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의 소중한
# 스무 번째 해
계절을 지나고 지나 나의 앨리스는 스무 번째 해 중심에 서 있다.
성년의 날이지만 재종반에서의 사투로 짧은 시간 동안 차 안에서 꽤 깊은 잠이 들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남편이 준비해 둔 장미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마무리 공부를 하기 위해서 서두르는 모습에 나도 서둘러 꽃 정리를 해 두었다.
퇴근길 동네 꽃가게에선 빨강 장미가 다 팔리고 없어서 핑크색 장미들로 스무 송이를 사 들고 온 남편의 마음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몇 해 전 언젠가부터 앨리스의 성년의 날은 장미 꽃다발과 예쁜 선물을 줄 거라고 마음먹고 있었던 남편이다. 하나뿐인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온전히 담긴 장미송이들을 바라보니 아침에 잠시 뵙고 온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빠도 스무 살이 되었던 나의 그 시절에 남편과 같은 마음이셨을까?
그 시절에 아빠는 참 젊고 건강하셨는데 그때의 내 모습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빠의 건장하셨던 모습이 선명하다. 앨리스의 성년의 날 의미로움을 노인이 된 아빠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오늘이다.
# 성실함의 이해
앨리스의 극악무도한 성실함은 사실 나의 유전자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그대로 닮아 너무나 잘 알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그 절반의 부지런함을 갖춰도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인생의 절대적인 힘.
성실함이라는 무기를 유지하도록 지켜보고 있다.
늦되도 성취를 해 내는 능력은 성실함이 절대 약해선 안되니까 말이다.
체력의 한계도 느끼고 계속적으로 생기는 오류도 겪고 있는 요즘의 앨리스는 이런 귀한 시기가 있음으로써 성장해 가는 게 눈에 보인다. 감사하고 귀중한 날들이다.
# 바람의 시간
봄바람은 원래 살랑살랑 불어와 파릇해진 잎사귀들에 기대어 나부끼는 것일 텐데
올해의 봄바람은 유독 강렬하게 느껴진다.
봄비라기엔 장마철의 빗줄기처럼 굵어 호우주의보를 끌어내더니 말이다.
봄이라는 계절은 못 미더운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더 아쉽고 오래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강렬한 뙤약볕이 시작될 테지만 어쩌면 봄스럽지 않았던 올해의 봄은 흔적이 더 남겨질 것 같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질 가까운 미래에 오늘의 봄바람이 새겨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