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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 Jun 25. 2023

우리는 언제쯤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한 낮의 태양을 가득 담은 듯, 빨래 줄에서 걷어 입은 옷이 온 몸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올해는 더위가 빨리 찾아왔다고 했던가. 6월의 태양은 뜨거웠고, 온종일 종종 걸음친 여자의 몸에도 쉬이 열이 식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걷어 입은 옷의 따뜻한 감촉이 여자는 싫지 않았다. 따뜻하다...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는 그것이 여자는 그저 좋았다.

  '아, 맞다.' 

  집에 돌아오는 길까지 종종 걸음 치게 만든 건 다름아닌 언니의 전화였다. 

  "집에 도착했어?" 

  "응, 거의 다 왔어. 조금 만 기다려봐." 

  그 몇 분을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언니는 버스정류장에서도 계단에서도 똑같은 말로 여자를 재촉했다. 황급히 가방을 뒤져 전화기를 꺼낸 여자는 언니의 번호를 눌렀다. 

  "전화통화 한 번 하기 정말 힘드네. 집에 오는 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참으로 언니다운 대답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보세요’도 없이 핀잔 아니면 비꼬는 말투, 그것이 바로 언니다움이였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있는 여자를 향해 남편이 소리 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맞다.' 

  여자는 남편과의 인사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언니의 전화는 언제나 여자를 다급하게 만들고, 가슴뛰게 만들고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제 다들 그래.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한다니까... 업무도 자기들끼리만 의논하고... 나이 먹어서 어린애들한테 이게 무슨 꼴이니."

  결국 언니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럼 그냥 그만둬버려."

  "아휴... 그럴 수 없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럼 날더러 어떡하라고...’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여자는 애써 누르고 있던 참이었다. 벌써 며칠동안 똑같은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애당초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라니깐. 뭘 그렇게 친해지지 못해서 안달복달 한거야? 간이고 쓸개도 다 빼 줄것처럼 굴다가 이제 사람 꼴만 더 우스워졌잖아."

  "몰라. 그냥...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지 뭐."  

  "돈 벌러 갔으면 돈만 벌어서 오면되지..." 

  "그래도 다들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그리고 나 혼자서 따돌려지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정말 싫단 말이야. 누가 보기라면 하면 어떡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진짜."

  언니는 작년 겨울 예전에 일하던 곳으로 다시 입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언니가 기뻐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자 역시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기뻐했었다. 이혼 후 삶을 포기 한 것처럼 살았던 언니는 어느새 몸무게가 세 자리 숫자로 늘어나 있었고, 세상과의 교류도 다 끊어져 있었다. 그런 언니가 수술 후 다시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동네 사람 모두가 돌아 볼 만큼 몸무게를 줄이고 그렇게나 돌아가고 싶었던 회사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언니는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젊은 날의 그때처럼 알 수 없는 희망에 부풀었던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는 언니가 떠나 있었던 15년의 시간동안 많은 것이 변해 있었고, 언니는 더 이상 20대도 아니였으며 오십을 바라보는 아줌마 신입사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게다가 이, 삼십대 남자들만 있는 부서로 발령을 받아 그들의 서열놀이에 끼지도 못한 채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할 뿐이라고 했다.

  "자기 엄마보다도 내가 두 살이 더 많다고 했던 그 직원 말이야, 그 사람도 아주 철처하게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내가 엄마 나이뻘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친해져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던지 아니면 차라리 나이를 잊어버려. 아니 회사에서 나이를 왜 따져. 그냥 먼저 들어 온 사람과 나중에 들어온 사람만 있는 거 아니야?"

  "어쨌든 너무너무 섭섭하고 속상해. 칠개월이나 함께 일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언니에게 여자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언니도 처음부터 나이타령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굴할 만큼 나이어린 선임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다. 오래전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나이많은 신입에 대해 경계했던 직원들도 그런 언니에게, ‘소녀같다’거나 나이답지 않게 ‘해맑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네며 점점 경계를 풀어가던 즈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언니는 자신의 나이와 자신의 처지를 저울질 해가며 혼람스러워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가장 연차가 오래된 직원이 하루종일 일을 언니에게만 미룬채 계속 짜증과 화를 내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던 어느 날 언니는 그만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언니는 그 직원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는 것으로 소심하게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했던 것이다.

  "나한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건 아니지만 말이야... 내가 옆에 있는데 서류를 집어 던진다거나, 쓰레기통을 발로 차는 건 나를 무시한 행동 아니냔 말이야.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으며...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아니, 내 나이가 얼만데..."

  "나이 얘기는 그만 하라니깐. 그렇게 존중받고 싶은 사람이 거기는 왜 다시 간거야? 그럴거라고 예상 못했어? 그때 언니는 너무 자신감에 차 있어서 그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말이야... 다들 언니가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재입사를 했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겠어?"

  그러자 다음 날부터 회사의 공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부서의 모든 사람들이 언니를 못 본척 했지만, 모든 일은 언니의 책상위에 쌓여 있었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몰려 나간 사람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언니가 일과 씨름을 하고 있어도 그들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핸드폰만 들여다봤다고도 했다. 

  "하필 그럴 때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나를 힐긋 힐긋 쳐다보는데... 손이 덜덜 떨리고 얼굴에 열이 오르지 않겠니. 내가 가장 두려운 상황이 그런거란 말이야..."

  여자는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자 역시 그런 상황을 가장 무서워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게 되는 순간.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아무에게도 존중 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들키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진짜 그런 사람이었을까... 어쨌든 여자 역시 언제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었다. 

  "그럴때는 말이야, 휴지를 말아서 양쪽 귀에 꽂고 눈을 감아버려. 아무것도 안들리고 안보이게 말이야."

  "뭐어? 그게 무슨 개 풀뜯어먹는 소리야?" 

  "엄마는 옛날에 이렇게 했다고. 엄마도 언니처럼 그랬잖아. 기억안나? 엄마도 맨날 회사에서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 했었잖아. 못된 아줌마들이 엄마 따돌리고 괴롭히고 그랬잖아. 그런데 어떻게 됐어? 나중에는 그 아줌마들이 엄마한테 화를 풀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하고 그랬잖아. 지금 언니 얘기가 나는 그 때 엄마 얘기랑 똑같이 들려." 

  관계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 우리들은 언제나 그랬다.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기역코 토해내고만 언니의 울먹임에 여자의 마음도 점점 무거워졌다. 하지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할지 여자도 더 이상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너무 친해지려고 애쓰지마.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언니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되면 말이야, 그 사람들도 마음을 열지 않겠어? 왜 그렇게 조바심을 내고 안달을 하는 거야..."

  "몰라 그냥... 싫어. 혼자가 되는 게 싫단 말이야. 너는 *서방이 있어서 모를거야.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이 있는데... 나는 집에 돌아와도 아무도 없잖아. 그러니까 아무도 옆에 없는데... 회사에서까지 혼자이고 싶지 않다고."

  언니가 혼자라면, 언니의 말대로 아무도 없다면 지금 울먹이며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야? 여자는 문득 그렇게 묻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쉬지 않고 번화벨을 울려대서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자신은 도대체 언니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게다가 이혼은 언니의 선택이었는데... 내내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이기만 했던 언니는 사실 자신과 다름없는 사람이었던 걸까. 혹시 언니에게 자신이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닌지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니야. 점점 뜨거워지는 전화기를 볼에서 떼어내려는 듯이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여자에게 언니는 언제나 이렇게나 못된 사람이었다. 불쑥불쑥 죄책감을 자극하고 여자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어릴때나 함께 일할 때나 지독히도 고약하게 굴더니... 이제 좀 떨어져서 살만한가 했더니 여전히 여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혼자가 될까 전전긍긍 하면서도 가까에 머무르는 사람을 집요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낯설고도 어딘가 모르게 지긋지긋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일하는 곳에 단짝이 없어. 출퇴근 버스를 타면 자기네들끼리 하하호호 하느라 엄마는 쳐다보지도 않는단다." 

  "그럼 엄마는 버스에서 뭐해?"

  "음... 그냥 휴지를 말아서 귀에다 꽂고 자는 척해."

  "그럼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 하는지 안들려?"

  "음... 아니 다들려."

  여자는 갓 중학생이 되었고,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남학생들이 사라져 버려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어느 새 여기저기 무리지어 버린 아이들 사이에 좀처럼 끼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다. 여자도 알고 있었다. 엄마가 출퇴근 봉고차 안에서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말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책상에 옆드려 자는 척을 하고 있어도 아이들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다 들렸으니깐. 까르르 부서지던 웃음소리마저도. 그런데 희한하게도 여자는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그저 엄마를 향해 웃는지 우는지 알수 없는 표정으로 힘겹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고3 때는 밤1시가 되어 집에 돌아와도 엄마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 되어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아줌마들이 또 그래? 그래서 또 이러고 있는거야?"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여자는 교복도 벗어 놓지 않은 채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가 심장이 벌렁거려서 잠이 안와."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말이야..."

  엄마는 여자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사실 그 이야기들은 전부 여자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언제나 겉돌아야 하는 자신을 위한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엄마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작 나한테는 별로 위로가 안되었는데 말이야... '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들었던 많은 밤들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언니에게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묻도 싶었다.

  "우리는 왜 다 이런거야?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건 이제 그렇다고 쳐. 대인관계가 좀 힘든 사람들인가보지 뭐... 다들 눈치 보면서 더 잘해주지 못해서 안달이잖아. 온 가족이 남들 비위맞추며 사는 사람들인데 뭐. 그런데 더 이상 어쩌라고. 오히려 그러니까 더 우스워보여서 막 대하는 거 아니야. 나는 이제 그게 더 궁금해. 그렇게 인간관계가 힘들면 그냥 혼자 있으면 안되는 거야? 적당히 내 할 일 하고 남한테 피해 안주면서 그렇게 살면 안되는 거냐고? 왜 다들 사람들하고 못 어울려서 안달이야?"

  "사람은 원래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본능적으로, 네가 말하는 건 '포기'하고 '체념'하는 거잖아. 그런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니?"

  여자는 누구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애를 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인맥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분들이셨다. 특히 아버지는 더더욱,

  "웃기는 게 뭔 줄 알아. 우리가 뭐 그리 대단한 일 한다고 그놈의 인맥 타령을 해댄 거냐고?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면 땡인 인생인데 인맥 넓혀서 뭘 할건데? 그저 아버지도 두려웠던 거야... 혼자가 될까봐. 결국 그 두려움이 우리마저 이렇게 만들어 버린거라고.  언제까지 사람들 하고 잘 지내려고 쩔쩔매야 하는 거냐고? 난 이제 정말 사람들 눈치 보는 데 지쳤어. 누가 나 미워할까봐 비위 맞추고 듣기 좋은 소리 하는데 지쳤다고. 언니도 그냥 돈이나 벌면 되지 잘 지내서 뭐 할건데... 진정한 우정이니 의리니 하는 거 죄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판타지야. 사랑만 판타지인 줄 알아? 순진한 우리 같은 사람이나 그런게 있는 줄 알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거라고. 평범한 사람들은 우리 같은 사람을 오히려 부담스럽고 불편해 할거야. 못된 사람은 괴롭히거나 이용하려고 들거고 말이야. 그러니깐 이제 나이 값 좀 해. 엄마도 퇴직하실 때 까지 그러더니 언니도 그럴려고 이러는 거야? 그래도 나이들면 좀 괜찮아져야 하는 거 아니야?"

  여자는 어린 시절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지금 힘들어도 어른이 되면 다 괜찮아 질거라고. 나이가 들면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친구를 잘 사귈 수 있는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친구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든지 둘 중 하나라도 될거라고 믿었다.

  "나이 값은 무슨... 엄마를 봐. 칠십이 넘어도 아직 아줌마들 때문에 애태우는 거 못봤어?진짜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거야. 돈이나 억 소리 나게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이렇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냔 말이야. 정말 이 나이에 다시 취업하니까 다들 내가 우스워보이는 건가. 로또나 사러가야 할까봐."  

  


  "그렇게 힘든 자리니깐 언니를 다시 뽑은거야. 언니가 뭐 대단해서 다시 뽑아 준 줄 알았어? 당연한 거 아니야? 성공했으면 다시 돌아갔겠냐고... 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 거지."

  다음 날 여자는 언니를 찾아가서 집 앞 카페에 마주 앉았다. 결벽증 때문에 집안에 사람을 들이지 않는 언니를 찾아가는 것도 사실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울먹임으로 전화를 끊고 밤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와 언니는 마주 앉아 있어도 편한 사이는 아니였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말을 쏟아 내기만 하는 언니는 여자에게도 진이 빠지는 상대였다.

  "그런가? 그래도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난 진짜 내가 대단해서 재입사에 성공한 줄 알았는데..."

  퀭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언니는 옷차림도 막 회사에서 퇴근한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잠을 잘 못잤어. 쉬는 날도 집에 혼자 있기 힘들고."

  "그래도 좀 쉬어야지. 일도 힘들텐데... 옷도 좀 그만 빨아. 아니면 다른 옷이랑 좀 돌려가며 입던지. 그게 뭐야?"

  언니는 원래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그날 입은 옷을 빨아서 말리느라 잠을 설치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날 밖에 나갔다 온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는 집에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몰랐다.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나도 얼른 들어가서 씻고 빨래해야 하는데..."

  "언니가 걱정되서 왔지. 우리는 같은 회사 제품이니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서로 뿐이잖아. 애당초 좀 불량품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애정에 대한 목마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 그래서 모두의 눈치를 보지만 정작 마음을 나누는 법을 몰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가장 괴롭히고 미워하는 사람들. 

  "원래 그랬잖아. 옛날부터 우리가족 그 누구도 서로를 위해 줄줄 몰랐지. 그저 싸우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그러면서도 서로 떠날까봐 전전긍긍하고. 그런 우리가 과연 누구와 마음을 나눌 수 있겠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다는 것도 다..."

  "아, 이게 뭐야? 아니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빠져 나간거야?"

  언니는 핸드폰에 빠져 여자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무슨 일인데?"

  "아니, 요금이 지난 달 보다 두배는 더 빠져 나갔는데... 고객센터에 전화해 봐야겠다."

  "벌써 저녁 8시가 다 됐는데..."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에서는 신호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업무시간이 종료되어... 

  하지만 언니는 멈출줄을 몰랐다. 짜증섞인 한숨소리와 반복되는 신호음과 기계가 내뱉는 안내 메시지, 그리고 몸 여기저기를 긁어대는 기분나쁜 마찰음까지.

  "아, 나는 짜증이 나면 몸부터 간지러워서 진짜 미치겠다. 왜 또 이런일이 생기는 거야?"

  "그만 좀 해. 그러다 피나겠다. 내일 다시 해 보면 되잖아. 업무시간이 종료되서 안된다는 데 자꾸 다시 걸면 무슨 소용이야?"

  언니는 여자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다시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느새 투명한 유리잔 속에 얼음이 다 녹아버려 커피색은 한층 옅어져 있었다. 그리고 커피잔 아래에는 잔에 부딪혀 물이 되어버린 공기가 점점 더 큰 원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여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려구?"

  "응..."

  여자는 언제나 언니가 그리웠지만 언니와의 만남은 슬프게 끝나기 일수였다. 떠나고 싶어도 도망치고 싶어도 ... 그들은 결국 낯선 곳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번번히 가족 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그저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슬픈 중력인 뿐인 것일까.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고, 헤어지고 싶지만 헤어질 수 없는... 여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이야기의 끝은 가족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그곳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니까. 하지만 여자는 그 순간 가족이라는 중력을 벗어나 멀리 지구 밖으로 도망치고만 싶었다. 또 끌려가게 될지라도.

  좀 쉬어. 덜 피곤하면 좀 괜찮아 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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