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h Nov 30. 2020

시간제 거실 작업실

시작하며








애초에 풀타임 작업실을 가진 적은 없었다. 작업실이 정말 어떤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 공간이라는 의미라면 말이다. 작업실이 있을 때도 거기서 딴짓을 더 많이 했다. 조금 더 조용하고 쾌적하게 허튼짓들을 할 수 있었다. 막상 공연 날짜가 임박하면 거실에서 밤을 새우고 그랬다.


처음부터 내 작업실은 하루 가운데 겨우 몇 시간을 내어 꾸린 것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 일이다. 어느 날부턴가 출근할 때 마시던 커피를 퇴근할 때 마셨다. 퇴근길, 카페에서 샷 추가한 라떼를 사서 지하철에 탔다. 음료를 들고 지하철도 버스도 탈 수 있던 시절이다. 그걸 홀짝이며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에 글을 썼다. 집에 돌아오면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도 의뢰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거나 대본을 써봤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왔다. 그러니 애초에 퇴근 후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니 하루에 몇 시간씩을 내어 집에서 일하는 건 원래 그렇게 될 일이었다. 이 전염병의 시대가 내게 쥐어준 틀은 아니다. 혼자 작업하는 것은 외롭지만, 여럿일 때 앞과 뒤를 구분 못하다 여울에 빠지는 곤란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집에서 혼자 작업하기는 내게 알맞다. 아니다. 사실은 아이 둘과 함께 있다. 사실은 재택을 하는 남편도 종종 함께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첫째 아이가 저 혼자 노는 동안 소파에 앉아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 구글 문서를 열었다가 둘째 아이를 재우느라 불끈 침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휴대폰으로 다시 그 문서를 열어보고, 모두가 잠든 후에 다시 거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다시 같은 문서를 열어본다. 내 눈에만 보이는 이 시공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열렸다 접힌다. 서로 다른 자리의 내가 동시 접속한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쓰고 편집한다.


친구가 둘째를 낳은 나에게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바르다가 아이를 낳고 집에만 있을 때 그 상황에 맞춰 찍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그 짧은 글을 여러 번 읽었다. 내 방이 없지만 거실이 있다. 조금 지칠 때는 다시 그 책을 꺼내 읽을 것이다.


하루를 미세하게 쪼개 쓴다. 밤이 오면 오래된 컴퓨터의 윈도우 관리 도구 속 '드라이브 조각 모음'을 실행하듯, 낮에 거실 곳곳에 제멋대로 뒹구는 어떤 조각들을 찾아이어 붙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정성 퍼포먼스 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