세 시대 성이 아니라 그 안에 죄인을 가두는 허름한 옥탑처럼 생긴 건물 2층이 교육 장소였다. 앉으면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의자에 살며시 엉덩이를 걸치고 둘러보니 전부 어려 보였다. 양복을 입은 중년은 나뿐이었다.


머리가 허옇게 센 분이 들어와 자신을 주임교수라고 소개했다. 이력을 들어보니 몇 편 유명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분이었다. 첫 시간은 신입생들이 자기소개를 했다. 앳된 얼굴처럼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취직하지 않고 글쓰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솔직하게 회사원인데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다음 시간에 교수가 이론 강의를 하고 마지막 시간에 시나리오를 나눠주었다. 시나리오는 소설과 달랐다. S#, NAR, F.I, F.O 같은 생소한 단어가 보였다. 교수가 읽어 보고 의견을 말하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다음 주부터는 여러분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한 사람씩 이런 식으로 합평할 겁니다. 자기 차례인 사람은 학생 수만큼 시나리오를 복사해서 나눠주세요.”


내 순서는 맨 뒤였다. 성이 ‘한’ 씨인 게 다행이었다. 다음날 퇴근하자마자 배낭을 메고 교보문고로 갔다. 제목에 ‘시나리오’라고 쓰여 있는 책을 20권 넘게 샀다. 출퇴근 길에,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허겁지겁 읽었다. S#, NAR, F.I, F.O 같은 용어와 쓰는 법을 이해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설과 시나리오는 달랐다.


소설이 그 자체 완성품이라면 시나리오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설계도다. 이 차이는 컸다. 소설은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게 하려고 묘사를 많이 하지만 시나리오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건 감독의 영역이다. 주인공의 몸동작 등을 설명하는 지문이 있지만 그 또한 감독과 배우가 이해할 정도로만 짧게 쓴다. 따라서 시나리오의 대부분은 ‘대사’였다. 가장 큰 차이는 ‘심리 묘사’였다. 소설에서는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그럴 수 없다. 선물을 사주거나, 친구에게 고백하는 등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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