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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 Apr 01. 2023

엄마를 미워하는 게 아니야, 벗어나고 싶은 거지

  여자는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똑같은 말을 되뇌고 있었다.

  '엄마를 미워한다는 말이 아니야. 어떻게 하면 엄마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 거지...'

   

   대낮인데도 집안의 창문은 모조리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아니 가려져 있다기보다 지금껏 그 커튼을 열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틈을 비집고 들어온 가느다란 햇살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거운 실루엣들에 희끄무레 내려앉아 있었다. 애써 불을 찾지 않아도 여자는 알 수 있었다. 집안을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것은 빈틈없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실루엣보다 더 강력하게 여자의 감각을 파고들었다. 텁텁한 먼지 냄새, 눅눅하고 오래된 습기의 냄새, 무언가가 썩어가고 있는 시큼하고 역한 냄새... 바로 오래전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의 냄새였다.

   현관에서 식탁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에도 여자는 몇 번이나 발에 밟히는 무언가를 치워야 했다. 식탁 위에 작은 불을 켜자 가스버너와 지저분한 냄비, 라면과 뒤섞인 밥이 그대로 담겨진 그릇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뜯겨진 라면 봉지에는 라면이 절반쯤 남아 있었고, 말라비틀어진 사과 껍질도 한켠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반개만 끓인 라면조차 아버지는 다 먹지 못하고 내 팽개쳐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식탁을 비추는 흐릿한 조명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여자의 기억을 익숙한 장면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엄마가 차려내는 밥상을 보고서 쯧, 하고 앙다문 앞니에 혀가 쩍 하고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를 내곤 했었다. 

  "두부는 좀 얇게 썰어서 반듯하게 부쳐야지... 무슨 걸레 널어놓은 건 마냥 이게 뭐야, 쯧. 김치도 도마를 꺼내서 반듯하게 좀 썰란 말이야, 가위로 대충 헤집어 놓지 말고, 쯧..."

  밥을 한 숟가락 씩 떠먹을 때마다 쯧, 쯧, 쯧. 그 소리가 조용한 집안에 울려 퍼지던 것을 여자는 똑똑히 기억한다. 퍼석한 밥도 지저분한 상차림도 아버지는 언제나 못 마땅해했었다. 궁색하게 떠오른 건더기에도 차마 닿지 않도록 숟가락 끝으로 간신히 떠낸 국물에 밥 몇 숟가락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얼른 밥상을 떠났던 것이다. 

  "아이고, 무슨 사람이 밥을 먹은 흔적도 없데. 나물 한 가락도 제대로 안 먹으면서 만날 반찬 타령만 하지. 으이구..."

  그리고 엄마는 마치 아버지에게 항의라도 하듯이 식탁 위에 가득 놓여있던 반찬들이 그대로 말라비틀어지도록 내버려 두거나 냉장고 속에 밀어 넣어 버리고는 영영 되찾지 않았다. 

  그래 냉장고. 이제 여자의 시선이 냉장고로 옮겨갔다. 오래된 냉장고는 굳게 닫혀 있었지만 여자는 차마 그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냉장고를 언제 마지막으로 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이다. 여자는 언제나 냉장고가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을 켜지 않은 건 그 냉장고를 차마 마주 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냉장고에서는 언제나 검은 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물이 냉장고 아래 바닥에 조금씩 고여있기도 했었다.

   

   여자는 언제나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서른두 살이 되었을 때 집에서 나올 수 있었고 그 후로는 엄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너희 아버지’에 대한 하소연으로 어쨌든 이틀에 한 번 꼴로 통화를 하고 있었고, 그 하소연 속에 두 사람이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건강은 어떻게 챙기고 있는지 같은 일상의 소소함 들은 다 묻어버렸던 것이다. 어떻게든 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여자의 어린 시절부터 부모는 나날의 일상을 꾸려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굴었다. 살림살이를 정리하거나 집안을 청소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같았고, 먹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거나 소용이 다한 물건을 버리는 법도 없었다. 식탁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닦인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식탁 위가 단 한 번도 비워진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여자가 보기에 아버지는 그 모든 책임을 솜씨 없는 엄마 탓으로 돌렸고, 엄마는 그 모든 책임을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 탓으로 돌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 사이에 집안일은 언제나 여자의 몫이 되었다. 그것은 어린 여자에게 너무나 벅차고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칭찬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당연히 냉장고를 정리하는 것도 언제나 여자의 몫이었다. 

  여자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자꾸만 흩어지는 생각들을 한데 모아 다시 냉장고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큰 고무대야를 떠올린 여자는 얼른 뒷배란다 문을 열었다. 햇살이 환하게 여자에게 파고드는 만큼 온갖 잡동사니들이 여자에게 덤벼들듯 쏟아졌다. 어렵게 꺼내든 대야를 놓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쩍'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틈으로 썩은 냄새가 여자에게 밀려들었다. 꺼낸다는 말보다 쓸어 담는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미 형체를 알 수 없이 썩어 검은 물이 되어버린 것들이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통마다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도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알 수 없는 찐득한 물에 말라붙어 선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 형체와 색을 가진 것은 거의 없었다. 검은곰팡이덩어리가 되어 말라비틀어지거나 검은 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과연 냉장고를 열어 보기나 한 걸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가 냉장고를 영영 잊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기는 했었다. 흘러내리는 검은 물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수건 몇 장에 곳곳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여자의 입에서 한 숨이 절로 세어 나왔다. 여자의 기억에 엄마는 냉장고를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지독한 악취가 여자를 파고들었다. 

  여자와 언니가 집을 나가고 나서 자식들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집안의 균형은 이제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뭉쳐진 이불은 아버지의 잠자리 인 듯했다. 소파 위에는 언제 입었는지 모르는 옷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머리맡에는 꾸러미마다 가득 차 있는 약봉지들, 이제는 더 이상 못 먹게 된 주전부리가 담긴 접시들, 물병과 컵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지금 여자 앞에 마주 서 있는 건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예전에 자신이 쓰던 방도 지금 엄마가 쓰고 있는 언니의 방도 모두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안방 문을 열자 아무렇게나 옷이 걸려있는 행거들이 방안 가득 들어차 있었다. 베란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각자 몸을 뉘일 작은 공간을 제외하고는 온 집안이 '쓰레기'로 가득 차버린 것이다. 비록 엄마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여자가 집을 떠나고 십 년 만의 일이었다. 밖에서 만나는 엄마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는데... 그것이 여자를 더욱 화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여자는 자신의 부모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부모의 모습으로 자신의 의식 속에 존재하기를 바랐다. 고단한 생활에 지친 몸을 끌고 다니면서도 살뜰하게 가정을 돌보고 자식들을 챙기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기는 가족이 되기를. 지금은 여자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자는 그 환상 같은 이야기를 믿고 싶었다. 덕분에 지금 문밖에서는 따뜻한 공기가 주위를 감싸고 천지사방에 피어나는 꽃처럼 설레는 마음이 피어나도 여자는 언제나 차가운 냉기가 도는 겨울 한가운데 자신을 가둬놓아야 만 했던 것이다.


  냉장고 속은 마치 세월의 지층이 쌓인 것처럼 보였다. 흐릿하게 표기된 유통기한은 십여전 전의 날짜를 가리키고 있기도 했다. 봉지에 둘둘 말려져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은 언제 냉장고 속으로 쫓겨간 것일까. 한 번 들어간 것은 다시 나오는 일이 없었고, 그것은 점점 형체를 잃고 썩어가면서 냉장고를 일부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음식들이 쌓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음시에 불만과 요구가 많았고, 덕분에 엄마가 내놓는 음시의 대부분은 그대로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여자가 보기에 아버지가 원하는 음식은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본인도 느껴보지 못한 어머니의 맛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라는 건 아버지에게는 존재한 적도 없었을 텐데...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아버지는 그저 굶주림의 기억뿐이었을 텐데...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면서 엄마에게 바라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거실에서 닥치는 대로 쓰레기봉투 속을 채우던 여자 역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여자역시 사람들이 말하는 영원한 안식처인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지만, 그것 역시 여자에게 애당초 존재한 적이 없는 곳이었다. 여자에게 집은 언제나 안락하고 청결한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여자는 아무리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아도 그리운 곳도 없었고 그리운 사람도 없었고 그리운 엄마의 음식도 없었다. 결혼을 하고 처음 김밥을 싸던 날 여자는 괜히 김밥을 썰다 말고 눈물이 훔치던 기억이 났다. 김밥을 만드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괜히 서러워졌던 것이다. 어린 시절 김밥을 좋아했던 여자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김밥이야기를 꺼내면 가슴이 설레곤 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번번이 번거롭고 힘들다면서 싫은 내색을 했었다. 당연히 그런 엄마에게 여자가 먼저 나서서 김밥얘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고, 집에서는 먹기 힘든 음식이었는데 간혹 먹을 기회가 있더라도 엄마가 싼 김밥은 거의 누더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힘들다고만 했다. 어린 여자는 엄마가 가족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을 힘들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집안일을 떠맡아야 했던것이다. 그런 여자가 그리워할 것이 뭐가 있을까. 


  마구 쑤셔 담듯이 여자는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집어서 쓰레기봉투에 밀어 넣었다. 어느새 작은 창으로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여전히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거실에는 가득 채워진 쓰레기봉투들만이 슬픈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얼굴은 땀에 젖어 번들거렸지만 아직 집안은 조금도 비워지지 않았다. 물건이 있으면 먼지만이 그곳에 쌓일 뿐이었다. 결국 그 집에 놓인 물건이라는 건 먼지를 모으는 용도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쓰레기 봉투를 채우며 여자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그 옛날 어린 시절처럼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일도 아니었다. 보물을 파헤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잃어버린 안식처를 찾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여자는 그저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여자 자신의 인생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설 수 있는 쓸쓸하지만 따듯한 존재로서 자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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