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기도 했겠지만 캠핑카의 낯선 공기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아이들은 캠핑카의 다락 공간에서 곤히 자고 있다. 새벽이라는 시간이 나에게는 언제부턴가 특별해졌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새벽을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차라리 밤샘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새벽은 늘 포기의 대상이었다.
새벽에 일어날 필요도 없었고, 새벽부터 해야 할 일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온전히 내 시간이라 생각했던 24시간 중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이 새벽시간이 아니고서는 나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때론 이 새벽시간의 정적이 너무 좋다. 캠핑장을 슬슬 걸어봤다. 그리고 어떤 시설들보다 이 웅장하고 광활한 캠핑 사이트들 나무들이 진짜 울창하게 커서 그 아래 캠핑카만 대면 내 세상~~
거의 공원 수준의 캠핑장을 보면서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슬슬 파도소리가 들리는 공간으로 발길을 옮겨보았다.
새벽에 나갔다 만난 무어리버!! 와.... 진짜 하늘과 구름이 예술이다. 호주에서 만나는 구름들은 너무 판타스틱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가 구름에 나타나고 잠깐 걷는 산책길에도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것이 신기했고 자연의 한가운데 내가 놓여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느낌이었다.
이곳이 바로 무어강 하구와 인도양의 길더튼 비치가 만나는 곳! 이곳이 바로 무어리버. 왼쪽은 강, 오른쪽은 바닷가 너무 신기하다! 모세의 기적처럼 둘로 갈라진 경계가 보이고 거기에 길이라니~ 겨울에는 이렇게 거의 맞닿아있다가 여름에 되면 좀 더 분리된다고 하는데 정말 거의 호수와 바다가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 보여주려고 와이드 하게 찍어야지! 중앙에 사구가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바다 한가운데의 길을 걷는 느낌^^아니야?
강에 가까이 가자 색깔이.... 완전 콜라느낌? 처음엔 정말 오염된 건가? 했다가 그건 아닐 것 같아서 찾아보니 이게 특이한 자연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헛라군 핑크호수도 물에 들어있는 성분으로 인해 색깔이 그리 보이는 것처럼 여름에는 인도양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햇빛에 의해서 이런 특이한 강물색을 띠는 거라고... 암튼 신기신기!!
요기는 강 쪽!! 그리고 뒤쪽 바닷가에서는 파도가 넘실넘실!!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서 강 쪽으로 몰려들어온다. 우리가 캠핑한 날도 다른 일반 캠퍼들보다는 낚시하시는 분들이 캠핑을 많이 하고 계셨다. 겨울엔 확실히 낚시하시는 분들이 캠핑장 상주가 많다.
호주는 구름이 아침마다 다른 모양으로 시시각각 달리 다양하게 보인다. 해가 쨍쨍 나기도 하지만 구름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다채롭기도 하다. 비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오늘은 구름이 하늘 가득 TT
새벽 산책을 마치고 우리 차로 돌아왔다. 우리 뒤쪽 캠퍼분들은 서퍼들이었다. 날씨가 꽤 추운데도 서핑을 하다니 굉장히 용감하고 건강한 분들이다. ㅋㅋㅋ
근데 정말 잠깐 나와서 산책하는 중에도 바람이 어마하게 많이 분다.
아이들도 슬슬 일어나고 이제 활동 시작!
쌀쌀한 날씨라 바람막이 옷이랑 경량패딩 입고 아침부터 돌아다니는 아이들
캠퍼밴 타고 다니면 정말 먹고 싶은 대로 해 먹고 할 것 같았는데 이동이 많으니까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게
귀찮아진다. 아침식사는 간단히~~ 김이랑 누룽지랑 과일류~~ 스킨로션은 바르기 귀찮으니 붙이는 스킨으로 밥 먹으면서 마무리!!
대충 준비 마치고 새벽에 봤던 길더 튼 비치로 아이들과 함께 산책길을 나섰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라 그런지 머리상태처럼 길더튼 비치에서의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바람 길목처럼 쓍쓍 바람이 불어제낀다.
하늘이랑 바다랑 정말 푸르디푸르러서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너무 힐링되고 좋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
더구나 사람 한 명도 없는 비치라니... 전부 대여한 느낌^^
바람 쌩쌩 부는 와중에도 전망대에서 한참을 멍 때리다가 내려왔다.
아들이 각 잡고 찍어준 전망대샷!! ㅋㅋㅋ 내 얼굴 내 실루엣 어디 갔니?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그저 아름답고!! 풍경만 찍었다면 바람 부는 줄 몰랐을 그런 느낌 구름이 바다 위에 떠있는 미니 마시멜로 같다.
바람막이 제대로 입고 온 엄마도 사진 한컷!!
비가 올 것 같아서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 이 바다를 다시 볼까 싶어서 아쉬운 마음에 셔터를 눌러댔다. 사실 오늘은 무어리버에서 되돌아 얀챕국립공원까지 둘러보고 다시 위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내려오는 길에는 이렇게 다양한 지형도 보게 되고 지질학자나 해양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호주가 진짜 천국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아직 그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지만 무어리버에서의 이 웅장한 자연을 만끽하니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생겼다.
무어강과 인도양의 길더튼 비치의 경계를 바라보며 마지막 한컷을 찍었다. 대학에서 개인 동아리 활동 중 하나가 독서모임이었는데 그 이름이 "people on the border"였다. 그때는 "경계에 선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그 단어를 생각한다. 다양한 경계를 만나고 거기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순간들이 온다. 나의 역할이 단순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나의 역할이 많아지고 더 다양화되면서 나는 때때로 정체성의 고민들을 느낀다. 내 안에 충돌되는 정체성들을 만나게 된다.
나 스스로 누구인가에 관한 질문들을 엄마가 되고 나서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로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지나 보니 진정한 내가 원한 삶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고 가정이나 육아 등의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의 나를 바라보는 것과 이러한 제약조건이 있는 상태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는 그것이 진짜 나였기에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려웠다. 그런데 시간적 공간적 제약조건들이 붙으면서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에 정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했기에 더욱 타이트하게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찾기 위해 아끼고 아껴야만 했다. 진짜 자기 발견은 이렇게 내가 고플 때 시작되는 것 같다. 좀 더 일찍 더 빨리 나를 파악했다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은 나이가 들수록 간절해진다. 지나 보니 지금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아직 해보지 못한 무모하고 과감한 선택들도 좀 더 쉽게 했을지 모르니까...
무어리버가 길더튼 비치와 만나는 저 공간을 바라보니 나와 오버랩이 된다.
나는 바다일까 강일까? 아니 바다와 강이 공존하는 구간이라는 것 그 자체를 받아들이까 지도 우리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경계인으로 산다는 것, 여행 역시도 그런 경계의 넘나듦을 시도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경계인일 때 비로소 우리는 고민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