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혀의 길
시나리오 발표날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소재조차 찾지 못했다. 혹독한 합평 과정을 본 지라 잘 쓰고 싶었다. 일요일 동생이랑 술을 마시는데 우스갯소리를 했다.
“형, 내 친구 창렬이 알지?”
“알아.”
“그 자식이 여자를 되게 밝혀. 술 취해 돌아오는데 공원 놀이터에 웬 여자가 그네를 타고 있더래.”
“그래서?”
“술 취한 김에 그 여자 옆에서 그네를 타면서 여자를 꼬셨대. 놀랍게도 입을 맞추는데도 반항하지 않고 가만있더래. 그래서 손을 잡고 아파트 뒤 잔디밭으로 갔대.”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창렬이는 아파트 잔디에서 여자와 했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옆에 웬 여자가 자고 있더래. 그제야 어젯밤 일이 생각나 여자를 보니 더러운 옷을 입은 냄새나는 거지였대. 놀라 일어나 가려고 하는데 여자 얼굴이 이상하더래.”
“어떻게?”
“얼굴은 검은데 하얀색 선이 그어져 있더래. 자세히 보니 어제 자기가 혀로 핥은 부분만 깨끗해진 거래.”
이야기를 듣다 배를 잡고 웃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원효대사의 해골 물이 떠올랐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원효는 동굴에서 잠을 자다 잠결에 목이 말라 그릇에 담긴 물을 들이켠다. 다음날 원효는 동굴이 파헤쳐진 무덤이었고 어제 달콤하게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임을 발견한다. 그 일을 겪고 원효는 깨달음을 얻는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젯밤과 오늘 모두 똑같은데, 어째 어제는 단물 맛이 나고 오늘은 구역질을 나게 하는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어제와 오늘 사이 달라진 것은 물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다. 진리는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당시 나는 선불교에 심취했었다. 알 듯 말 듯한 선문답이 재미있었다. 대나무에 던진 항아리 조각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를 읽고 몇 시간씩 대나무에 돌을 던지다 온 적도 있다. 그나마 내가 이해한 선불교의 핵심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유심소작’과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일체유심조’였다.
선불교의 6번째 스승인 혜능을 좋아해 [육조단경]까지 읽었다. 보통 위대한 책 뒤에만 ‘경’ 자를 붙이는데 불교에서 일반인이 쓴 책으로는 유일하게 ‘경’ 자가 붙었다.
어느 날 사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두 스님이 서로 논쟁했다.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라고 말하고, 다른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라고 주장했다. 서로의 주장만이 오갈 뿐, 말싸움이 계속됐다. 이때 육조 혜능이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두 스님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학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지만 철학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인식하는 주체가 없다면 깃발의 움직임을 알 수 없다. 이렇듯 선불교는 ‘생각’ 자체를 경계한다.
나는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와 원효의 이야기를 결합해 <혀의 길>이란 시나리오를 써서 발표했다. 합평 때 매서운 공격은 없었다.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해서인지, 시나리오가 괜찮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6개월 기초반 과정이 끝나면 전문반으로 간다. 이때 기초반에서 가장 우수한 시나리오를 쓴 한 사람을 교수들이 선발해 전문반 등록금을 면제해 준다. 최종 결선에 나와 영희의 시나리오가 올랐다. 내심 돈 없는 영희가 되기를 바랐고, 영희가 선발됐다. 영희에게는 좋은 일이 또 있었다. 제작사 보조 작가로 취업했다. 나는 영희가 잘 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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