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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영 Jan 20. 2020

비만이 나에게 남긴 것들:인간 심연에 있는 이야기.

살을 뺀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본 글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담입니다. 조언이나 방법론에 관한 글이 아니니, 그냥 비만에 대한 에세이로서 읽어주세요:)


92kg 때 꽉 끼었던 옷.
살을 빼면 온갖 좋은 일들이 일어난대!

살만 빼면 옷을 사주겠다, 돈을 주시겠다, 심지어 쌍꺼풀 수술을 시켜주겠다. 등등 이제 100kg가 다 되어가고, 소아 비만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도비만으로 자라나는 나를 보면서 집안 어른들이 하신 소리다. 나를 정말 아끼신 외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살이 쪘다고 부모님 앞에서 우시기까지 하셨다. 지금이나 그 때나 나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그저 소심하고 황당하게 있었을 것이다.

그 시기쯤이었다. 내가 왕따라는 것을 당했던 시기 말이다. 안 그래도 없던 사회성이 점점 떨어져 가고 학교에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있는 그대로를 부정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때 절식 다이어트로 10kg 정도 빼기도 했는데, 요요가 왔다. 집에 오면 혼자 이른 저녁을 먹고 어머니께서 사 오신 분식을 먹고 숨어서도 먹었다. 먹는 행위로 채워지지 않는 허한 마음을 채워보려고 했던 것 같다. 먹고 토하기도 하고, 토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식이장애는 이때쯤 시작된 것 같다. 식욕 조절을 못했으니까 말이다.


사회의 일원 아니라 아웃사이더처럼, 늘 떨이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처럼 지내다 보니, 스스로가 무기력 해졌다. 팀 의식이 사라져만 가고 잘 돼도 내 공이라고 생각 못하고, 일이 못 되면 불평을 하며 불만을 표시했었다. 늘 투덜거렸다. 실패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한 방에 잘 되면 된다는 한방 주의(?)가 생겼다. 프로젝트를 차곡차곡 성공시켜본 사람이라면 느끼지 못할 그런 위험한 생각이다.(여담으로 지금도 복권을 사지 않으며, 작가로서 단번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이유가 한방 주의의 과오를 버리기 위함이다.)

패배주의도 짙어서 뭘 해도 안 될 거라는 무기력감과 뭐라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전신을 짓눌렀다. 마음이 이렇게 무너지니, 신체는 말할 것도 없이 망가져 간다. 비만은 우리 몸의 기둥인 척추의 변형을 일으킨다. 그리고 에너지를 전달하는 혈관의 능력을 저하시킨다. 해독작용을 하는 간을 망가트리며 대사 능력을 저하시킨다. 나는 호흡이 불안정했고 체온을 조절하지 못해 수족냉증이 생겼다. 이렇게 큰 문제들 말고도 생리가 불규칙했으며(3개월 이상 생리가 나오지 않음), 튼살과 처진 살이 생겼다. 그리고 허벅지가 쓸려 못 입게 된 바지도 많았다. 꽤 오랫동안 운동에 대한 욕구가 없었으며, 불면증을 겪기도 했다.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피해의식이었다. 내가 피해를 줬을 거란,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받았을 거란 망상에 가까운 생각들은 나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타면 2인석 안쪽 자리를 일부러 앉지 않았다. "내가 나올 때, 옆자리 앉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자리 밖으로 못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로 살을 빼기 전까지는 일행이 있지 않고서야 2인석에 앉지 않았다. 이처럼 사소한 생각들부터, 나를 옥죄었던 많은 피해의식들이 있었다.

그리고 비만인에 관한 편견으로부터 싸워야 했다. "너의 관리 문제가 아니냐(아님, 환경과 호르몬 문제임.)", "적당히 먹어라.(예나 지금이나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있는 겁니다.)", "고기 같은 기름진 거 먹지 마라.(아직도 이 편견과 싸우고 있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 "게으르다.(나는 맞음. 그렇지만 만인의 비만이 게으름의 원인인 것은 아님.)" "운동해라.(싫은데요./물론, 지금은 바디 쉐이핑 좋아합니다.)" "안 씻을 것 같다.(논리 무)", "냄새난다.(맥락 없음)", "못생겼다(???)", "배 터져 죽겠다.(제가 맘껏 먹어봤는데요. 배가 터져 죽지는 않습니다.)"

내가 비만이 된 원인은 내가 양육된 환경이랑 학업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스트레스와 식단을 관리함에도 요요가 올 수 있다. 올해 22세, 아직 독립을 못했고 아직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비만은 호르몬 문제다. 당신의 의지 탓이 아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비만에 관여한다. 그리고 크게는 거주 환경이나 작게는 습관들을 바꿔주지 못하면 폭풍요요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너무 커진 옷. 84kg와 74kg.

그래서 나는 살을 뺀다고 해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은 모르겠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느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죽음을 간절히 원했던 내가, 오늘만은 살아봐야겠다는 희망을 품기까지 다이어트는 정말 좋은 시작점이 되었다. 일 년 동안 갈고닦은 좋은 습관과 마음가짐으로 좀 더 살아봐야겠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40살에는 나에게도 좋은 커리어 하나쯤은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바뀐 것은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지금은 고시 준비하느라 바쁜 동생, 물심양면 나의 다이어트에 신경 써주셨던 할머니, 그리고 늘 뜨뜻한 희생적인 사랑을 주시는 우리 엄마. 내가 늘 봉사활동하고 싶은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식구들 등등 그리고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나는 독자분들께 꽤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변변찮은 글이지만, 응원의 말도 남겨주시고 하트도 주시고, 무엇보다 시간을 내어서 이 글을 본다는 것이 감동이다. 글을 쓰지 않은(절필) 시간들이 길어 내 글이 기술적으로 절대 좋은 글이 아님에도, 고군분투하는 청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신다는 것이 참 신기하면서도 좋다. 우리는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힘을 내어서 이 에세이를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나 자신이 "끝까지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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