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할머니 육아

아들이랑 딸이랑 3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참 지치지 않고 잘 싸운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서로 소통이 안 되는 언어로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싸울 일도 아닌 것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다.(나랑 허즈번드의 싸움 형태도 이와 똑같을 것 같다.) 


특히 코로나로 온 집안 식구들이 집에서 북적대는 통에 내 공간, 내 시간이 없는 상황에 스트레스는 더없이 가중된다. 엄마 된 입장에서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이들 싸움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는 상황이다. 나의 요즘의 소원은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지 않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일 정도였다.  


아빠가 병원에 방문할 일이 계셔서 엄마 아빠가 입원 준비를 하고 서울로 오셨다. 다행히 검사 결과가 입원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라 싸 들고 온 입원 짐을 들고 그대로 가려다 엄마는 손주들 얼굴 한번 보고 가셔야겠다면서 우리 집으로 오셨다. 때마침 스마트 스토어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엄마의 등장은 나에겐 구세주였다. 코로나로 아이들을 케어하면서 계획한 일들을 해내는 것은 세상 어려웠다. 

할머니의 등장은 나의 시간을 벌어주었을 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까지 주었다. 아침에 식사시간의 분주함과 새벽 기상에 못했던 일들까지 할 여유로움이 가미되었다. 바쁜 아침엔 언제나 나 혼자 발을 동동 구르는 일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딱히 급할 게 없었고, 유치원 차량이라도 늦지 않게 태우려면 아이들 재촉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등장으로 아이들을 재촉할 일이 줄어들었다. 소리를 지르는 일도 줄어들었고, 아침시간의 온전한 플로어가 참 평화롭게 느껴졌다. 심지어 오전에 일정이 있는 날엔 운동시간 확보를 위해서 일찍 나설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눈에 선해서 오셨다는 엄마는 딸내미의 바쁨에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시고 차일피일 내려가는 일정을 미뤄 주셨다. 나도 아이들도 할머니의 등장이 세상 둘도 없이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아침에 아이들 해야 할 일을 체크하다 보면 일정에 급한 나는 매번 재촉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법이 없다. 기다려주고 알려주고 때가 되면 미리미리 언질을 주어 아이들이 챙길 수 있게 도와주셨다.


내가 일정상 미팅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 아이가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면 매번 나는 마음이 불안하고, 아이 역시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버거워 수시로 전화가 온다. 그러나 할머니가 계실 때는 그럴 일이 없다. 할머니가 무엇을 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같이 옆에 있기만 해도 편안함을 느꼈다. 또 아이들 숙제를 봐주시는 것도 나는 아이가 답답해 보일 때가 있는 데 할머니는 맞은 것은 언제나 큰 칭찬을 하고, 틀린 것은 문제가 어려운 거라면서 다시 풀어보라며 응원해줬다. 아이들과 팽이 시합을 하거나 보드게임을 해도 할머니는 아이가 설명하는 룰을 귀담아 들어주고, 승부욕에 불타지 않는다.(나는 왜 아이랑 하는데 승부욕을 불태우는가…) 덕분에 아이는 늘 승리의 기쁨을 만난다. 


나는 냉동실에 쟁여두고 잊고 있던 떡들을 할머니는 적재적소에 구워서 주시니 아이들은 매번 할머니가 있으면 맛있는 간식이 나오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였다. 아이들은 할머니랑 보내는 시간이 꿀이었다. 이렇게 보낸 10흘간의 시간이 지났다. 나도 딱히 인지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새 아이들끼리 싸움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이들 각각의 욕구가 채워져서 인지 모르겠지만 큰소리 나는 싸움이 기억이 안 날 정도였고, 막무가내로 우기거나 떼를 쓰는 일도 없어졌다. 참 신기했다. 할머니의 등장으로 온 집안이 평화롭고 아름다워졌다. 안정감이 집안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육아에서 부족한 부분들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많은 나는 마음이 늘 조급했다. 


나는 부모님도 자신의 생활이 있고 삶이 있으니 아이들을 맡기거나 육아 노동에 부모님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작년까지 만해도 엄마가 현역에서 일을 하셨기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부부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육아는 우리나라 여건상, 사실 엄마에게 편중되어 있고 나는 이 역할을 혼자 감당하기가 늘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할머니의 손길과 함께 나 역시도 느긋하고 부드러워졌다. 아이들에게 화낼 일이 줄어들고 어느 정도 자기 시간 확보가 되니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그렇게 10일의 시간이 되고 할머니도 할머니 집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아이들도 나도 더없이 서운하고 아쉬웠다. 단순히 좀 더 편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할머니를 통해 느꼈던 따뜻한 안정감이 흔들리는 게 두려운 것 같다. 저녁에 잘 때마다 할머니가 다음날에 갈까 봐 아이들은 매번 마음을 졸이며 물었다. 할머니가 백 년쯤 우리랑 같이 살면 좋겠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10일이 지나고 할머니가 내려가셔야 하는 날이 되니,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였고, 우울한 마음에 방에 틀혀박히기도 했다. 다행히 구정이 얼마 안 남아서 이래저래 아이들을 달래 놓긴 했지만 그래도 서운함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사실 가장 서운하고 아쉬운 사람은 나다. 


나의 육아는 매일 바쁘게 최선을 다했지만 나와 엄마라는 역할의 두 마리 토끼를 어찌할 바 몰라했던 것 같다. 10일간의 할머니 육아가 주는 시간으로 나 역시도, 나의 육아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조금은 느긋하게, 찬찬히, 아이들을 기다려줄 수 있는 그런 할머니 육아를 지금 내 아이들에게 실천해야겠다. 여전히 실천은 어렵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음먹는 것 자체가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길 아닐까? 

지금부터 연습하면 내 손자 손녀들을 돌보는 쯤에는 아이들에게 할머니와 백 년 동안 같이 살고 싶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노년의 장래희망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이상하고 재미있는 할머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건부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