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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사랑

제주도에 오면 꼭 찾는 곳이 제주도의 산길이다. 비자림이나 사려니 숲길같이 제주의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우리 집 필수코스다. 아니 내가 좋아하는 코스라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이 다행히 잘 따라와서 즐기는 곳 중 하나다.


제주가 가진 좋은 기운을 오롯이 품고 있다가 향수를 뿌리듯 뿜뿜 뿜어주는 듯해서 기분까지 좋다.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흥얼거리면서 비자림을 걸었다. 꼭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장면 같은 이 비자림의 웅장한 나무와 오래된 이끼들을 만나는 시간은 참 신비롭기까지 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자연을 많이 만나게 해 주고 관찰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비자림을 자주 찾는다. 어릴 적 첫째는 공동육아로 숲 육아를 해줄 만큼 열정적이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숲 육아!! 말이 쉽지 사실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하루 6~7시간씩 공원과 산속에서 아이와 놀고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다.


육아에 대한 거창한 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아이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노력했던 시간들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학교와 학원의 일상에서 아이들과 부대끼고 살아가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그나마 잠시라도 숨구멍을 찾아 제주도로 왔다.


적어도 엄마혼자 중심이 되는 극성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학교에 들어간 첫째를 보면 매번 쫓기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나 역시 엄마가 처음이라 순간순간 갈팡질팡한다.

 

둘째 딸랑구와 비자림 숲길을 걸어 나오면서 노래를 불렀다.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노래를 제법 잘 불렀다.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면서 물개 박수를 쳤다. 아마 피톤치드를 머금은 탓일까? 나의 리액선은 더더욱 좋은 날이었다.

엄마!! 엄마는 000가 노래를 잘 불러서 나를 사랑해???


뜬금없는 딸아이의 질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잘해서, 사랑한다고 말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잘해서 멋있다고 엄지 척을 올려준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조건이었던 적은 없는데…


어느새 나는 아이의 눈에 무언가를 잘했을 때 자기를 사랑해주는 칭찬에 인색한 엄마였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했다. 숲 육아를 하고 아이들을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엄마였는데 어느새 아이 눈에 나는 조건부로 노래를 잘해서, 영어를 잘해서, 수학을 잘해서…. 이런 조건들을 붙여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독 영어나 책이나 학습적인 측면에서 잘한 것들을 나도 모르게 동기부여하려고 칭찬했나보다. 쪼꼬미 5살이 보기에도 그랬다면 첫째가 보기엔 확연히 조건부 사랑을 실천하는 엄마였을 것이다.


오빠가 영어노래를 잘하면 엄마가 좋아하잖아!


라는 5살 아가의 폭탄선언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나는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 아이가 이런 것들을 잘했으면 하는 것들에 반사적으로 조건부 사랑을 실천했던 모양이다.

 

대자연의 바람이 불어오는 비자림에서 나는 유독 초라해졌다. 일상에서는 그런 줄 도 모르고 조건부 반응을 했을 내가 떠올랐고, 아이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잘하고 싶어 애 닳았을 생각에 마음 한편이 짠했다. 



어릴 적 아이의 웃음 하나에도 대단하다며 물개 박수를 치던 날을 떠올리면서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연습이고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 아이라는 사실만으로, 아니 너의 존재 자체가 이미 사랑받기 충분하다고.....



오늘도 조건부가 아닌 아이의 온전함을 사랑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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