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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손절의 합리성이 부끄러워진다.

마더 테레사 인간관계론-인간의 욕구에 집중하라. 

사람을 대하는 것.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일적인 만남 혹은 일회성 관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겪다 보니 나름대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도 나만의 합리성을 찾기 시작했다. 

오랜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혹은 나와 생각이 너무 다르거나 가치가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를 조금 심플하게 만들거나 마주 칠일을 적게 만드는 것.


쉽게 말하자면 그냥 손절이다.
손절에 합리성이랄까? 

도시에서의 삶이 오래되면서 이런 삶에 익숙해졌다. 요새 나는 도시가 아닌 농촌에 살고 있다. 농촌에 있다 보니 이런 인간관계의 합리성은 이곳에서는 또 별개의 문제다. 

사실 도시라서, 농촌이라서는 아니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의 인구 밀집에 의해서 그런지 

도시는 개개인에 대한 밀접도가 좀 낮고, 농촌은 밀접도가 좀 높은 것 같다. 

어떤 것이 더 좋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지역적으로 드러나는 인간관계의 특징이라고 느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나랑 맞지 않으면 손절하거나 안 만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인생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라 여겼다. 그리고 이제는 쉽게 상처 받지 않는 내가 어른스럽다고까지 느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에 뒤통수를 치게 하는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일명 마터 테레사 아니냐고 내가 놀리는 언니다. 

사실, 몇 번의 사례를 겪으면서 그냥 한번 그랬나? 하고 생각했다가... 

또 두 번 겪으면서 무슨 마음에서 그랬지? 

그리고  세 번째 겪으면서는 아... 원래 이런 사람도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공감이라는 것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 날도 있고, 

또 위로라는 것은 저렇게 같이 우는 거구나 생각하기도 했다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다는 것은 저런 건가? 하고 나를 돌아봤다. 


남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누에고치처럼 내 몸을 실로 돌돌 감쌌더니 어느 순간 그런 자잘한 감각에 중무장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실들이 이제는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감정에 동요되지 않게 감정이라는 감수성을 꽁꽁 감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아이들 스키스쿨 팀을 짜기로 했다. 선생님 레슨도 받아야 하고 일정도 맞춰야 하기에  아이들 스케줄과 학교 방과 후, 거기에 오후 개인 스케줄까지 겨우 일정을 맞췄다. 결정하고 다음날 한 엄마가 1:1 개인 레슨 형태로 전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루 전에 맞춘 일정이며 비용까지 다 틀어지게 되었다. 사실 그날은 좀 당황스러웠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도 이해가 되었고, 또 아이와 더 친밀하게 보내는 시간에 대한 엄마의 바람도 이해가 되긴 했지만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기에 조금은 번거롭기도 했고, 처음부터 그 아이의 일정을 고려하느라 피했던 시간들도 있었는데 남은 엄마들에 대한 배려는 1도 없이 호떡 뒤집듯 결정을 반복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뭐 아직 시작한 것도 아니고 다행히 함께 팀을 짰던 마더 테레사 언니의 제안으로 그 빈자리를 3번 이상 채우겠다는 지인이 있어서 어려 모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런데 중간에  일정 공지하는 마더 테레사 언니한테 연락이 왔는데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변경은 아니고 한번 일정을 틀었던 아이가 기존의 1:3 스키스쿨에 그대로 조인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랑 1:1 강습을 하고 싶어 했던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그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강습도 받고 즐겁게 타고 싶었다는 이야기에 다시 기존 일정에서 초보 단계가 아닌 중급 단계의 마더 테레사 언니의 아이가 3회의 강습을 양보해준 것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나에게는 크게 일정의 변화가 없으니 큰 무리 없이 진행하면 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제 첫 수업을 진행하는 와중에 다시 이 엄마가 개인 수업을 자기가 받아보니 너무 만족도가 높다면서 아이들의 수업 횟수를 몇 회 줄이고 한 번은 1:1 강습으로 바꾸면 어떨까?라는 또 다른 의견을 냈다. 


나는 사실 약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스키 타는 단계가 중급 이상도 아니고 초급 단계인데 딱히 1:1 강습을 중간에 붙이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저 더 많이 타보고 중간중간 흐트러진 자세를 꾸준히 교정해주면서 봐주는 게 더 중요하고 아이들도 같이 타면서 경쟁의식도 느끼고 서로 자세를 보면서 배우는 게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선 그 의견엔 반대였다. 당장 둘째가 썰매를 태워달라고 해서 조금 있다 더 이야기하자고 하고 나왔는데 그걸로 한 시간 넘게 토론이 있었던 모양이다. 


결론적으로는 그 의견은 없었던 걸로 마무리는 되었지만 사실 나는 팀을 짜서 운동을 하는데 중간중간 일정을 번복하는 게 참 불편했다. 물론 의견 제시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이미 두 번이나 자기 의견을 수용해서 진행한 입장에서는 나머지 엄마들과 아이들의 스케줄, 거기에 선생님과의 조율까지 하나하나 다 해결 과제가 되는 상황이니까 당연한 것이다.  또 양보해준 중급 수준의 친구는 막상 그렇게 1:1 수업으로 변경하면 선생님과 탈 수 있는 횟수 자체가 줄어드니까 양보까지 하면서 1:3을 맞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레벨업을 시켜주고 싶어서 팀을 짠 마더 테레사 언니 입장에서는 아이가 처음 양보했던 3번도 있는데 이런 제안은 좀 황당하다 느꼈을 것 같다. 이 팀 자체를 마더 테레사 언니가 만들었는데 내 아이가 계속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면 사실 이 고생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럴 때 나 같으면 그 엄마는 팀 짤 때 함께하기 힘든 스타일이라고 손절할 것이다.(이 엄마에 대한 악감정은 사실 하나도 없다. 너무 좋은 엄마고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었다. 더구나 나는 피해를 보거나 일한 게 없으니 할 말도 없다. 다만 팀 짤 때는 좀 힘든 스타일이다.^^)  그게 어찌 보면 간편한 해결방법이다. 그리고 서로 상처 받을 일도 없고, 적어도 이런 식으로 팀을 짜는 일은 함께 하지 말아야지 하고 말았을 것 같다. 


그런데 그날 집으로 가는 데 마더 테레사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혹시 1월의 일정 중 하루만 스케줄 조정해서 12월에 스키 레슨을 받으면 어떨까? 하고.... 


12월은 아이들이 학기 중이라 수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고 스키장 픽업하기도 어려워서 일주일에 한 번 하기로 하고 1월에는 방학이라 일주일에 3번의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정을 번복했던 엄마는 방학일정으로 사실 끝에 두 번을 빠지게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미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 엄마 입장에서는 2번을 빠지더라도 1:3 수업이 훨씬 가격적 매리트가 있는 상황이었고 그중 한 번은 사실 보너스로 얻은 수업이었다. 그걸 감안하고 같이 조인하기로 했던 걸로 알고 있던 나로서는 좀 짜증이 났다. 


마더 테레사 언니 말로는 그 엄마가 두번 빠지는 것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두 번 빠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일정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내는 것도 어쩌면 그런 마음의 일부가 반영된 것일 수 있으니 혹시 방과 후 수업을 조금씩 배려해서 맞춰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사실 거기까지는 생각도 안 해봤다. 나는 표면에 드러난 있는 그대로의 사실.


팀으로 진행하는 데 왜 자꾸!! 일정을 번복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아니야?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마더 테레사 언니는 그 사람이 그러는 이유, 즉 그 사람의 욕구를 온전히 들여다보고자 했다. 

사실 나는 그 욕구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런 온화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는 들어주기 싫었을것 같다. 근데 아마그 엄마조차도 자신의 감정의 밑바닥에 깔린 욕구를 몰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사실 12월로 일정을 변경하면 나는 아이 방과 후 수업을 빼야 하고 학기중이라 아이도 피곤해서 번거로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 엄마는 자신의 일정 조절은 안 하는데 내가 거기 맞춰주는 거라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욕구까지는 쳐다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물론 내가 그것까지 바라봐야 할 의무도 없지만 그냥 마더 테레사 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언니처럼 욕구까지는 못 들여다봤지만 한번 내가 양보하면 더 이상 새로운 의견으로 일을 복잡하고 번거롭게 만들지 않을 것 같고 감정적 불편함도 없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더 테레사 언니를 통해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보게 된다. 언니도 사람인지라 늘 완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소위 손절이라는 쉬운 방법 대신에 사람을 대하는 언니의 다양한 방식을 접하면서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남에게까진 이렇게 못해도 우리 아이들 우리 가족들에 대해서는 이런 마음으로 표면적인 것들 안에 있는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은 내가 배워야 할 태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무릇 그렇게 대해야 하는구나.

한번 더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그 사람조차 인식하지 못한 욕구를 찾아보는 것. 

그리고 그 욕구를 내가 해결해주거나 도와줄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친절을 베푸는 것. 


손절의 합리성을 때로는 내려놓고, 사람을 품어 가는 것도 인간관계를 이끌어 가는 방법임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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