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냥뿐냥뿐 Jan 05. 2021

재택근무 할 때는 커튼을 빤다

회의 대신 집안일을, 업무 양은 비슷하지만 주는 보람은 달라

극심해지는 코로나로 인해 연일 재택근무를 하는 요즘. 오늘도 그랬듯이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문서를 열었다. 깜빡이는 화면 커서를 보면서 하얀 건 화면이고, 까만 건 글씨구나. 승산 없는 싸움을 하듯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데, 불현듯 커튼을 빨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출근했었다면 퇴근 후에 할일로 적어두고 그렇게 일 년, 이 년... 결국엔 구석에 처박아두는 결말이었을 텐데. 집이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커튼을 레일에서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 업무의 시작.


하얀색 커튼이라 화장실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받고 과탄산소다를 풀어서 담가두었다가 세제를 풀어 손으로 주물주물 빨았다. 빨다보니 참 이상했다. 왜? 지금? 이걸 하고 있는가? 이 시간에 일은 쌓이게 되는데 이상하게 재택을 하다보니 집안일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하지만, 주말엔 하지 않는다. 퇴근 이후 시간에도 하지 않는다. 꼭 9 시에서 6시 사이, 재택을 하는 짬짬이 집안일을 한다. 그렇게 난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이불과 커튼을 빨았고, 불필요한 서랍장을 내다버리고, 가구 배치를 다시했다. 역시 어떤 일의 효율을 높이려면 그것이 딴짓이 돼야 하나보다.


고3 때를 생각해보면 그 시기엔 뉴스가 예능보다 재미있었고, 다큐멘터리가 아이돌 무대보다 짜릿했었다. 그때 본 다큐멘터리 잊지 못한다. 세계 각국의 명문대 관련 다큐멘터리였다. 그 다큐를 보면서 명문대생의 꿈을 꾸며 잠을 청했다. 생각해보니  참 일관성 있는 나다. 대견해. 


엉망이던 집이 정리될수록 내가 나를 잘 돌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안정감이 생겼다. 그러니 업무 효율도 오를 수 밖에(집안일의 당위성을 찾는다). 그리고 오늘의 업무 마지막은 행주 구입으로 마무리했다. 


틈틈이 집안일을 해도 업무의 양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에 있다면 아마 그 시간에 회의에 불려다니거나 보고하는 시간을 들이게 되니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회사에서는 내가 아닌 관리자 혹은 그 누군가를 위해 쓰는 시간이 참 많다. 회의며 보고서며. 


재택근무로 인해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불안감이 줄어들면서 안락함이 마음에 들어섰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잊었던 나의 취향도 하나씩 채우게 됐다. 그렇게 한동안 없었던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생겼다. 불과 몇 달 전과 달라진 점은 재택을 시작했다는 것뿐인데 삶의 만족도가 달라졌다. 시간을 허투루 써도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참 중요하다. 앞으로는 꾸준히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줘야지. 


 이것이 팀장님께 공유하지 못한 1월 5일의 '찐' 일일 업무 보고서.

이전 06화 나의 장점과 마주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