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들이다! 야발라바 히야~~ 오늘도 주문을...

남의 아들이다.

남의 아들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까지 주문처럼 이 문장을 외워 본다. 남의 아들이다. ……


남의 아들에게 우리는 크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 역시 남의 아들이라면 좀 더 넓은 아량과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할 수 있기에 아침 내내 이 문장을 주문처럼 외워 본다. 학교에 당도하는 그 순간까지 마법 같은 주문이 힘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아침마다 전쟁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마냥 귀엽고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하나만도 감사한 일이 되는데 나이가 들어가고 해야 할 일이 생기고 이제는 혼자서 무언가를 알아서 하기를 기대하거나 그래야 하는 순간들에 여전히 뒤치다꺼리가 많으면 버겁고 힘겹다.


물론 8세니 당연히 혼자 하기 어려운 게 많다. 그러나 일 년 이상 아침마다 해야 할 일들을 매번 이야기하고 닦달한 거에 비해 습관이 안 들어도 너무 안 든다. 결국 오늘 아침도 이 기본적인 일들을 해라 해라 하느라 아침에 진을 빼고 나왔다.


그래, 습관 잡는 시기니까 여러모로 손이 간다. 잔소리 같지 않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10번이고 1000번이고 이야기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겨가면서 아이는 씨름이라고 느끼지도 않는 씨름을 아침마다 나 혼자 하고 있다.


magic-33848_1280.png Clker-Free-Vector-Images by pixabay


아침 내내 야발라바 히야!!! “남의 아들” 주문으로 그나마 멘탈을 잡고 있었다. 학교까지만 무사히 가면 이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학교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결국은 참지 못하고 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요 며칠 연휴라 같이 다니는데 마스크를 이동할 때마다 잃어버렸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가방이나 주머니에 챙길 줄을 모른다. 마스크 스트랩은 몇 개째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챙겨주는 게 속 편하고 안 잊어버릴 것 같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 혼자 생활해야 하고 야외도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아들이 스스로 챙기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 아이에게 맡기고 있었다. 결국은 이동할 때마다 마스크를 새로 꺼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연휴를 마치고 호되게 한번 혼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까지도 마스크 챙기라는 이야기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먼저 탑승했다. 한참을 지나도 안 나오더니 결국 여분으로 걸어 둔 천 마스크를 가지고 나왔다. 결국 자기 건 잊어버리고 또 문 앞에 걸린 걸 눈치 보면서 들고 나온다.


남의 아들이라고 하기엔 챙길게 너무 많다. 빽 소리를 질렀다. 어쨌든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학교 같은 곳에서는 답답하고 힘들어도 K94 마스크를 쓰는 게 조금이라도 낫겠다는 어미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들고 나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칭찬을 하기에는 아침 내내 나의 인내를 모두 소진해버렸다.


아들! 어제 오면서 새로 깐 마스크는 어디 있어? 왜 여분의 마스크를 가져오는 거야? 살포시 눈치 한번 보더니 내 거는 집안 어디에 있겠지!! 8세 아들 특유의 능글맞음을 얼굴로 표현한다. 개다리춤추면서 짓는 표정 같은 거라면 좀 공감이 갈까? 세상 못생긴 표정을 지으면서 한다는 소리가 집안 어딘가에 있겠죠? +능글맞은 표정에 나의 분노의 에너지바가 갑자기 충전이 되었다.


아들!!! 집안 어딘가에 있겠죠?? 야 이놈아!!! 그럼 마트 어딘가에 있겠죠? 할래? 매번 뭐 할 때마다 온 집안을 다 뒤지면서 찾을래? 나갈 때마다 챙겨야 하는 마스크 같은 물건은 몇 번이나 현관 고리에 걸어두라고 말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듣고 다니는 거야?? 예전엔 미안해하는 기색이라도 하는 때는 안쓰럽고 아가니까 아가니까 했는데 8살 아들은 이제 그 단계를 넘어서 자기만의 논리와 말대꾸라는 아이템을 장착했다. 집안 어디에 있는 게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그걸 누가 찾냐고!!! 결국 등짝 스매싱 한 대가 날아간다. 이 순간!!! “남의 아들 주문”을 외었어야 하는데…. 나의 인내 에너지바는 솔드아웃 상태가 되었다.


참다 참다 폭발한 순간이긴 하지만, 아침에 학교 가는데 한 소리 한 것이 막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부터 후회가 된다. 남의 아들 주문을 좀 더 외울 걸 이제 학교까지만 가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등짝 스매싱과 잔소리를 터트리고 말았는지…


다른 때 같으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면서 수다를 떨 시간에 아들은 더 혼날까 봐 그런지, 혼자서 쏜살같이 학교 앞 횡단보도까지 달려간다. 그래도 여전히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는 이래도 저래도 엄마 아들이에요. 하는 표정에 조금은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별 것도 아닌 걸로 화를 낸 것에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아이가 혼나도 저런 표정을 엄마에게 짓는 건 엄마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거 아니겠어? 하는 생각에 덜컹거렸던 내 마음을 달래보기도 했다.


사춘기가 되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길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성장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두려움도 생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천방지축이었을 나를 어떻게 훈육을 하셨지? 하면서 되짚어 보기도 한다. 사람 한 명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품과 열정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인가 싶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아이 스스로 자라는 것이 아닐까?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가는 뒷모습에 훌쩍 큰 아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내 남편이 시어머님의 아들이었다고 생각하니 나 같은 대리인에게 넘어가기 전까진 내가 품어야 할 자식이구나 싶다. 내 아들 김 땡땡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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