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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 Feb 07. 2023

엄마의 입원... 부려먹는 자식따로, 어려운 자식따로

  여자는 자신이 아직 어린 아이였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쉽게 얼굴에 열이 오르고 몸을 덜덜 떨리게 만들던 심장의 세찬 펄떡거림은 소리로 혹은 느낌으로 기억나곤 했다. 그러다 이내 얼굴을 타고 흐르던 뜨거운 물줄기와 입으로 스며들던 짭짤함까지 떠오르는 것이다. 여자는 그렇게 소심하고 마음이 무척 약한 아이였다.

  그 밖에 것들은 뿌연 안개 속에 가려진 것처럼 흐릿하기만 했다. 친구들과 뛰어 놀 때는 어떤 말을 했을 까, 어떤 놀이를 좋아했을 까, 과연 밖에서 뛰어 놀기는 했을까? 어떤 반찬을 좋아했을 까... 무엇을 할 때 눈을 반짝였을까. 정말 그런 시간들이 있기나 했던 걸까.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어린 여자의 가슴을 수시로 벌렁거리게 만들었는데, 부모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희한하게 그 생각이 어린 여자를 사로잡은 날이면 늦은 밤까지 잠 못 들곤 했었다.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앙증맞고 예쁜 아이들이 나오면 어린 여자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골목을 서성거렸다. 그 텔레비전 속 아이와 자신을 비교한다면 부모님의 결심이 더 굳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자는 지금도 그 생각이 떠오를 때면 나지막한 한숨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왜 했던 걸까. 어쩌면 어린 여자는 집에서 혹은 가족들 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자신이 버려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결국 여자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슬픈 전제가 깔려 있었던 것일 테니깐.

  그래서일까. 어떤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존재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여자의 머릿속 깊이 박혀 있었다. 그것은 여자의 인생 전체를 관통해서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끊임없이 조종했다. 그랬다. 그 생각이 여자를 지배하고부터 여자는 ‘노력’이외의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지금은 불행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만들더니 실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더욱더 불행해진다는 사실만 깨닫게 만들기도 했다. 여자의 머릿속에서 자신은 끊임없이 깨부수어야 할 사람일 뿐이었고, 남은 것은 그저 ‘노력’을 가장한 자기 학대가 아니었을까.


  결국 엄마는 수술을 결심했다. 

  “남들이 다 욕한다. 남편이 없냐, 자식이 없냐. 요즘 같은 시절에 다리를 절뚝절뚝 절면서 다니면 다들 욕한다 말이야. 다들 그러더라. 수술해버리면 고만인 것을 왜 그러고 있냐고. 안 그러냐.”

  일흔을 넘긴 연세에도 여자의 눈에 엄마는 여전히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보였다. 아직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엄마의 삶. 그것은 이미 삶의 의지를 상실해 버린 여자에게 낯선 것이기도 했다. 

  “수술이 무섭지도 않아? 작년 한 해는 임플란트 한다고 다 보냈는데... 그럼 올해는 무릎인거야? 엄마 이러다가 인조인간 되겠다. 부품 싹 다 갈아 끼우고 말이야.”

  그 때 엄마의 눈은 어떤 밝은 미래를 향해 반짝이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여자가 보기에 엄마는 그저 막연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가 생각하는 것 보다 큰 수술일 수 있는데, 정말 재활이랑 운동도 잘 해낼 수 있겠어? 완벽하게 회복하려면 시간도 꽤나 걸린다는 데... 지금은 그냥 수술만 하면 펄펄 뛰어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오랜 시간 엄마를 옆에서 지켜 본 여자는 걱정이 컸지만, 되레 엄마는 큰소리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만한 각오도 없이 엄마가 수술 한다고 그러는 줄 아냐...”

  “무엇보다 엄마... 엄마를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알지?”

  “걱정 마. 엄마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깐.”

  엄마가 다 알아서 한다는 말,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소리인 줄 알면서도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휴, 다행이다. 직장 다니게 되니까 이런 게 좋구나. 일 핑계로 모른 척 하면 되잖아.”

  여자의 입속에서 내내 맴돌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언니는 호들갑스럽게도 말을 뱉어 내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아버지랑 집은 내가 들여다 볼 테니깐, 언니는 가끔씩 엄마가 필요하다고 하는 거 있으면 좀 챙겨주면 안 돼? 언니는 자주 쉬잖아. 그리고 입원하는 날도 같이 가야하는데... 수술 동의서도 써야하고...”

  “회사 가야지. 나는 안 돼. 그리고 엄마가 다 알아서 한다잖아. 너도 그냥 모르는 척해.”

  엄마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냥 모르는 척 하라는 말, 그 것이 얼마나 공허한 소리인 줄 알면서도 여자는 자신이 더 이상 꺼내놓을 말이 없다는 걸 조용히 수긍하고 말았다.


  “택시타고 갈 거야”

  입원을 며칠 앞두고 여자는 자신의 여행용 가방을 엄마에게 갖다 주었다.

  “너희 아버지는 지하철 타고 가라더라. 병원이 바로 지하철역 앞에 있다고. 

흥, 그래서 내가 훈수 둘 필요 없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가든지 알아서 한다고.”

  “한 달 동안 입원해야 해서 집이 많을 텐데... 엄마. 어쩌려고...”

  사실 여자는 알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지금 모두들 여자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이 공허한 말들이 만들어내는 연극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여자는 알고 있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모두가 편안하고 다시 함께 웃으며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여자는 모르지 않았다. 가족들은 지금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이 집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여자를 집안에서 굳건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게다가 마음이 약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여자의 성향은 오히려 온갖 일을 떠맡고도 마음을 졸여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아무도 너에게 그 일을 강요한 적이 없다’는 핀잔과, ‘별거 아닌 걸로 생색내지 말라’는 냉소뿐이었다.       

  그에 반해 언니가 맡은 역할은 아주 편리한 것이었다. 착한 배역을 맞은 여자가 주로 듣는 것이 가족들의 원망과 분노의 소리라면, 악역을 자처한 언니가 주로 듣는 것은 칭찬과 배려의 말이었다. 여자의 눈에 언니는 존재만으로도 칭찬받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화와 짜증을 달고 사는 언니가 웃기라도 하면 갖은 비위를 맞추던 가족들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밥을 먹을 때도 다 차려진 식탁 앞에 앉는 것이 전부여도 불평 없이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곤란한 일을 죄다 여자에게 떠밀어버려도 언니는 언제나 당당했다.

  “언니한테 말이라도 해 보지 그랬어?”

  “걔가 어디 말 듣는 애니? 나도 괜히 이말 저말 듣기 싫으니까 그냥 내버려 둬.”

  “그래도... 엄마는 언니가 밉지 않지? 헤헤 웃으면서 집에 오면 또 마냥 좋아할 거잖아.”

  “자식이 그런 거지. 밉고 말고가 어디 있어. 부모 자식은 다 그런 거야.” 

  “엄마는 언제나 그랬어. 언니가 뭐래도 언제나 언니가 먼저고, 언니 일이 우선이잖아.

엄마한테 만날 화내고 고생만 시키는데... 돈 있으면 언니 다 주고... 한 푼 챙겨 놓지도 못하고... 결국 엄마 다리 이렇게 된 것도 다 아버지랑 언니 때문이야.“

  여자는 언제나 엄마를 돕는 딸이고 싶었다. 엄마 삶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기를 ... 그래서 엄마가 조금이나마 행복해지고 조금이나 편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가벼워진 무게는 여지없이 언니와 아버지로 인해 다시 채워졌고 그 무게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엄마의 무릎도 망가져 버린 것이 아닐까.

  여자가 착해서가 아니었다. 타고나기를 마음 약하게 타고난 것도 있지만, 여자는 사실 단 한번이라도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엄마와 함께 웃고 함께 행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엄마의 짐을 받아서 짊어져 봐도 엄마의 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엄마의 눈은 언제나 아버지와 언니를 향해 있었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엄마 인생 최대의 과제인 것만 같았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들 중 누구든 할 도리 만하면 상관없는 거잖아. 그렇지? 자식들끼리 역할의 공평함 따위는 관심도 없는거지? 누구 하나가 힘들다고 해도 눈 감아버리고 못들은 척 할 뿐이잖아. 부모는 원래 어느 자식에게도 외면 받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래서 언니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상관없는 거야? 그런데 나는 힘들다고... ’

  “아침 일찍 내가 올게. 어차피 누구든 수술 동의서도 써야 하잖아. 택시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짐만 내가 들면 되는 데 뭘. 엄마가 아예 못 걷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도 잘 다닌다 싶으니까 다들 관심 없나보지 뭐.” 

  “엄마는 걔가 철이 없어서 더 안쓰럽기만 하다.”


  “나는 사실 지금... 잔뜩 겁을 집어 먹고 있는 건지도 몰라.”

  여자는 기억은 그 순간 차갑고 오래된 시멘트 냄새가 가득한 가파른 계단 위를 헤매고 있었다. 자신의 교복치마가 눈에 들어 온 순간 여학생들 여럿이 뛰듯이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이 모였다. 

  “**아, 뭐해? 빨리 와.”

  한 여학생이 여자를 돌아보며 소리치자 다른 아이가 함께 돌아보며 짓궂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눈길이 여자의 오른쪽 어깨위에 잠시 머물자 순간 그곳에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던 여학생들이 여자를 향해 가방을 하나씩 던졌다. 그 가방들이 지금 여자의 어깨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여자가 존재하기 위해 하는 노력이라는 것이 사실은 애걸복걸하며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었고, 그것은 상대방을 더욱 기고만장하고 만들었던 것이다. 여자는 계단을 섣불리 내려가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고, 어깨위에 가방은 점점 바위덩어리처럼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용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에이, 가족끼리 그게 무슨 소리야?” 

  “가족? 하긴... 가족끼리 이런 소리 했다가는 우리 엄마가 또 난리 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 언니 같으면... ‘네가 무슨 이용가치가 있어서?’ 하면서 뜨악할지도 모르지. 아니면 실컷 비웃든지. 하지만...”

  하지만, 여자가 생각하기에 엄마의 엄격하리만치 철저한 가족 중심주의와 신화에 가까운 ‘엄마 역할론’은 사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여자가 생각하기에 엄마는 언제나 자신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부족한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여자에게 확인 받고 싶어 했다. 그러면 여자는 엄마가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말들을 잔뜩 늘어놓았고, 그제야 엄마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여자가 엄마의 사랑을 기대할 때쯤 엄마는 또 여자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여자에게 가족역시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가족모두 같은 ‘병’을 앓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몰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일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 서로에게 사랑을 바라기만 할 뿐, 사랑하는 법은 전혀 모르거든.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버려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더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거고.”

  여자와 엄마는 애걸복걸하는 것으로, 아버지와 언니는 난폭하게 갈취하는 것으로 각자 자신의 연약한 존재 기반을 애써 다져보려고 애썼던 것은 아닐까. 게다가 불행하게도 이 네 명의 조합이 또한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더욱더 서로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사랑이 그립지만 절대 서로를 바라보지 않아. 그저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에 익숙할 뿐이지. 그것만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거든.”

  다른 방법은 몰랐다. 여자는 자신역시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습관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애써 비위를 맞추다가 상대가 자신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면 허겁지겁 도망치기 바빴다. 그 생각이 그저 자신의 착각인지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인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나 역시 그저 살아온 대로 똑같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살아온 대로 또 갈게 될까 봐 두려워졌어.

  그러니까... 간병이든 뭐든 내가 다 하면 되는데... 사실 별로 힘들 것도 없어. 엄마를 생각하면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거지. 그런데 이제 똑같은 결말이 싫어. 내가 노력해야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평화가 지겨워. 엄마를 볼모로 언니와 아버지가 나에게 강요하는 희생이 지긋지긋하단 말이야.“

  결국 모두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하게 되는 훈훈한 결말이 이상적이겠지만, 여자는 자신의 인생에 그런 결말은 없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공상과학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결말이 여자에게는 바로 화목한 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래, 맞아. 나는 겁이나. 그래서 지금 도망치는 거야. 모든 것이 다 내 착각이었다 해도... 다 내 오해 였다고 해도 말이야, 사십년 넘게 지켜봐 온 모습은 그게 전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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