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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아는 한 가지 마음속 단어_21

자신하다

by 맑은날의 무지개


거리가 어둑해질 즘에서야 거리로 나선다.

종일 달아올랐던 아스팔트도 잘 준비를 하는 듯 서늘해진 밤공기를 덮고 온도를 식힌다.

빛보다 어둠이 더 많은 곳을 차지한 길에 멍멍이 2마리와 함께 성큼성큼 걸음을 늘린다.

길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공사장에서 굴러 나온 손가락보다 긴 못이 있고, 검은 아스팔트를 부셔놓은 찐득한 덩어리가 모여있다.

반짝이는 모래는 바람에도 비에도 날아가지 않고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고,

지난해에 떨어진 낙엽은 무엇이 아쉬운 것인지 썩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길을 따라 오늘도 길을 나선다.

힘껏 올랐던 꽃망울은 어느새 제 모습을 자랑하고 그 시작이 있는 땅으로 몸을 숙이고

수없이 밟혔던 풀들은 뜨거운 햇살에 지지 않고 그 거침을 나타내며 커가고 있다.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들과 그 사이를 움직이지만 멈추어있는 것들이


길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예전에는 달팽이를 도와주는 일이 많았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 차 한 대만 갈 수 있을 정도의 길옆에 집이 있었다.

언덕 길 양옆에는 담을 대신하는 내 키만 한 개나리 같은 나무들이 있었고

나무길 끝에는 큼지막한 나무가 내 키만 한 나무들의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음인지 모를 느릿한 그 걸음으로

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달팽이들을 자주 만났다.

건너간들 다른 것이 없는 곳이지만 그들은 제 몸을 말라가며 길을 건너고 있었다.

보는 족족 나뭇잎을 가져와 올려주고

길을 건너서 내려주었다.

잔뜩 긴장한 녀석들을 나뭇잎에 올리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내려서 다시 걷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 본다면


"참 할일도 없다." 라고 할 짓을 볼 때마다 했고, 혹여 길 한가운데서 말아 죽어있는 녀석을 보면


아쉬운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나는 그 일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 집에 살던 몇 년은 마음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몸은 어려운 시간이 많았다.

24시간 중 20시간은 누워만 있어야 했고 남은 4시간도 몰아치는 통증에 눈물을 참아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몇 번을 다시 나를 바닥으로 더 밑바닥으로 눌려 되었고 내 몸도 마음도 숨을 쉬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던 시간들이 몇 번이나 찾아왔다.

온전히 혼자 버텨내야 하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찾아오고 이겨냈다는 것이 아닌

버텨낸 것도 아닌

그저 시간이 지났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무너질 때로 무너졌다가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있다가 다시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고

황태가 되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지금도 그 황태는 맨살을 내보이며 길 위에 있지만, 곧 먹음직스러워질 것이라는 기대로 산다.

그런 내가 달팽이를 옮겨주며 어떤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부디 잘 살아, 엄지손가락만큼 커질 때까지 장수하렴.'처럼 녀석들이 행복하길 바랐던 것일까.

나의 마음이 도중에 말라죽어버린 달팽이에 더 많이 치우친 것을 보면 그들의 행복보다는

그들의 죽음이 안타까워 마음이 쓰인 것은 아닐까.

나 역시 곧 말라버릴 것 같아서.


작년에 이사를 하고 요즘은 역 뒤, 하나씩 채워지는 공터도 공원도 아닌 운전연습하기 좋은 길에서

멍이들 산책을 한다.

그 길에는 처음 말한 것들이 자리하고 있고 아직 달팽이는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는 이름이 집게벌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슴벌레를 만났다.

이 녀석 친구는 풍뎅이라는 정감 넘치는 이름인데, 문득 벌레라고 부르는 것이 꽤나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집게벌레를 찾아보고 나서 사슴벌레를 같은 벌레로 부르는 것은

왠지 친숙한 느낌이 난다고 아가씨를 아줌마라 부르는 것이나 머리숱이 조금 없다고 20대 학생을 아저씨라 부르는 것과 같은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멋진 집게를 가진 녀석에게 벌레라니,

포켓몬에 나온다면 뭔가 귀엽지만 강한 이름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런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은 곤충이다.


길 한중간 가야 할 길을 잃은 건지, 아직 뜨거운 바닥에 지친 건인지 모를 사슴이를 만났다.


슥슥 움직이는 집게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싶은 욕망이 매번 생기지만 나도 어른이니까, 그리고 아플 것 같으니까


한 번 더 참아본다.


예견된 아픔은 호기심을 이기고 말았다.

주위에 단단한 나뭇가지를 들고 살살 건드려 성질에 못 이겨 나뭇가지에 올라타게 만들었다.

성질을 내는 모습을 보니 이번 여름을 잘 버틸 것 같다.

나뭇가지에 올려진 사슴이가 떨어지기 전에 가까운 나무 밑으로 내려주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서 갈 길을 간다.


누군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보았다면


나의 열정적인 모습과 작은 존재를 위하는 마음 그리고 거침없이 돌아서는 모습에 반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가는지, 사슴이는 그 길에 홀로 서서 알고 있었을까?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시작된 걸음이었을까?

그럼에도 그 녀석은 나아갔다.


도중에 자신을 공격한다 여긴 물체에게 멋지게 집게를 움직였고 여섯 개의 발은 땅에

딱 붙이고 힘껏 버텨냈다.

녀석을 발견하기 바로 전에 큰 차가 한 대 지나갔고, 길에는 다른 차에 가야 할 길 중간에서

영원히 자리하게 된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럼에도 녀석은 되돌아서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었다.


인간은 자신보다 못한 환경의 인간을 보고 위안을 얻기도 하고

본인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포기하기도 한다.

나 역시 매일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는 중이고 누군가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저 시작된 것을 마치는 일.


언제고 그 끝에 닿을지 모를 일이고 가야 할 길을 모를지라도


그저 포기하지 않고 끝마치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이룬 것이 없기에 "자 봐라, 이것이 내가 한 일이다."라며 보여줄 것이 없기에

부끄러움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이 있다.


나는 길에서 만난 그 녀석들을 보면서,

그 녀석들을 옮겨주면서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너희가 보기에 끝도 없어 보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끝은 있고 시작한 곳보다 분명 원하는 것 한 가지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 포기하지 말라고, 도와줄 테니

끝까지 이겨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을 오늘은 내게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돌아서도 앞으로 나아갈 길도 막막해도

끝은 있고, 버텨내고 이겨낸다고 분명 얻을 수 있다고

오늘은 내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포기하지 못해 그저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고 있는 것이라고, 끝내 승리하는 것은 당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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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있다_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거나 어떤 일이 꼭 그렇게 되리라는 데 대하여 스스로 굳게 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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