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냥뿐냥뿐 Mar 02. 2021

분유, 섞기만 하면 될 줄 알았죠

물에 넣어고 쉐키쉐키? 아닌가?

임시보호라고 하면 내가 사는 집에 한 공간만 내어주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단순하게 생각했으니 덥썩 그 조그마한 아기 고양이를 데려올 수 있었겠지 싶다. 몰랐다, 먹지 못해서 생명이 위태로운 작은 동물을 집에 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고, 집 근처 동물병원에 들어갔다. 무턱대로 데리고 온 아기 고양이를 본 수의사 선생님은 심드렁했다. 첫 마디가 "키우실 거예요?" 불쌍하다고 데리고 와서는 다시 안 찾아가는 경우도 많고, 유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이럴 땐 카드가 필요하다. 신용카드! 병원비를 미리 계산함으로써 의지를 보여준다.


아이 상태를 보고 전화 주겠다고 해서 아이들을 놓고 집에 왔다. 몇 시간이 흐르고 전화가 와서 동물병원에 찾아갔다. 아이들 몸에서 수십마리의 구더기가 나왔다고 했다. 처치는 다 했고, 무엇보다 3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꼭, 시간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니 매일 3시간씩 분유를 줘야 한다고 했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내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놓쳐서 아이들이 무지개 다리를 건널까 무척 무서웠다. 밤잠이 많은 나였지만 그때만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분유를 먹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는데 괜찮아 보이던 아이들이 자정이 지나니 점점 힘을 잃어갔다. 무엇이 잘못 됐는지 몰라 이거저거 보다보니 아이들이 분유를 제대로 먹기 못하고 있었다. 타고 타도 덜 풀어진 작은 알갱이는 분유통 입구를 막았다. 알갱이를 아무리 풀어도 없어지지 않았다. 분유를 타는 시작부터 잘못됐다. 알갱이 때문에 구멍을 크게 하면 아이가 먹기 힘들어 했다. 나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잘못 될까 그 밤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정말 무서웠다고ㅜㅜ

아침이 되자 병원으로 데려 가서 입원을 시키고, 응급으로 해야 할 게 있으면 선 조치를 하고 알려달라고 말씀드리고 출근을 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3일 정도 입원을 했다. 분유 먹을 힘 조차 없어서 2일 동안은 위로 분유가 바로 갈 수 있게 가느다란 관을 연결해 선생님의 강제 급유로 영양을 공급받았다. 그리고 한 마리가 기운을 차리고 그 다음날 한 마리가 기운을 차렸다. 다시 공은 나에게로 왔다.


3시간 분유 먹이는 미션 시작! 이때쯤 서서히 감을 잡았다! 


분유를 탈 때 순서가 중요했다.


① 넓은 통에 미지근한 물을 먼저 넣고 ②분량의 분유를 넣고 ③빠르게 뚜껑을 닫은 후 흔든다! ④ 팔이 빠져라 흔든다. 골든타임이 있다 지체하면 덩어리가 진다. 순서도 중요하다 분유를 넣고 물을 넣으면 100% 덩어리가 생긴다. 그렇게 난 분유 타는 법을 알았다. 타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다. 정해진 3시간보다 더 어려운 분유 타기를 알고 나니 아이들도 쑥쑥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회사 출근할 땐 마침(?) 놀고 있던 친구에게 묘탁을 하고 출근했는데, 전화가 왔다. "나는 쓰레기야, 분유도 탈 줄 몰라. 애들이 못 먹는 거 같아 어떻하지?"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전날 배우신 분께서 아기 고양이용 우유를 주고 가신 게 있었다. "어제 받은 아기용 우유를 주면 될 거 같아, 걱정하지 마."라고 위로하고 퇴근 후 친구집으로 향했다. 그때 친구의 모습은 정말 벽으로 보고 웅크리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난 쓰레기야. 분유는 타놓고 가."라며 엄청 시무룩한 모습이었다. 무서웠다고 한다. 자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될까봐. 며칠 전 내가 느꼈던 마음이어서, 그 말에 마음이 참 짠했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이제 아이들은 다이어트를 한다.


한 통 거하게 자시고 주무심

이것이 고양이를 얻고 잠을 잃는 것의 시작.

매거진의 이전글 임시보호에서 임종까지 보호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