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버스의 넓은 좌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텅 빈 버스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에서 더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시장 앞에 다다르자 몇몇 사람이 버스에 올랐다. 오래된 시장. 그곳은 어린 여자가 할머니를 따라 다니던 곳이었다. 그때는 그 도시에서 제법 번화한 곳이라 식재료를 사는 것 외에도 외식을 하던 옷을 사든 어쨌든 무언가 작은 것 하나라도 구하려면 그 시장까지 나와야했다. 어느 날은 언니가 그곳에서 주머니를 몽땅 털어서 여자에게 리본 핀을 사주기도 했었다.
텅 빈 버스를 조금씩 채워나가는 활기에 놀랐는지, 여자를 붙들고 있던 옛 기억들도 그녀를 조금씩 놓아주었다. 당신 한 몸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구부정한 할머니의 손에 끌려올라오는 손수레의 털컹거림, 저마다의 손에 들려진 봉지들이 만들어내는 바스락거림 그리고 느릿느릿한 발소리와 버스 좌석에 ‘풀썩'하고 몸의 무게를 내려놓은 소리까지. 공기마저 느려진 그곳에서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버스는 가만히 멈춰서 있었다.
옛날 여자가 살던 그 동네에는 이제 시내까지 금방 이동 할 수 있는 지하철이 생겼다. 하지만 여자는 집을 나와서 큰길 쪽으로 가지 않고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래된 공기와 먼지, 무언가 썩어가는 듯 시큰한 냄새를 털어내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대로 지하철을 타기에는 왠지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던 그곳은 여자가 부모님과 함께 살 던 시절 무수히 오가던 익숙한 골목길이었고, 그 길 끝에서 아무 버스에나 올라탈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것은 여전히 목적지 까지 느리고 구불거리게 이어진 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여자의 옛 기억 속에서 여전히 멈춰 있었다. 그녀가 아직 어렸을 때, 그녀가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여자는 어느새 훌쩍 나이가 들어 버렸고, 지하철을 타면 금방 시내에 닿을 수 있는 넓고 쭉 뻗은 길이 있다는 것과는 마치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여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은 짐이 많았다. 큰 상자가 들어있는 똑같이 생긴 종이가방이 두, 세 개쯤 있었고 그것보다 크기가 큰 종이가방이 또 하나 그리고 까만 비닐봉지가 여러 개였다. 그것들을 힘겹게 내려놓고 앉은 사람은 갑자기 큰 종이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들었는데, 고운 분홍색에 잔잔한 비즈가 박힌 모직 스웨터였다. 양 손으로 스웨터의 양 어깨를 받쳐서 들고 한 참이나 들여다보던 그 사람의 뒤통수를 옷과 함께 여자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한 참을 그러고 나서 정성스럽게 옷을 접어 조심스럽게 다시 종이 가방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가만히 그 종이 가방위에 올려 두고 있었다. 여자가 진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손이었다. 똑같은 모양의 상자가 든 종이 가방은 내복이나 속옷 같았다. 그 옷, 그 손길 그리고 이 풍경. 언젠가 분명히 본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 옷은 옛날에 엄마가 외할머니를 위해 그 시장에서 샀던 옷과 놀랍도록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한 참을 바라보고 나서 짓던 엄마의 미소와 상자에 담겨있던 내복들. 그리고 그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있던 할머니와 엄마의 들뜬 목소리. 여자는 황급히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뜨거워졌던 것이다.
그 날부터 생긴 이상한 증상이었다. 여자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길을 걷다가도, 동네마트에서 시금치를 고르다가도, 은행에서 대기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다가도 여자는 갑자기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그런데 출혈이 좀 많으셨어요. 일반적인 출혈양의 2.5배정도.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원래 이 수술 자체가 출혈양이 많은 수술이기도 하고요, 환자분의 경우는 혈전 용해제를 오래 복용하신 것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수혈을 진행하고 있는데 5시간 정도 걸릴 것 같고요, 이틀 정도는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결국 통합간호병동에 입원을 결정한 엄마와 여자는 병실 입구에서 헤어져야 했다. 보호자의 병실 출입은 안 된다는 말에 가방을 건네주는 여자는 자신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 혈압이 너무 높아서 빨리 안정을 좀 취하셔야 해요. 보호자 분은 돌아가 계시면 수술 후 연락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엄마를 홀로 병원에 남겨두고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수술을 앞두고 긴장을 했는지 가뜩이나 높은 혈압이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입원 당일 날 오전 8시쯤 아침 식사를 하고 공복을 유지하라는 안내를 잘 못이해하고 전날 저녁 식사 후 내내 공복을 유지하고 있다는 엄마의 말은 여자를 바짝 긴장 시켰다. 오랜 세월 당뇨를 앓아왔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빨리 검사를 마치고 식사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막상 검사실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대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자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지금부터 엄마가 해야 할 검사의 이름들이 종이 한가득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중 ‘복부 초음파 검사’라는 글자 위해 쳐진 동그라미 몇 개와 ‘금식 중!’ 표기는 여자의 눈에만 다급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 검사부터 먼저 진행하셔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일단 뭐라도 좀 드시게 하세요."
그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던 것 역시 여자뿐인 것 같았다. 엄마의 차례가 되었을 때 여자가 엄마의 상황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누구하나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먼저 진행해야 한다는 ‘복부 초음파 검사’는 담당 선생님이 검사를 오전에 몰아서 한꺼번에 진행하기 때문에 오늘은 더 이상 검사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내일 아침, 수술 전에 할 수도 있어요."
"그럼 지금 두유 하나 정도는 드셔도 될까요? 다른 검사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일단 확인 한 번 해볼게요. 그리고 두유 드시려면 다른 과에도 확인해 보셔야 해요."
대기실을 점점 사람들 꽉꽉 채워지고 있었고, 작은 소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도 했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점점 검사 순서나 의료진들의 응대에 예민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계속 똑같은 질문을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대답은 언제나 확인해 보겠다는 말뿐이었다.
"엄마, 배고프지 않아?"
"응, 괜찮아."
하지만 엄마의 얼굴에 언제나 머물던 웃음이 그 순간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도 많은데 그만 돌아다니고 앉아 있어. 엄마 정말 괜찮아."
"점심시간 전에는 끝나야 병실에 올라가서 점심을 먹을텐데... 늦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병실에 올라가 서 점심 받아 놓을까? 짐은 내가 들고 올라가면 되잖아."
"됐어. 엄마는 괜찮다니까."
"엄마는 맨날 괜찮다고만 그래. 잘모르면서 말이야, 대책도 없으면서 말이야. 그러니까...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병원에 물어보라고 하지 왜 엄마는 엄마 마음대로..."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는 자신이 엄마를 위해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괜한 소리를 엄마에게 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엄마, 미안해. 나도 어떡해야할지 모르겠어.'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 여자는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병원근처를 맴돌고 있던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우뚝 솟은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병원 어딘가에서 피를 잔뜩 흘린 엄마가 누워 있다, 는 생각을 하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무릎인공관절 수술’, ‘과다 출혈’ 같은 단어를 검색창에 쳐 넣었다.
지금 여자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검색어 하나로 전혀 다른 세상을 눈앞에 펼쳐보이는 곳이었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라는 말에 ‘과다출혈’이라는 단어 하나를 붙였을 뿐인데 ... 지금 내가 보는 세계는 그저 검색에 하나에 그 모습이 규정되는 건 아닐까. 무릎 인공 관절 수술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무수히 많은 정보를 검색했지만, 지금 여자의 눈앞에 펼쳐진 작은 창속의 세상은 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끔찍하고 절망스러웠다.
여자는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꼭 무릎수술 때문에 엄마가 잘못 될 수도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었다. 사실 여자는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피를 흘리는 엄마도, 아프다는 말을 하는 엄마도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도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여자에게 엄마는 그냥 사라질 수 없는 존재였다. 지긋지긋한 여자의 삶의 시작이었지만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되는 존재, 여자의 세계에 언제나 당연한 듯 깊게 뿌리 박혀 있어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여자에게 엄마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었던 것일까. 여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여자의 머리를 스치는 장면 하나가 있었다. 입원 당일, 그러니까 바로 전 날의 일이었지만 여자에게 이미 까마득한 기억이 되기라도 한 적처럼 아련해진 시간이었다. 상담을 진행하던 사람은 엄마에게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몇 가지 약 이름을 대고 있었다.
"어머니, 이 약들 다 일주일 전부터 끊으신 거 맞죠?"
엄마는 상담사와 책상을 하나 사이에 두고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었지만, 그 사람의 말이 끝나면 바로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면 여자가 옆에서 마치 통역이라도 하듯 상담사의 말을 다시 엄마에게 반복해 주는 식이었다.
"아, 네... 끊으라고 하는 약은 다 끊었어요."
"응? 엄마가 어떻게 약 이름만 듣고... 그러니까 무슨 약 인줄 어떻게 알고 끊었다는 거야? 확실한 거 맞아?"
"그래, 엄마가 약국에 가서 다 물어 봤어."
"정말이야?"
여자는 상담사가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잠깐 잊은 채 엄마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엄마는 평소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와 ‘뭐가 뭔지를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부터 확실하게 끊은 거야? 달력에 표시해 놓고?"
"그래, 엄마가 알아서 잘 했어."
엄마는 정말 잘 했던 것일까. 여자는 혹시 그것 때문에 출혈이 심했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미리 알고, 함께 알아봐 줬더라면 달랐을까... 다 나 때문인 것 같아...
엄마가 다 알아서 할께... 그 말을 너무 쉽게 믿어버린 건 엄마의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를 믿는 척 하며 다 모른 척 해버리면 홀가분할 줄 알았다.
엄마, 요즘 나도 바빠서 정신이 없어... 그 말은 진실이기 보다 그렇게 말하면 엄마를 돌봐줘야 하는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엄마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여자는 그저 겁이 났던 것이다. 내가 잘 해내지 못해서 그래서 엄마가 잘못될까봐... 겁이 났어...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게 무서웠어...
"느이 애비는 괜찮냐는 전화 한 통이 없다. 옆에 아줌마들은 다 아저씨들이 전화를 해대는 통에 전화통에 불이 나는 데 말이다."
"엄마, 많이 아프지는 않아?"
"아이고, 딱 죽겠구만."
"엄마는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거야? 나 참...
아, 알겠다. 엄마가 생각보다 괜찮은가 보네. 그러니까..."
엄마는 어느새 깨어나 다시 엄마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가장 엄마다운 모습. 그것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었으니까. 지긋지긋 하기만 하던 그 푸념이 여자는 웬일인지 반갑기까지 했다. 그것이 여자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시장에서 사온 분홍색 모직 스웨터를 소중하게 어루만지던 외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도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걸까. 여자는 골목사이를 누비는 느릿한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모, 자식은 참 이상한 사이 같아. 엄청나게 미워하고 또 엄청나게 사랑하고. 근데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거야?
부모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세상은 완전 별로였거든. 참 원망스럽고,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고. 그런데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세계가 무너지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잖아. 엄마가 사라지면... 엄마라는 세상이 무너지면 나는 더 이상 존재 할 수 없을 것 같아.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된다는 게 마치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 같아. 둘 사이서 태어난 아이가 평생 살아가야 하는 세계가 그 순간 창조되는 거지. 아니 가족이 함께 살아가야할 큰 세상이 만들어 진다고 할까. 그게 뭔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데... 결혼을 하면 엄청난 힘이 생기는 거잖아. 하지만 사실 난 오히려 반대야. 정말 별로라고 생각해. 결혼이 그리고 부부가 그렇게 큰 힘을 가진다는 것이 정말 별로란 말이야. 세상에는 세계를 창조할 준비가 안 된 사람도 많지 않겠어? 우리 부모님처럼...
나는 겁이나.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그냥 우리는 말이야... "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는 것인지, 차마 말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장황한 말을 쏟아내던 여자가 갑자기 우물거리자 남편은 여자를 향해 살며시 웃어 보였다. 그 미소는 여자는 다독거리기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너무 겁내지마. 너무 깊게 생각하지도 말고. 그냥 지금 행복하면 되지. 그 말이 하고 싶은 거 아니야?"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흘러가는데로 살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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