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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기억 속의 너

내 사랑 딸랑구 힘들 때 꺼내봐^^ 


아들과 아침에 한판 붙고는 딸랑구만 데리고 산행을 나섰다. 요새 일요일마다 온 가족 산행을 가는데 오늘은 일로 바쁜 아빠 패스, 이기적인 행동으로 아들도 패스, 산에 가겠다고 따라나선 딸랑구만 데리고 청계산으로 향했다.

저번 주보다 훨씬 가을의 풍미를 풍기는 청계산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벌써 빠알간 단풍이 아우라를 내뿜고 있다. 쪼그마한 5살 아가야의 손을 꼭 잡았다. 벌써 2회 이상 올라왔던 산이라 그런지 딸랑구도 조금은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다. 입구에서 표지판도 확인하겠다 하고, 거기에 짧은 코스 선택까지 딸이 결정해주었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손이 시리다가 안 시리다가 어찌나 요구사항이 많은지… 오늘 산에는 올라갈 수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초입에 올라가면서 물을 마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김밥 역시도 여기서 먹겠다고 했다. 가을 소풍의 정취를 아는 녀석이다. 배고파서 엄마는 이미 차에서 먹어버렸는데…


산 정상까지 올라가겠다는 마음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실 5살 아이와 굳이 정상이든 아니든 의미가 있겠냐 싶은 생각이었다. 정상을 갈 생각을 안 하니 단풍잎이 더 가까이 들어왔다. 사실 등산을 하면서는 땅을 보거나 앞을 보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의자에 앉아서 쉬면서 보니 아름드리나무들의 빨간 단풍잎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쉬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둘째의 유치원 생활을 들었다. 누가 가장 좋고, 새로운 친구에 대한 이야기까지… 오물오물 김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당장 첫째의 학교의 과제를 들어야 하고 학원 일정을 알려주느라 둘째 딸랑구의 이야기는 매번 집중해서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김밥을 먹고 가져온 간식까지 클리어하면서 신이 났다. 야무진 입에 김밥도 한가득 넣고 오물대는 모습이 세상 귀엽다. 달콤한 풋귤청을 조심스레 입에 대어 뜨거운 맛을 가늠하며 먹는다. 먹으면서 사진도 찍고 재롱도 부리는 딸랑구다.  


“오빠랑 같이 안 오니까 좋다.” 아침 내내 오빠의 잔소리를 들었던 딸랑구라 그런지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엄마가 좋았던지 슬며시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딸랑구는 오빠를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법이 별로 없이 오빠랑 함께 다니는 거에 큰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는데 오늘은 오빠가 쫒았다니며 잔소리를 한 탓인지 엄마랑 둘이 와서 좋다 한다.


사실 둘째의 쿨한 성격 덕분에 둘째랑만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둘째와의 데이트를 따로 하진 못하고 있었다.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이야기가 아이를 키우면서 와 닿는다. 사실 내가 아이 입장에서는 참 열 받는 일이다. 성격 좋다고 실제 괜찮은 건 아니다. 여전히 서운하지만 표현을 그만큼 안 할 뿐이다. 둘째에게 엄마를 독차지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청계산의 옥녀봉까지 올라가면서 쉬다 걷다 이야기하다를 반복했다. 힘들어하는 5살짜리에게 어떤 동기부여를 해주면 좋을까? 제일 간단한 간식내기를 해본다. 자신을 먹보라며 강한 의지를 불태우며 불끈 힘주며 올라오는 너를 보는 것이 참 귀엽다.


문득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함께 하는 산행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의 나처럼 너는 나를 힘내게 하는 이야기를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을 오르는 우리를 상상해본다. 지금 보다 엄마는 성숙해져 있겠지? 너는 또 얼마나 멋있게 자라 있을까?


보드라운 피부에 볼이 빨갛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꽤 쌀쌀하다. 이 쌀쌀한 날씨에도 너의 5살은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귀엽고 상그러웠다고 엄마가 대신 기억할게. 때론 살면서 자신을 의심하는 순간들이 올 때가 있다. 근데 이때에 엄마의 시선을 잊지 마. 네가 얼마나 찬란하게 아름다웠는지. 엄마의 기억이 그리고 기록이 너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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