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대신 집안일을, 업무 양은 비슷하지만 주는 보람은 달라
극심해지는 코로나로 인해 연일 재택근무를 하는 요즘. 오늘도 그랬듯이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문서를 열었다. 깜빡이는 화면 커서를 보면서 하얀 건 화면이고, 까만 건 글씨구나. 승산 없는 싸움을 하듯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데, 불현듯 커튼을 빨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출근했었다면 퇴근 후에 할일로 적어두고 그렇게 일 년, 이 년... 결국엔 구석에 처박아두는 결말이었을 텐데. 집이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커튼을 레일에서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 업무의 시작.
하얀색 커튼이라 화장실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받고 과탄산소다를 풀어서 담가두었다가 세제를 풀어 손으로 주물주물 빨았다. 빨다보니 참 이상했다. 왜? 지금? 이걸 하고 있는가? 이 시간에 일은 쌓이게 되는데 이상하게 재택을 하다보니 집안일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하지만, 주말엔 하지 않는다. 퇴근 이후 시간에도 하지 않는다. 꼭 9 시에서 6시 사이, 재택을 하는 짬짬이 집안일을 한다. 그렇게 난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이불과 커튼을 빨았고, 불필요한 서랍장을 내다버리고, 가구 배치를 다시했다. 역시 어떤 일의 효율을 높이려면 그것이 딴짓이 돼야 하나보다.
고3 때를 생각해보면 그 시기엔 뉴스가 예능보다 재미있었고, 다큐멘터리가 아이돌 무대보다 짜릿했었다. 그때 본 다큐멘터리 잊지 못한다. 세계 각국의 명문대 관련 다큐멘터리였다. 그 다큐를 보면서 명문대생의 꿈을 꾸며 잠을 청했다. 생각해보니 참 일관성 있는 나다. 대견해.
엉망이던 집이 정리될수록 내가 나를 잘 돌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안정감이 생겼다. 그러니 업무 효율도 오를 수 밖에(집안일의 당위성을 찾는다). 그리고 오늘의 업무 마지막은 행주 구입으로 마무리했다.
틈틈이 집안일을 해도 업무의 양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에 있다면 아마 그 시간에 회의에 불려다니거나 보고하는 시간을 들이게 되니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회사에서는 내가 아닌 관리자 혹은 그 누군가를 위해 쓰는 시간이 참 많다. 회의며 보고서며.
재택근무로 인해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불안감이 줄어들면서 안락함이 마음에 들어섰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잊었던 나의 취향도 하나씩 채우게 됐다. 그렇게 한동안 없었던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생겼다. 불과 몇 달 전과 달라진 점은 재택을 시작했다는 것뿐인데 삶의 만족도가 달라졌다. 시간을 허투루 써도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참 중요하다. 앞으로는 꾸준히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줘야지.
이것이 팀장님께 공유하지 못한 1월 5일의 '찐' 일일 업무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