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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 Jan 06. 2023

아이가 없다는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까


"그러니까... 그걸 뭐라고 그러니... 어, 그게, 어디 보자..."

  벌써 몇 분 동안이나 얼굴을 찌푸린 채 엄마는 어떤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양 미간을 아무리 좁여 보아도 그 단어는 머릿속에서 쉽사리 튀어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뭔데 그래? 인공수정... 시험관아기를 말하는 거야?"

"그래, 그거.

**아줌마 친구 딸이 이번에 그걸로 임신이 됐다고 안 그러냐... 그 시험관아기 말이야. 그래서 **아줌마가 너도 병원에 한 번 가보면 어떠냐고 그러더라."

  그토록 원하는 엄마의 단어를 찾아냈다는 안도감도 잠시 여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어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풀이름이며, 한의원이름을 들먹이던 엄마의 입에서 여자가 예상한 건 용한 점쟁이나 굿이나 해볼까 하는 거였는데... 뜻밖에도 내내 그 입가에 맴돌고 있던 단어가 ‘시험관 아기’라는 아주 현대적인고 세련된 것이었다니. 게다가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여자가 작은 조력으로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는 것이 힘들지도 모른다는 체념 같은 것이 엄마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방안을 떠올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나처럼 주위의 아줌마들의 의견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는 건지도.

  결혼 후 5년 동안 몇 번이나 아이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때마다 여자의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은 엄마에게 그저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정도의 의미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엄마가 자신의 입장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여전히 주변의 흘러가는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여자가 어렵게 꺼내 그 말에 엄마의 눈이 둥그렇게 커지고 입이 딱 벌어졌다. 여자 역시 그렇게 자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엄마의 임신을 위한 다양한 비책이 무척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 그러니깐... 아니... *서방이랑 시부모님이 아시면 어쩌려고... 많이 기다리고 계실 텐데..."

  차마 말을 잊지 못하는 엄마에게 여자는 이제 신물이 난다는 듯이 크게 한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엄마, 도대체 몇 번을 말해요. 설마 나 혼자 한 결정이겠어? 우리 둘이서 충분히 의논했단 말이야. 물론 *서방이 생각이 깊고 고민을 많이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말이야...

시어머니가 장작 손자, 손녀를 여섯이나 키웠어. 임심 했을 때도 형님들을 많이 도와주셨고. 그 과정에서 *서방도 힘들 때가 많았데. 그래서 아이 키우는 거 너무 힘든 거 아니까 자신 없다고 하는 거야. 물론 조카들 키우는 거 돕다가 질려서 정작 자기 자식은 없어도 된다는 말을 나도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 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려면 내가 적극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럼 정작 애는 누가 키워? 시아버지는 외손자들 키울 때 너도 얼른 낳아서 시어머니께 부탁하라고 하지만 시어머니는 절대 안 한다고 못 박으셨어. 무엇보다 큰댁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 큰어머니가 얼른 애 들어서면 좋겠다고 하시니깐 시어머니가 ‘안 들어서면 어떠냐, 요즘에 애 없어도 된다’ 그러시더라고. 그 얘기 듣고 애가 없어도 많이 실망하지는 않으시겠구나... 안심한 것도 사실이야. 근데, 엄마... 내가 이 얘기를 도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엄마는 그저... 네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니깐 애가 안 들어서니까 말이야. 그래서 ‘애 없어도 된다. 키울 자신도 없다’ 큰소리치는 줄 알았지. 속으로는 저것이 *서방이나 시부모님 눈치를 얼마나 보고 있을까 걱정했다고..."

  그것은 참으로 새로운, 그러니까 여자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애를 가지지 못해서 자존심이 상할 거라고? 그래서 괜히 큰소리 치고 있었던 거라고?

"엄마... 그러니까 내가 애가 없으면 자존심이 상해야 하는 거야? 그건 몰랐네..."

  그 말을 하면서 여자는 문득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

  갑자기 ‘쇼미 더 머니’의 랩배틀 현장을 방불케 한 ‘자연분만’ 성토장이 그것이었는데, 비슷한 나이대의 일하는 여자들 몇몇이 모인 자리였다.

"제가 마흔에 결혼을 했는데, 그 해 바로 임신을 해서 우리 아들을 낳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남편이나 우리 시부모님이 나한테 ‘찍소리’도 못하시지. 나는 그걸로 내 할 도리 다 했으니까. 게다가 자연 분만으로 낳았다니까요."

"아이고, 나는 마흔둘에도 자연 분만을 했는데 무슨 소리야. 이 년 쉬고 딸까지 낳아줬잖아. 우리 남편이 지금 완전 딸바보야. 얼마나 이쁜지 볼 때마다 안 낳았으면 어쩔 번 했냐고 아직도 고맙다고 그런다니까. 내가 달리 큰소리치고 살겠어요."

  희한하게 자연 분만한 사람만 모은 것도 아닌데... 모두들 자연분만에 대한 자부심으로 넘쳐나던 그 자리의 대화가 여자는 조금 의아하기도 했었다. 자식을 낳아 잘 길러내는 자부심은 충분히 이해하고 박수 쳐줄 만한 일이지만 뭔가 묘하게 거슬리는 몇몇 단어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식을 '낳아주고', '할 도리를 다하고' 그래서 '큰소리를 치는' 그 연속적인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그들의 자신감을 여자는 비로소 엄마 앞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의 레이스인 삶에서 아이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여자는 패배자 인지도 몰랐다.

*

  그러니까 여자는... 아이를 가지지 못해서 남편이나 시부모님께 할 도리를 하지 못했으니, 혹은 남들이 다 하는 그 일을 해내지 못했으니 자존심이 상하고, 죄책감이 들어야 당연한 것이란 이야기 일까. 엄마는 지금 그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여자는 얼마 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너무 힘이 든다는 지인과의 대화에서 대범하게도 ‘그런데 왜 아이를 낳았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기에 그 어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했었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진짜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이제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내 인생을 열심히 산 것뿐인데... 정신없이 사느라 정작 내 몸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거예요.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 여자들은 왜 이렇게 해내야 하는 일이 많은 건지.

그런데 문득 이러다가 영영 아이를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주변에 보면 다들 아이를 낳고 키우잖아요. 그래서 나도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든거지... 거창한 고민이나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남들도 다 가졌는데 나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거죠. 그런데 그걸 미리 알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웃고 있었다. 여자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말에서 여자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가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나를 너무너무 힘들게도 하지만, 이제 내 삶에 이유가 되기도 해요. 일이 힘들어도 내가 벌어서 내 새끼들 맛있는 거 사 먹인다 생각하면 그렇게 또 힘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모순적인 존재가 또 있을까요? 낳아보면 알게 되실 텐데... 응? 어때요?"

'나는 아이가 없지만 말이에요... 누구보다 내 아이를 사랑해요. 정신 나간 소리 같을 수도 있는데... 무척 사랑하고 있어요. 당연히 그 아이가 보고 싶을 때도 많답니다.

네... 사실은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는 오롯이 나와 남편의 아이가 될 거예요. 시댁에 대를 이어 주기 위한 아이도 아니고... 그러니까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도리’나 ‘의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큰소리치기 위해서 필요한 아니는 더더욱 아니에요. 나의 존재에 대한 당위성으로 아이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내가 하지 못한 걸 대신 이뤄 줄 필요도 없어요. 오롯이 나와 남편의 아이라는 건 그런 뜻이에요. 그렇다면 키우면서도 아이로 인해 누구를 대한 원망할 일도 없고, 과도한 자만심 같은 것도 없겠지요. 그저 행복뿐일 것 같아요. 물론 힘은 들겠지만.

그런데 제가 그 아이를 만날 수 없는 건... 저란 사람 때문이에요. 저는 살면서 행복감은커녕 단 한 번의 안도감도 평온함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제 인생은 끔찍했는데... 흔히들 말하는 가난이나 가족 간의 불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저란 사람이 세상과 잘 융화되지 못했다고 할까.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건 ‘그냥 타고난 것’ 같다고. 그래서 벗어날 방법도 도무지 알 수 없네요. 그래서 나의 아이도 자라면서 자신의 세계에 절망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결국은 부모를 원망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저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건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내 삶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렇게라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 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그렇게라도 내 마음을 부모님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어리광 같은 건지도 몰라요. 어쨌든 저는 부끄럽게도 나의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슬프지만, 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세계가 또 열리기 전에 닫아 버리기로 결정했어요.'

  여자는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이 말을 삼키며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하고 남편에게도 시부모님에게도 할 도리를 다 하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 휠 신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만... 더 나이 들고 아이마저 없으면 부부가 같이 살아도 멀어지기가 쉽단 말이야. 그럼 그때 가서 어떡할래? 아이는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끈과 같은 거야."

"서로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해서 멀어지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뭐? 너도 참... 태평한 소리 한다. 여자가 빈손 털고 나오면 뭐 먹고 산다니? 엄마가 왜 여태껏 이 꼴 저 꼴 다 보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응, 엄마 알았어. 그다음 얘기는 뻔하니까 고만해요. 그러니까 여자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거잖아. 내가 자식은 없지만 일은 꼭 할 테니까 걱정 말아요, 응?"


  엄마에게 자식은 과연 뭐였을까?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이자, 남편과의 끈이었고, 남편과 시부모님에 대한 도리였으며 자신의 존재감이었을까. 그마저도 아니라면 ‘여자라는 존재의 이유’이자 그저 생계 수단 일 뿐이었을까. 뿐만 아니라 가끔은 짐이었고, 왠수였고 떨쳐버리고 싶은 부담이었던 적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는 노후 대비용으로 꽤나 환영받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여자는 문득 궁금했다.

‘내가 그런 거 말고 그냥 오롯이 엄마의 아이였던 적도 있었어? 키우기 힘들어도 그저 기쁨이고 행복이고 보람이었던 적도 있었냐고? 내가 어떤 도구나 수단이 아닌 존재 자체였던 적이 있었냔 말이야...’  

"젊었을 적에 엄마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앞도 뒤도 돌아볼 정신이 없었어. 엄마에게 삶이란 그냥 임시방편으로 여기저기 때워가면서 정신없이 달려가야하는 누더기 기차같은 것일 뿐이었단 말이야."

  여자는 그 짧은 엄마의 대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그 인생에서 자식이라고 의미가 달랐을 까...

  정신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보다 엄마의 팍팍한 인생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것이 지금 여자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할 일인지도 몰랐다. 스스로를 ‘도구’나 ‘수단’으로 폄하하지 않고 소중한 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말이다.    

  아이를 낳는 일이 옳은 일인지 모른다. 절대다수가 선택하는 그 일이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에게' 맞고, 고통스럽지 않은 선택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그릇에 맞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비록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따라온다 하더라도... 그것마저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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