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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 Aug 03. 2023

내 행복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없어



  “결혼을 하긴 하는구나. 이제 집이랑 명품반지랑 다 준비된거야?  빚도 다 갚아 주고? 그나저나 그 여자는 무슨 복이래?”

  “집이야 뭐 부모님이 진작 사두신 거 있었거든. 여자 친구 취향대로 인테리어 공사만 하면 되나봐.”

  “정말 결혼식도 성당에서 하는 거야? 출장뷔페 불러야 할 테고, 꽃이든 뭐든 결혼식 분위기 내려면 준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냥 예식장이 편하지 않아?”

  “안 그래도 예산 듣고 친구도 많이 놀란 모양이더라고. 그래도 여자 친구가 꼭 원한다니까. 뭐, 해야지.”

  여자를 향한 남편의 미소에는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알아서 하겠지.’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맞아, 알아서 잘 하겠지.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내일이나 잘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자는 남편의 그런 무신경함이 부럽다 못해 신기할 지경이었다. 친구가 부럽지도 않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여자는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차마 그말은 꾹꾹 눌러야 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 온 남편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평소에는 술도 잘 마시지 않았지만, 친구들을 만날 때면 맥주도 한 잔 마시는 터라 얼굴마저 붉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재밌었지? 그래도 친구는 학교 때 친구가 제일이잖아.”

  “재미는 뭐, 친구 결혼 준비하는 얘기 듣고 각자 일하는 얘기 했지. 누가 더 힘들게 일하는 지 우기는 거 보면 웃기기도 하고.”

  “서로 누가 더 잘나가는지 경쟁하는 게 아니라 누가 더 힘들 게 일하는 지도 경쟁하는 거야? 그걸 뭐 하러 하는 건데?”

  더 힘들게 일한다는 건 더 열심히 산다는 증거일 걸까, 아니면 뭐든 경쟁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다른 사람의 인정과 공감이 필요한 것일까. 여자는 잠깐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만나면 뭐든 경쟁을 해야 하는 건가 보네…….”

  혼잣말처럼 내뱉은 그 말을 남편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눈꺼풀이 이미 반쯤 감겨져 있었다.

  “얘기 그만하고 이제 자자.”


  어둠에 잠긴 천정을 올려다보며 여자는 여전히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자신이 결혼 준비를 하던 그 때가 떠올랐다. 별다르게 준비할 것도 없이 여느 때처럼 일을 하며 하루하루 보내던 날들이었다.

  여자의 결혼이 늦었던 덕분에 이미 친구들은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빴고, 혼자 일을 꾸려가던 터라 누구하나 여자의 결혼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빈손으로 시작하는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별 상처없이 그 시간을 지날 수 있었던 이유가 말이다.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 한창 친구들이 결혼을 하 던 때는 함께 만나면 서로의 결혼 준비과정을 공유하며 때로는 자랑이 경쟁이 되고 경쟁이 상처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는 모두가 서로의 시선에서 무엇 하나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부잣집에 시집을 간 친구가 명품 예물을 두르고 나타난 날은 모두가 알 수 없는 초라함에 한숨지어야 했다. 신축 아파트에 신혼집을 장만한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 친구는 자신의 신혼집에 대해 내내 입을 꼭 다물더니 결국 모임에서 빠져 버리기도 했다.

  결혼식에 가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친구의 앞날에 박수를 보내주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 속에서 서로의 드레스를 헐뜯고 신혼 여행지를 비교하며, 과연 누가 가장 행복한지 가려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함께 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도 열심히 사회에 발붙이기 하루하루 기울였던 노력도 다 소용없는 것이었다. 남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비싼 것으로 자신을 둘러싸면 그 사람이 승리자였다. 과연 그때 ‘우리 자신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아니면 결혼이야말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가 가장 냉혹하게 매겨지는 순간인 것일까? 우린 각자 자신의 점수표를 받아 들듯 그 순간을 곤혹스럽게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왜 그런 잔혹한 게임에 내몰려야 했던 것일까. 여자는 어둠속에서 몇 번이나 고개를 내젖고 있었다.

  아니면 물질은 정말 사랑의 가장 큰 증거였던 것일까. 물질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얼마나 사랑하는 표현하고 싶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풍족한 결혼은 자기 가치에 대한 증명이자 한편으로는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학교를 벗어났지만 우리의 줄 세우기는 기준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였다.그래서 고만고만 했던우리는 그토록 서로를 이기고 싶어 했는지도 몰랐다.

  여자는 요즘 일 때문에 다시 시작한 ‘인스타그램’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많이 알아가고 있었다. 작은 창 안에는 비싸고 좋은 것도, 맛있는 것도, 예쁘고 멋진 장소도 너무 많다는 사실 같은 거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누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곳, 그랬다. 작은 창 안에서는 모두가 행복했다. 핸드폰을 끄자 창 밖에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어두운 화면에 어렸다. 여자는 과연 자신의 삶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아니, 자신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인간인지 궁금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언젠가 남편과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니까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없는 행복은 행복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내가 행복하다는 데 왜 행복이 아니야?”

  “나는 가끔 그런 걱정이 들어. 지금 나는 행복한데 말이야. 아무도 내가 행복한 줄 모르면 어떡하지 하는…….”

  결혼하고 육년의 시간동안 남편도 이제 여자의 엉뚱한 소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대신 그저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도 않았다.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 고등학교 동창이든 대학동창이든 결국은 **백화점에서 다 만나게 되는데……. 거기서 못 만난 애는 엄청 힘들게 살고 있는 거라고.”

  “뭐, 그런 희한한 소리가 있어?”

  “여보도 알지? 나 그 백화점 지나가다가 화장실 간다고 한 번 들어가 본거.”

  “갈일이 없으니까 안가는 거지, 안 그래?”

  “그렇기는 한데……. 그러니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을 자랑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니깐. 난 불행하지 않은데……. 자랑할 행복이 없어. 내 행복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가 없거든.”


  겨울에 결혼을 한 여자는 복층 오피스텔에 신혼집을 꾸몄다. 난방이 되지 않는 위층은 무척이나 추웠지만, 아래층 역시 코앞에 있는 창문에 외풍이 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은 자신이 빠져나가고 난 자리에 뜨거운 물을 담은 핫팩을 넣어두곤 했었다. 따뜻한 핫팩을 끌어안고 단잠을 자다가 깨면 여자는 자신의 품속에 있는 핫팩이 남편의 마음처럼 느껴져 행복했던 것이다.

  복층위에서 여자를 위한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있던 남편을 바라보고 있을 때,  퇴근 길에 책과 꽃을 사들고 오던 남편을 맞이할 때 여자는 언제나 행복했다. 하지만 여자를 위해 차려준 밥상위의  궁색함이나 오피스텔 살이가 드러날까 걱정부터 했던 자신을 미워하기도 했었다. 그전까지 여자의 삶에서 느껴 본 적 없는 행복을 준 남편이었지만, 여자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아침 출근 길, 언제나처럼 남편은 여자의 운동화를 신기 편하게 돌려놓고 나갔다. 언제나 같은 운동화만 신어서 자신의 걸음을 따라 울퉁불퉁해진 운동화를 내려다보며 여자는 생각했다.

  물질만이 행복의 증거인 걸까?

  자신이 정말 갖고 싶었던 행복은 이런 게 아니었던 걸까? 그런데 왜?


  “정작 나는 돈이 별로 없어도 사는 데 불편함이 없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것은 아니지만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부족함이 없는데……. 사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난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런데…….”

  그런데 왜 내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해야 비로소 내 행복이 완성되는 것처럼.

  “도대체 왜 그런 거야? 나는 진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아 진짜…….방법을 모르겠어.”

  “음…….”


  여자도 사실 어련풋 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시선만 쫓아가던 자기 자신을 말이다.

  “나는 말이야…….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어.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아니, 뭐가 싫고 하기 싫은지 조차 말이야. 그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만 생각했던 거 같아.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거야.”

  여자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진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자꾸 다른 사람들 눈에 그럴 듯해 보일 것들을 기웃거리는 자신이. 그것이 비록 자신에게는 가짜 행복이 될 지라도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내 자신이 미운가봐. 바보 같고 초라하다고 생각하나봐.”

  그래서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나봐. 나는 생각해보면 작은 거에도 행복한 사람인데……. 남들이 비웃을까 봐 겁나.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까봐 겁나. 아무래도 나 이상한 여자 맞지? 아니면 불쌍한 사람인 건가.

  "당신은 그런 생각한 적 없어?"

  "나는 딱히...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않아서."

  "다.른.사.람.을. 신.경.쓰.지.않.아?

그게 가능하다고? 그게 어떡해 가능한 거야?"

  여자는 남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또박또박 따라 하면서,육년이나 함께 산 남편을 마치 생전 처음보는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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