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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뿐냥뿐 Apr 09. 2021

난 괜찮지 않았다

작은 공이라도 맞으면 아프다

괜찮다.

괜찮지 않다.


사랑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늘 나에게 묻는 질문. 사랑은 식었지만, 차마 사랑하지 않는다고, 마음이 변했다고 말하지 못해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고 "사랑하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오늘은 웃었으니까 하면서 "괜찮지"라고 한다. 그렇지만 난 알고 있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괜찮다고 말해왔던 나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지난 2-3년 간 물어온 질문에 이제서야 나에게 답했다. "나 괜찮지 않아."


"원점"이라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그날도 친구랑 이런저런 대화를 소소하게 나누던 날이었다.

"내가 상황을 바꿔보려고 여러 시도를 해봤는데, 결과는 늘 똑같더라. 열심히 달렸는데 나아간 게 아니고 다시 원점에 온 기분이야. 이젠 내가 뭘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을 들은 친구가 그래도 시도를 해봤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날엔 달을 본다는 친구의 말이 인상 깊었다. 달은 늘 변하니까, 오늘 아무일이 없었던 것 같아도 달은 조금씩 달라져 있다고. 같은 초승달이어도 어느 날은 좀더 붉게 보이고, 어느 날은 더 작게 보이는 등 매일 조금씩 달라져 있다는 말이었다. 달을 보면서 매일 다른 하루였구나 한다는 말이 내 머리를 치고 갔다. 어제랑 같은 오늘, 뛰었다고 생각했지만 발밑을 보면 제자리라는 생각에 갇혀 있던 나에게 땅이 아닌 하늘을 보면 매일 달라져 있을 거라는 해답 같은 말이었다. "그래 슬플 땐, 하늘을 보자!"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지 않은 나는 곧 이것을 잊는다. 다시 습관처럼 땅을 보던 날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작은 공을 쏘아올렸다. 문제가 생겼고 답이 있었다. 그래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제안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정확하게 그 문제는 해결됐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잘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눈탱이를 맞았다. 나만 맞으면 참 좋았을 텐데 팀원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때 난,  내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잊고 있던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찬찬히 따져보면 내가 느끼는 만큼의 큰일은 아니었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안 좋은 결과를 받았던 나는, 같은 상황이라는 착각에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평소라면 오늘 하루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하며 지나칠 수 있던 일에 큰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느끼는 나를 보면서 긴 시간 물었던 질문에 답을 했다. 괜찮지 않구나. 별 거 아닌 일에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면 이제는 인정하고 시작해야 하는구나. 숙제처럼 안고 있던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주를 지내고 또 다른 친구와 긴 얘기를 나누게 됐다. 좀 특별한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나와 3번의 직장을 같이 다녔고 같은 문제를 겪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나와 많이 달랐다. 건강하게 잘 극복해서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슷한 경험이 있던 그 친구는 내 얘길 다 듣고는 말했다.

 

"난 잘못했으면 잘못한 거 같다고 말하잖아. 그런데 ㅇㅇ이는 지금 잘못한 게 없어. 틀리지 않았어. 그건 확실해. 만약 자신의 생각을 믿지 못하겠으면 나를 믿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말에 울컥했다. 늘 내가 잘못됐다 생각했다. 틀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나에게  "너가 옳아"라는 말은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요즘엔 내가 나를 판단하지 않고, 친구의 말을 되뇌인다. 자기 확신이 없을 땐 날 믿는 다른 사람의 확신을 믿자.


괜찮다.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은 나는 괜찮은 사람 덕분에 나아진다. 나는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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