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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아는 한 가지 마음속 단어_11

당황하다

by 맑은날의 무지개

2008년 3월 5일

내게 처음으로 차가 생긴 날이다.

그리고 그 주 토요일 준비를 마친 차를 만났다.

그 당시 인천에 살았기에 부평 대우 대리점에서 차를 받고 처음으로 새 차 고사를 영원사원이 같이 해주고

여의도에 있는 결혼식에 부랴부랴 운전해서 갔다.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래야만 했을까..?


운전석 비닐도 안 벗긴 채로 달려간 여의도는 주말이어서 그나마 차가 적어서 다행이지

초보에게는

높은 건물들만으로도 난이도가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네비가 알려준 곳으로 들어가 주차를 하다가

오른쪽 측면 범퍼를 주차장 벽에 긁고 나니.. 이 건물이 아니었다.

[당황하다] 말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몰랐고 한편으로는 누군가 와서 책임을 물을까 봐 쩔쩔매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미 식을 시작되었고, 기껏해야 하객 1을 맡기 있는 나이지만

그마저도 하객 경험이 적었던 나는 하객 1의 역할에 실패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주차장 출구를 찾았다.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기억도 안 나고 다행히 늦게라도 하객 1의 역할을 할 수 있음에

한숨 돌리고 나니

집으로 가야 할 일이 걱정이었다.


다시 한번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래야만 했을까..?


누가 신경 쓴다고 첫날부터 운전을 할 생각을 했는지

주차장을 향해 내려가는 길이

거짓말 같았다.

주차장에 내 차가 있을 거라는 그저 상상이길 바라는 순간이었지만

거짓말은 현실이었고

나는 가야만 했다.

당황한 마음은 변함없었지만 모른 척 차를 두고 가기엔

우리 만난 첫날이라 예의를 지키고 싶기도 했다.

다행히 그날

예의를 지키려는 필사의 노력으로 더 이상 상처 없이

아주 천천히 집에는 도착했고,

그 날이후 몇 번에 고비에도 옆차선과 앞뒤로 민첩하고 능숙하게 운전하시는 분들만

만난 덕분에 사고 없이 은근슬쩍

초보 딱지를 뗄 수 있었다.


지금도 물론 혼자 가끔씩 긁고 다닌다.

반짝이던 휠은 속살을 드러내며 날카로운 모습이 되었고

"안돼 안돼!!" 라는 듯 소리치는 후방감지에도

"괜찮아~ 너 좀 극성이잖아~~ " 하다가

쿵하며 도색이 벗겨지기도 한다.

[당황하다]라는 마음은 더는 담겨있지는 않지만

당연하다는 생각도 없으니 가끔 씁쓸한 마음으로

상처 난 곳을 만져볼 때면 이정도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첫 차는 매주 구석구석 안 닦아 준 곳이 없는데,

지금은 비가 오면 그게 자동 세차지!!라고 모른 체 하는 마음이 미안해서

내일쯤 세차를 하려고 하니 문득 떠오른 지난 추억.

그 작은 차에

많이도 타고 많이도 다녔고 많이도 시간을 보냈던

나의 청춘.

그때는 어떤 관계라도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새로움이 주는 기대보다 필요를 먼저 찾는 일상이

자주 당황했지만 조금 더 진심으로 대했던 모든 것에 그리움이 남는다.




#당황하다_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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