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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뿐냥뿐 Aug 21. 2020

권고사직인 듯 권고사직 아닌

퇴사가 트렌드지만 내 발로 나갈 때 낭만적이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고립감 때문이었다. 피해자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과한 듯하지만 괜찮치 않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공론화를 하기에도 부족하고,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 구제를 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그런 상황이 오면 주변에 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분명 있는데 없다. '원래 퇴사도 생각했잖아' 또는 '뭐 그렇게 심각해' 라며 가볍게 던지 말에 그간 잘 지냈던 사람까지 밀어내기도 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어떤 이가 이 글을 본다면 나보단 더 나은 선택을 하길, 상황을 미리 고려해보고는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돌보고 나서 낭만적인 퇴사 후의 삶을 누리길. 나의 애매한 퇴사를 정리한 이 글로 내 마음에도 평온이 오기를.



 

퇴사한 지 근 일 년이 됐지만 문득문득 퇴사할 때쯤의 상황을 떠올리면 그리 편하지 않다. 퇴사라는 말을 꺼내면 마법처럼 모든 게 괜찮아졌는데, 이번에는 그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이번 퇴사는 나에게 권고사직인 듯 권고사직 아닌, 그런 마무리였다. 자의에 의한 퇴사였지만 기분은 마치 해고를 당한 기분이었다. 왠지 억울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고 내가 다 잘못했다 하기에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정리가 힘들었다. 이 애매한 상황은 신고를 하기에도, 도움을 구하기에도 어려웠다. 마음의 상처만 차고 넘칠 뿐 답은 없었다. 그렇다고 없던 일처럼 묻을 수도 없었다. 


 문득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되짚어보다가, 하루는 내가 잘못했던 것들이 떠올라 수치스럽기도 했다. 잘한 것을 생각하며 분해서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그곳에 있었을 때 내 모습이 마냥 바보 같아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전처럼 최선을 다했지만 A사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열심히한 내 모습이 떠오를 때는 더 괴로웠다. 차라리 애쓰지 말걸 싶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 더 추하게 넘어지는 꼴, 그게 내 모습 같았다. 


 유종의 미도 없었다. 그간 회사 생활에서는 열심을 의심받지 않았던 터라 마지막이 불쾌하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퇴사를 한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어서 빨리,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라고 재촉했다. 퇴사일을 잡는 것도 철저히 회사가 원하는대로 였다. 사장은 '난 아무런 힘이 없는 대표'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는 100%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없다의 의미였을 뿐 진짜 힘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말만 조정이었을 뿐 답은 정해져 있었다. 대표가 원하는 날짜에 따르지 않고 조정하려고 하면 답답하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나를 감정적인 사람으로 몰아부쳤다. 공휴일이 있어서 2주는 인수인계하기에 짧고 한 달을 채우게 하자니 월급을 다 주게 되니 아까워 했다. 2-3주 그 어디쯤에 날짜를 잡았으면 했다. 이전 상사들이 생각났다. 마지막엔 그래도 서로 좋게, 각자를 배려하며 마무리했던 그들이 선비였구나 하는. 


원하는 날짜의 답을 하지 않자 대리인을 세워 원하는 일에 맞춰 퇴사하도록 종용했다. 이 모든 과정이 자발적인 퇴사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이것이 해고나 권고사직이 아니란다. 그만두겠다는 결정적인 단어는 나한테서 나왔으므로. 직장인은 들어갈 때도 나갈 때도 배려를 받기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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