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엄마, 왜 찍찍이 하나를 제대로 못 붙이냐고? 힘껏 당겨서... 자 이렇게 붙이란 말이예요. 이렇게."
여자는 끙하는 신음 소리를 내며 입을 앙 다문 채, 엄마의 다리에 있는 보조기 양쪽 날개를 있는 힘껏 끌어당겨 함께 붙였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양쪽 팔이 저릿했지만,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엄마를 향해 고개를 들어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공 관절 수술을 끝낸 엄마는 양쪽 무릎에 파란색 보조기를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릎 뿐만 아니라 허벅지와 종아리의 반을 감싸는 보조기는 여러군데를 조여 붙이기를 반복하고 마지막에 전체를 감싸며 한번 더 붙이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양쪽 날개를 붙들고 있는 엄마의 그 표정이 무색하게 느슨하게 감겨진 보조기는 언제나 몇걸음 옮기기도 전에 바닥에 질질 끌리기 일쑤였다.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희한하게도 화가 치솟았다. 다시 어질러진 집안과 음식물이 쌓이기 시작한 냉장고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여자에게 엄마가 ‘안돼, 안된다고. 엄마가 한다고 해도 안된단 말이야.’ 라고 말할 때, 여자는 정말로 화가 났다.
살아오면서 엄마는 여자에게 언제나 그렇게 말하곤 했던 것이다. 안돼. 엄마는 한다고 하는데, 인력으로 안되는 것도 있는거야. 여자는 결국 그 말에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집에 쓰레기가 넘쳐나도, 냉장고에 음식물이 썩어나가도 엄마는 맨날 그 소리지? 그냥 버리면 되는 걸... 뭘 한다고 했다는 거야? 그건 다 핑계일 뿐인거잖아. 겨우 무릎보조기 찍찍이하나도 제대로 붙이려고 애를 안쓰면서. 안되면 애를 써야지. 죽자고 애를 써야지.
엄마,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남들은 다 비웃을지 몰라도... 겨우 이 정도 사는데도 죽자고 애를 썼어. 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짜 끔찍해지지 않으려고... 끔찍한 삶을 수도 없이 봐 왔으니깐."
언제나 사람도리를 강조하며, 거짓말을 하지 말고 한 번 뱉은 말은 책임져야 하며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라고 누누이 당부하던 엄마는 여자의 눈에 그저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살피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다. 물론 그 말이 여자의 귀에도 훌륭한 가르침으로 들렸을 때가 있었지만 자라면서 여자가 목격한 엄마의 삶은 자신도 가족도 뒷전인 채 남들의 인정에 목을 매는 모습이 전부였던 것이다.
정작 엄마의 가족들은 쓰레기장에서 살아왔는데, 엄마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살아왔을까. 아니, 정작 엄마는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도대체 왜?
"엄마, 아버지가 바람피고 밖으로 나돌아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해요. 아니면 칠십평생 엄마 인생을 이렇게 내버린거에 대해서 무슨 핑계를 댈 수 있겠어. 엄마는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거야. 엄마는 아직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지? 옛날에도 그랬잖아. 집안꼴이 어떻게 되든 우리가 어떻게 되든 하루종일 누워서 천정만 보고 있었잖아. 우리한테는 엄마 인생하소연 하고 아버지 원망하고... 엄마 인생 재미없고 허망한 거 다 아버지 탓 같지. 자식들이 다른 집 자식들처럼 자식도리 안하니까 그러는 거 같지. 엄마는 손자도 없고, 가족이 단합도 안되고 그래서 다 그런거 같지? 엄마가 불행한 건 다 우리 때문인 거 같지. 그래서 맨날 우리 원망 하는 거잖아. 엄마 잘못은 하나도 없고 말아야..."
"됐어, 그만해. 지금 그 소리가 왜 나오냐?"
"뭘, 그만해. 안먹는 거 버리는 게 그렇게 힘들어? 왜 먹지도 않을 걸 부득부득 해놓냐고. 남들하는 거 다 하고 살고 싶은 거야? 먹을 사람도 없는데... 감당도 못하면서 말이야..."
냉장고 문을 힘껏 닫으며 여자는 소리를 높였다. 다른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럴 듯한 모습으로 살고 싶은, 아니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것이 엄마인생의 목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마는 그렇게 살아 온 사람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가족의 삶이 시궁창 속을 헤맬 때도 겉으로는 번듯한 삶을 살고 있는 체 하는 부모님이 미웠다.
'엄마한테 우리는 없는 거잖아... 내가 그렇게 애를 써서 다 치웠는데 엄마한테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거잖아. 엄마를 위해서 그 고생을 했는데... 엄마한테는 다 소용없는 거잖아. 내 마음 따위는...'
그것은 엄마를 찾아 올 여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의 집, 아니 부모님의 집이 그립고 따뜻한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사실 여자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이런 곳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그 순간 멀리멀리 아주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이제 여자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운동도 맨날 힘들다고 하고, 밥도 제대로 안 챙겨먹고 이럴거면 왜 수술했어? 내가 고생한건 엄마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지? 아니면 나를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지. 엄마가 그러니까 나도 이모양 이꼴로 사는 거라고. 엄마는 자기 자신도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이잖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나 신경쓰지..."
"너는 나이가 그렇게 먹고서 무슨 부모탓이냐. 이제 니 인생은 네가 잘 살아가야지."
"나 억울해. 이렇게 태어나서 엄마랑 빼다박은 듯이 똑같은데 엄마탓도 하지 말라고 하고. 나도 내 인생 잘 살고 싶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번번히 내 발목을 잡은게 뭔 줄 알아? 그 잘난 엄마의 도덕강의가 내 발목을 잡는다고. 내꺼 하나 못챙기는 바보가 됐다고. 남 눈치나 보는 바보 말이야. 남 신경 쓸 형편이나 돼 우리가? 아버지는 밖으로만 돌고, 엄마는 그 잘난 사람 도리한다고 집안은 내팽개치고. 언니랑 나랑 어떻게 살았는 줄 아냔 말이야? 그래놓고 이제 와서 ‘엄마도 한다고 했다’ 그 소리만 하고..."
자신보다 남들이 우선이었던 엄마에게 당연히 자식도 우선이 아니었다. 정작 자신의 가정이 어떤 꼴인지도 모른 채 엄마를 사람도리에 매달리게 한 건 또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 애정에 대한 목마름이거나 당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혹은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박도 싶은 욕구라고 여자는 생각 했다.
"그러니까... 엄마나 아버지는 언제나 자기 자신만 생각했던 거라고."
여자는 어린시절 그런 엄마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조차 챙길 줄 모르는 부모님의 노년이 육중한 무게가 되어 그녀를 짓눌렀다.
"잘난사람들은 다 자기밖에 모르고 살더라. 엄마, 주위를 한 번 둘러봐봐. 엄마가 옛날에 했듯 엄마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냐고? 엄마가 맨날 하는 말 있잖아. 누구누구는 자기 가족 밖에 모른다고. 엄마는 섭섭한 생각이 드는 지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죄야? 오히려 정상이라고. 지금 봐봐. 우리 걱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엄마, 아버지 더 나이드시면 나 밖에 더 있냐고..."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여자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섭섭했고, 자신이 불쌍했다. 예전의 엄마처럼 말이다.
"어린 우리한테는 엄마 밖에 없었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바빴던 거야?"
" 허유 참... 별소리 다 듣겠다. 그럼 자식이 돼서 부모가 아픈데 이 정도도 안해?"
하지만 엄마는 부모의 권위를 차마 다 세우지 못하고 마치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어쩔줄모르고 여자 앞에 서 있었다. 못하고, 해도 안되고 결국 하기 싫은 게 많은 어린아이 같은 엄마를 보고 있자니 여자 역시 당황스러웠다.
세상의 전부이고,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엄마에게 사람받기 위해 갖은 애를 썼는데, 그런 엄마의 실체가 결국 한없이 나약한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이 여자를 적잖게 당황시켰던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목을 메고 있었던 걸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사랑받고 인정 받고 싶었나봐. 나도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나봐'
"엄마, 엄마가 맨날 하는 말처럼... 그래, 인력으로 안되는 것도 있잖아.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는 거라고. 엄마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깐 원하는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도 내가 할 수 없으면 포기해야지. 엄마는 할 수 없는 데 이렇게 벌려만 놓으면 나보고 다 해결하라는 소리야?
정 살림이 힘들면 간소하고 살면 되고, 먹을 사람이 없으면 음식도 조금씩 하고, 안 먹으면 빨리 버리고 말이야... 이렇게 쌓아놓고 먹지도 않으면서 버리기 아까우면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어떻게 평생을 이렇게 하나도 안 변하고 똑같이 살 수 있어?"
여자는 베란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이름모를 장아찌와 효소가 담긴 유리병들을 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김치냉장고에는 손도 안댄 김장김치가 차곡차곡 포개져있고, 냉장고 안에는 반찬가게에서 사온 김치가 한가득 있었다. 가족이 줄어가는데, 엄마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누가 김치를 담궜는데 좀 나눠주지 않으면 엄마는 마치 보란 듯이 더 많은 양의 김치를 담궜다. ‘섭섭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내 손으로 담궈 먹으면 되지... 누군가 엄마의 음식을 맛있다고 하지 않으면, 맛있을 때까지 또 만들고 또 만들기를 반복했다. 냉장고가 꽉 차 있어도 누군가 나눠주는 음식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다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렇듯 엄마의 인생에서 엄마가 결정하는 것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작은 선의에도 크게 기뻐하고 작은 소외감도 견디지 못하는 엄마에게 현실세계는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여자는 엄마의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나 고분고분 말 잘듣는 딸이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삼키고 언제나 엄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드디어 자립을 하고 마주친 엄마의 실상은 자신의 인생하나 책임지지 못한 채 남편을 원망하며 끝없는 외로움 속을 헤매고 있는 어린아이였다.
"아버지가 엄마 인생 망친거 아니야. 엄마 인생은 엄마가 망친거야. 나도... 나도 이렇게 엄마 원망이나 하면서... 내 인생 망친 건 엄마라고, 엄마하고 똑같이 이렇게 살고 있잖아. 사람들한테 동정해 달라고, 나를 좀 봐달라고 비위나 맞추고 눈치나 보면서 말이야."
"그럼 엄마 보고 어떡하라고?"
"그냥... 제발 그 찍찍이 하나라도 제대로 붙이면서 살란만이야. 딴 생각하지만고 눈 앞에 찍찍이가 있으면 그것만 생각해. 딴 생각 할 것도 없어. 누구 원망도 할 거 없어. 누가 해결해 주지도 않아. 엄마 인생은 엄마가 망친 거니까. 내 인생은 내가 망친거고."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모으고,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 오후의 햇살이 두 사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여자는 오른쪽 손을 들어 눈물을 한 번 훔치고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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