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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 Oct 05. 2022

단 하나의 사랑이라도 _ 개 이야기

그 개는 무는 개였다. 윤기 나는 하얀 털을 보슬거리며 저절로 보는 사람의 심장이 쪼그라들게 만드는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자그마한 이빨을 드러냈다. 그 이빨은 쌀알보다 조금 더 클까 말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조그만 몸뚱이가 열이 올라 분홍색이 되고 입술이 뒤로 말린 채 콧잔등에 주름을 잡으며 으르렁 거릴 때는 세상 어떤 맹수보다 무서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인간과 함께 하기 위해 귀여운 얼굴로 살을 부벼대지만 야생 늑대의 피가 그 작은 몸뚱이 깊은 곳에 여전히 흐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 날카로운 송곳니가 엄지와 검지사이에 박히면 여지없이 붉은 피가 흘렀다.

아앗, 아이고... 엄마의 비명소리에 여자가 방에서 뛰어 나왔다. 엄마, 또 물렸어? 엄마의 손에서 피가 한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고, 놀래라. 요놈이 손을 물고 안 놔줘서 깜짝 놀랐네. 어쩌다 그랬어? 밥 주려고 그랬지. 내가 뭐 지를 괴롭혔어, 뭘 했어? 밥을 통 안 먹어서 사료 몇 개 집어서 주둥이 앞에 내밀었더니 그냥 물어 버린다. 쪼끄만 게 이럴 때 보면 얼마나 사나운지... 짐승은 아무리 작아도 만만치 않아. 사료가 이제 진짜 싫은가봐.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밥을 줘야 겠네. 엄마 손부터 어떻게 좀 하자. 피나잖아. 응? 내가 하루 이틀 물리냐? 저것이 오늘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입에 안 넣고 있는데 뭐라도 넘겨가 할 거 아니야. 일단 뭐라도 좀 먹이고 말이야. 엄마를 무는데 남은 힘을 다 써버렸는지 개는 제 집에 돌아가 풀썩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는 밥투정이 심한 아이처럼 엄마가 눈앞에 내미는 모든 음식에 고개만 요리조리 돌렸다. 엄마, 개가 너무 힘들고 기운이 없어 보이니깐 일단 내버려 두자. 엄마한테 덤벼드는 게 지도 힘들 거 아니야. 개 집 앞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여자는 걱정스러운 듯 말을 던졌다. 야, 이놈아, 네가 오래 살아야지. 너희 언니는 너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렇게 비실거리면 어쩌냐. 응? 마치 사람에게 말을 걸듯 엄마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엄마의 눈을 피하고 있는 개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 너희 언니를 위해서 말이야...

*

여자는 언니가 그 희고 조그만 개를 들고 온 날을 기억한다. 객지에 나가 직장을 다니던 언니는 그 생활을 정리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아무도 나와 보지를 않아? 아니, 이게 다 뭐야? 직장에서 돌아 온 엄마는 딸들의 방문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란 듯이 물었다. 방바닥에는 옷이며, 화장품, 신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한 쪽에 밥그릇과 국그릇, 숟가락까지 놓여 있었다. 뭐하는 거야? 차곡차곡 제 짐들을 가방에 담고 있던 언니가 엄마를 보자 빙긋 웃었다. 엄마 왔어? 여자는 마치 엄마에게 이르듯 얼른 입을 열었다. 엄마, 언니 집 나간데. 지금 짐 싸고 있는 거야. 뭐? 아니, 너는 미리 말도 안하고... 그렇게 언니는 두어 번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언니가 돌아온 날 여자는 큰 길 횡단보도에서 언니를 기다렸다. 저 멀리 언니의 모습이 보이자 크게 손을 흔들었고, 신호가 바뀌자 얼른 뛰어가 가방을 뺏듯이 받아 들었다. 언니는 집을 떠나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다시 돌아왔고, 언니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 커서 여자와 엄마는 무척 슬펐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떠나고 싶어 했지만 또 슬퍼서 떠나지 못했다. 그 다음날 언니가 그 하얀 개를 데리고 왔다.

개가 그렇게 비싸? 아주 어릴 때 마당에 묶어놓은 개를 본 기억이 있지만, 방안에서 개를 키워 본 것은 처음 이었다. 여자는 언니가 데려온 하얗고 어린 개를 바라보며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키우는 거야? 엄마랑 아버지가 보면 언니 혼날 텐데... 원래 살려고 그랬던 건 아니고... 그냥 구경하러 들어간 거야. 왜, 오거리에 새로 생긴 애견샵 있잖아. 그 앞을 지나가는 데 강아지들이 쪼그만 몸으로 꼬물꼬물 돌아다니는 게 너무 이쁜거야. 그래서 들어갔는데, 이 개가 있잖아. 조그만 강아지들 사이에서 이렇게 큰 개가 의젓하게 앉아있는데... 얼마나 웃긴지. 언니는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은 사람처럼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원래 강아지는 애기 때 다 팔려 나가는데, 이 개는 때를 놓쳤는지 많이 커 보이더라고. 왠지 풀이 죽어 보이고, 민망해 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안쓰럽기도 하고. 어디서 들으니깐 개가 안 팔리면 크지도 못하게 밥도 잘 안 준데. 그래서 데려 왔어. 개는 제 귀여움을 보란 듯이 뒤뚱뒤뚱 걸어서 귤이 담겨있던 바구니 안에 들어가 몸을 말고 누워 있었다. 그런데 진짜 귀엽다. 여자는 그 신비로운 생명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밤, 밤새 과제를 하고 있던 여자 옆에 와서 그 하얀 개는 끊임없이 피똥을 싸고 낑낑 거렸다. 사랑스러움 보다 슬픔을 먼저 가져온 그 하얀 개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하루 만에 언니는 그 개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그 개는 죽을 고비 가까이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언니는 쉽게 포기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그 개는 가족 중에 유일하게 언니만 따랐다. 하루 종일 언니만 바라보고 있었고, 언니의 말에만 반응했다.

하지만 여자도 개를 사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면 자신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그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물론 잠시 뿐이었지만. 차가운 집안이 그 작고 여린 생명에게서 퍼져 나오는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 같았다.

*

그렇게 예민한 목숨을 이어가는 그 개는 엄마와 언니 그리고 여자에게 어느 날은 행복이었고, 어느 날은 슬픔의 되어있었다. 새벽이었다. 설킷 눈을 뜬 여자의 눈에 어둠은 아직 적응 되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의 귀에 문을 긁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개는 여자의 방문을 자주 긁었다. 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리 소리가 아주 희미하고 드문드문 들렸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방문을 열자 개가 있었다. 어둠속에서 여자는 까만 두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이 밤에 웬일이야? 잠이 안 오는 거야? 응? 개를 안아 올리자 느낌이 이상했다. 엉덩이가 축축했다. 오줌이라고 하기에는 양이 많았다. 얼른 불을 켜자 여자의 손에는 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하얀 털이 군데군데 붉게 변해 있었다. 개는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자에게 묻는 듯 여자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여자는 개의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고 있었지만 피는 그야말로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여자는 무서웠다. 여자는 그 피를 멈추고 싶었다. 그 피와 함께 개의 생명이 다 빠져 나가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것은 작은 입김에도 꺼져 버릴 것 같은 촛불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인지 여자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

금방 죽을 지도 모른다는 개와 십년 가까이 함께 살고 있었다. 산책길에 만난 다른 개들처럼 즐겁고 행복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자와 언니는 개를 보낼 수 없었다. 그런 개를 언니는 집에 남겨두고 결혼을 했다. 언니의 남편은 개를 싫어한다고 했다. 개는 더럽다고도 했다. 게다가 아프고 예민한 개를 돌 볼 여유가 결혼한 언니에게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언니와 언니의 남편이 집에 올 때쯤 개는 방에 혼자 있어야 했다. 언니는 보고 싶은 개를 마음껏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순전히 개를 만나기 위해 혼자 집에 가끔 들르기도 했었다. 개는 온전히 엄마와 여자의 차지가 되어버렸고, 그것은 개에게도 슬픈 일인 것 같았다.

언니가 이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개는 이미 늙어 가고 있었다. 이는 빠져서 가만히 있어도 혀가 빼꼼히 나와 있었다. 눈빛은 힘을 잃었고, 하얗고 윤기 나던 털은 푸석푸석했다. 병원에서는 이제 사료 말고 밥을 부드럽게 해서 주라고 했다. 그래서 개는 밥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입 주변도 늘 지저분했고, 털에도 늘 말라붙은 밥풀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필사적이었다.

너희 언니가 지금 저 개 하나만 바라보고 있잖아. 위안이라고는 저 놈 뿐이야. 만에 하나라도 잘 못 되면... 아이고. 엄마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얼굴 앞에서 몇 번이나 손을 저었다. 내가 이날까지 왜 노상 물려가면서 밥 먹으라고 안달을 하겠냐. 짐승은 밥그릇 앞에서 고개를 돌리면 끝이야. 내가 먹여봐야지... 저 개를 살려 놓는 게 지금 내가 너희 언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엄마는 다시 일어나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또 밥솥을 열어 밥을 푸고, 물을 섞어 잘게 찢은 닭 가슴살과 함께 끓일 것이다. 너희 언니가 저 개를 끔찍이 위하니깐 너나 나나 저 개한테 물려도 이렇게 정성을 다 하잖아. 세상에 뭐든지 단 한 사람이라도 위해주면 소중한 것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도 엄마도 없고 가족도 없으면 얼마나 불쌍하겄냐. 저 개도 그걸 아는지 우리가 이렇게 애지중지 위해줘도 우리는 물어버리고 지 주인은 오로지 너희 언니 아니냐.

인연은 그렇게 미묘한 것이었다. 어쩌면 언니보다 개를 돌본 시간은 여자와 엄마가 월등히 많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개는 언니를 가장 사랑했다. 언니가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 개는 버텼다. 밥을 먹지 않았고,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는 날들이 많았지만 개는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빛을 잃자 얼굴에는 표정마저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개는 버티고 있었다. 엄마의 정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언니를 위해 개가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일까.

살짝 열려진 문 틈 사이로 개가 소리도 없이 여자의 방에 들어왔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방안에는 어슴푸레 빛이 남아 있었다. 방바닥에 앉아 여자를 바라보는 개를 발견하자 여자도 그 옆에 몸을 숙이고 앉았다. 여자는 지쳐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날따라 개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그 눈빛에 힘이 났던 걸까. 여자는 어느새 소리 내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 너까지 가버리면 우리는 견디지 못할거야. 그러니깐 조금만 더 힘을 내줘. 알겠지. 그 순간 개의 눈이 반짝였다. 개를 키워 본 사람들은 안다. 개는 표정이 있고 언제나 표정으로 이야기 한다. 여자는 그 표정을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개는 '알았다'고 했다. 그 때 개의 표정을 여자는 평생 잊을 수 없었다.

*

어느 날 밤, 언니는 개를 안고 산책을 나섰다. 개가 풀날날이 같이 가벼운 거 좀 봐라.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개를 병원으로 데려가 다시 살려내기를 몇 번째였다. 그 때 언니는 마음의 결심을 했던 것일까. 개를 안고 봄냄새가 진하게 퍼져 있는 산책길을 밤늦도록 걸었다. 이제 그만 애쓰라고... 이제 그만 편하게 쉬어도 된다고 말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날 개는 세상을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 개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개는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햇살이 따듯한 완연한 봄 날 이었고, 언니가 이혼한 지 5년이 넘은 어느 날이었다. 우리집에 온날 밤 새 피똥을 싸고 말이야, 곧 죽는다고 했잖아. 근데 16년을 살았어... 여자의 말에 언니는 울음을 떠트렸다.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한 거 같아서 미안해. 아이고, 짐승을 키우는 게 무슨 보람이 있어. 안 그러냐? 16년을 매일 밥주고 정주고 거뒀는데... 이렇게 가버리니까 허망하다. 다시 개 키운다는 소리 하지 말아라. 

하얀개는 화장해서 매실 나무 아래 뿌려졌다. 엄마 매화 꽃 폈어? 작년에 우리 개 매실나무 아래 뿌려 줄 때 분홍색 매화꽃이 한 창 이었잖아. 우리 개는 분홍색이 잘 어울리거든. 응, 아주 이쁘게 폈더라... 나는 아직도 지나가는 흰 개만 봐도 우리 강아지 생각이 나가지고, 막 따라가고 싶다. 개들이 이뻐. 분홍색이 잘 어울이던 우리 강아지도 아마 매화 꽃이 되고, 초록색의 동그란 매실이 되었을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와 언니, 여자의 마음에 영원한 사랑으로 남았다. 세상 단 한사람이라도 너를 사랑한다면 너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라고 개는 여자에게 가르쳐 주었다.

약속지켜줘서 고맙다. 그동안 고생많았어. 이제는 편안하게 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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