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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글쓰기 병행의 어려움

- 6시 50분에 울리는 전화

by allwriting

시나리오 학원 전문반을 마치고 연구반을 신청해야 할 무렵이었다. 연구반은 학교로 치면 대학원이었다. 시나리오 쓰기를 업으로 할 사람만 신청했다. 나는 연구반 신청을 고민했다.


회사에서는 교육을 총괄하는 부장이 바뀌었다. 평판을 들어보니 독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매주 금요일만 학원 수업이 있어 6시 정시에 퇴근했는데 6시 50분에 전화가 걸려 왔다. 그날 하루 실적을 묻는 등 시시콜콜한 내용이었다. 7시에 수업이 시작되니 마음이 급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매주 금요일 6시 50분에 전화가 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부장이 내가 학원에 다니는 걸 알고 있고 방해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기로 연구반을 지원했는데 바로 다음 주에 인천본부로 발령받았다. 수강 연기는 되지만 취소가 안 돼 100만 원 넘는 돈이 사라졌고 허겁지겁 인천본부로 가야 했다. 인천본부는 인천에 있는 4개 지점을 관할할 목적으로 새로 생긴 본부였다. 가보니 사옥 한 층이 텅 비어 있는데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룹에 있던 상무가 본부장으로 사흘 후에 오니 그전에 구색이라도 갖춰놓아야 했다. 부랴부랴 총무팀에 전화했다.

“본부장님 오면 바닥에 돗자리 깔고 업무 봐야 할 상황입니다. 의자, 책상은 언제 옵니까?”

이어 인사팀에 전화했다.

“설마 본부를 나랑 상무님 둘이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요?”

인사팀에서는 지점에서 비서 한 명, 대리 한 명을 차출해 쓰라고 했다. 지점장들에게 전화했지만 모두 내 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마음은 급한데 거절 당하니 화가 났다. 본부는 인사와 재정을 총괄한다. 내가 갑이면 갑이지 을은 아니었다. 사옥에 있는 인천지점으로 내려갔다.

“사람 한 명 내주면 인사팀에서 바로 신입사원 보내준답니다. 만약 안 보내주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비서 한 명만이라도 달라고 통사정하자 지점장이 3명의 이름을 불러줬다. 3명을 30분 단위로 불러 면담했다.

“이러이러한 일을 하는데 할 수 있나요?”

내 인사 원칙은 간단하다. 하겠다고 대답하면 뽑고 할 수 없다거나 망설이면 뽑지 않는다. 3명 중 1명만이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다음 영업소장을 하는 대리에게 전화했다. 알고 있는 후배였다.

“너 영업소에서 죽 쑤고 있다며? 이리 와라. 내가 챙길게.”

“지점장님이 허락 안 하실 텐데요?”

“그건 내게 맡겨.”

지점장을 설득해 허락을 받았다. 오늘 중으로 인수인계하고 다음 날부터 본부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3명이 모여 급하게 준비해 본부장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사흘 후 그룹에서 상무가 왔다. 다행히 직원을 배려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상무와 호흡을 맞춰가며 계획을 세웠고 지점장 전체 만남을 가진 후 다음 달 초 전 영업소장이 참여하는 월례 회의를 했다.


그럭저럭 한 달을 보내고 월 마감을 마쳤다. 실적이 전국 9개 본부 중 꼴찌였다. 앞이 깜깜했다. 영업 부서에서는 ‘실적이 인격’이란 말이 금언처럼 통하던 때였다. 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본사 마케팅팀장이 술 한잔하자며 불렀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팀장이 말했다.

“계속 실적이 이러면 너랑 상무는 끝이야. 그룹에서 왔다고 봐주는 거 없어.”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데 마음이 무거웠다. 나야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모시는 사람이 그런 말을 듣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바빠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 상무와 함께 사택에서 생활했다. 상무에게 마케팅팀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완곡하게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상무가 말했다.

“모레 새벽 4시에 전 지점장과 점포장을 대회의실로 소집해. 현황 브리핑을 간단히 하고 등산하며 마음을 다지게 하자.”

모레면 토요일이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래도 되는 시절이었다.


새벽 등산하고 돌아온 달 9개 지점 중 5위를 했다. 글쓰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매달 마감이라는 돌덩이를 굴려 올리는 생활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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