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 속의 글

- 영업사원에게 보내는 편지

by allwriting

3개월이 지나니 해야 할 일이 손에 잡혔다. 상무와 나는 우리 방식대로 파격적으로 일했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지점 간 ‘매출 목표’ 조정이었다. 월말이 되면 본사에서 다음 달에 팔아야 할 목표가 하달된다. 이 목표가 기준이 돼 매출 달성률이 정해진다. 목표를 적게 받으면 달성률을 높일 수 있지만 늘 숨이 턱에 차도록 목표가 내려오고, 조정은 꿈도 꿀 수 없다. 이 목표를 본부에 속해 있는 4개 지점에서 해내야 한다.


본사에서는 본부별 목표 외에 지점별 목표도 보낸다. 지점별 목표는 본부에서 조정할 수 있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불만을 품은 지점에서 격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 지점은 A 상품을 잘 팔고, 나 지점은 B 상품을 잘 판다. 만약 가 지점에서 A 상품을 더 팔겠다고 목표를 넘겨받고, 대신 나 지점에서 B 상품을 더 팔라고 합의하면 서로 강점을 살릴 수 있어 두 지점 모두 좋다. 하지만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A상품 목표와 B상품 목표의 교환 비율을 한쪽에서는 1:1로, 다른 쪽에서는 1:2로 자기 지점에 유리한 쪽을 고집해서다.


몇 번의 다툼과 합의 결렬 모습을 보고 나는 전략을 바꿨다. 목표를 조정하는 회의를 평일 낮, 숲 속에 있는 영양탕을 파는 장소에서 했다.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정자에 앉아 술이 몇 잔 오가다 보면 마음이 열린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 무렵 지점별 목표 조정 회의를 시작한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빠르게 목표를 조정한다. 곧 주문한 영양탕이 나올 시간이고 어차피 조삼모사, 시시콜콜한 이야기 빨리 마치고, 모처럼 평일의 무릉도원을 음미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무는 대형 설계사를 대상으로 주로 ‘음식 시책’을 실시했다. 목표를 달성한 설계사를 초청해 자기 돈으로는 가볼 수 없는 음식점에서 고급 요리를 대접했다. 그래서 이름만 들었던 전 세계 유명 요리를 먹어 봤지만 나는 회식이 잘 진행되도록 살펴야 해서 음식 맛을 느낄 수 없었다. 회식이 끝나면 돌아와 라면을 끓여 먹었고 그게 더 맛있었다.


영업소장 시책과 여사원 시책은 내 담당이었다. - 점포별로 수납을 맡은 1~2명의 여사원이 있다. 지점 소장단 회장들이 요구하는 시책은 주로 자기 돈으로는 쉽게 갈 수 없는 ‘룸살롱’이었다.

“거기는 비용 처리가 안 돼.”

“내가 영수증 만들어 올게요.”

“나라에서도, 회사에서도 하지 말라는데 하지 말자.”

“그러면 목표 못할 수도 있어요.”

늘 목표를 가지고 협박했다.

“그러지 말고 합법적으로 돈 쓸 수 있는 데를 제시해.”

다음날 소장단 회장이 와서 희한한 장소를 제안했다.

“여기가 어딘데?”

“사슴과 곰을 키우는 식당이에요.”

“여기서 뭘 먹는데?”

들어보니 살아있는 사슴과 곰에 주사기를 꽂고 피를 마시는 곳이었다. 말만 들어도 끔찍해서 돈만 대주고 가보지도 않았다.


여사원은 자필 서명 등 청약서 품질 보증을 높이는 시책을 했다. 시상식을 야외에서 했다. 벚꽃 흩날리는 월미공원, 꽃이 흐르러 지게 핀 장미공원... 그런 데서 표창장을 읽고 상무가 시상식을 하면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내가 담당한 뒤로 우리 본부 여사원은 전국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시상식이 끝나면 횟집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여사원들이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마셨다. 상무는 좋은 사람이었다. 술 취한 여사원들을 자기 차를 태워 집에까지 데려다주게 하고 자기는 택시를 타고 갔다. 여사원 시책이 끝난 다음 날은 늘 차 창문을 모두 열고 다녔다. 누군가 오바이트를 해 토한 냄새가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노력 덕분인지 전국에서 2위까지 올라갔다. 여기까지 온 이상 1위를 하고 싶었다. 지점에 내려갔다가 애를 업고 편지를 쓰는 설계사를 보았다. 왜 편지를 쓰는지 물어보았다.

“고객들이 손 편지를 좋아하세요.”

“하루에 얼마나 쓰는데요?”

“매일 30장 이상은 써요.”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와 설계사 실적을 보니 신인치고는 꽤 성적이 좋았다. 나는 설계사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영업을 잘하는 비법’이라는 제목으로 전체 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부터 영업을 잘하는 설계사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해서 이틀에 한 번꼴로 메일을 보냈다. 보통 하루에 50통 이상의 메일이 날아오고, 설계사들에게도 20통 정도의 메일이 가서 다 클릭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업을 잘하는 비법’은 클릭률이 높았고 설계사들에게 좋은 정보를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많이 들었다. 상무도 ‘굳 아이디어’라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 글들이 내게는 글쓰기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숨 쉴 구멍이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글쓰기 연습을 계속하고 싶었다.

keyword
이전 18화일과 글쓰기 병행의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