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 이야기
엄마는 아버지랑 왜 결혼했어? 여자의 물음에 잠시 엄마는 생각에 잠긴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옛날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옛날에... 너희 외할아버지가 사흘이 멀다 하고 술을 먹고 들어 와서는 방문을 벌컥 열고 **이 어딨냐 하고 동네가 떠나가라고 고함을 쳤거든. 그때 이불안에서 엄마가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모른다. 기어코 내 다리를 끌어내서는 죽인다고 난리를 치고 그랬지. 왜? 왜 그런 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에휴, 할머니가 아무리 뜯어 말려도 내 자식 내가 죽인다는데 누가 뭐라 하냐고 그냥 매질을 해대는 거야. 술만 드시면? 그래, 그 놈의 술이 웬수지. 낮에는 멀쩡했어. 그래서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동구 밖에 너희 할아버지 모습이 안보이면... 엄마가 그 때부터 몸이 덜덜 떨리고 그랬어. 외삼촌들은 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은 허연데 나만 땅딸하니 얼굴은 새카맣게 해가지고... 누가 봐도 영락없이 너희 할아버지 딸 아니냐. 아이고, 생각하니까 아직도 몸이 떨린다. 근데 너희 아빠가 술을 안 먹더라고. 엄마는 그 때 술 안 먹는 남자가 최고로 착한 줄 알았어. 어느새 세상을 모르던 순진한 시골 처녀의 얼굴이 된 엄마는 억울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술 먹는 거 빼고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할 줄 누가 알았어? 으이구, 그게 다 내 팔자야.
남편이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여자 역시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엄마가 할아버지를 피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몸을 떨면서 깨달았을 술의 무서움을 훗날 남편에게서는 발견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이 여자는 가장 무서웠다. 여자에게 불같다는 말은 책에서 자주 보던 수사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 불이었다. 온 집안을 활활 태우던 아버지라는 불... 어느 날 뭔가를 찾던 아버지는 그것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자 보이는 것들은 죄다 바닥에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곁에서 숙제를 하던 여자의 책상까지 와서 연필도 다 부러뜨려 버리고 공책도 다 찢어 버렸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원인도 대상도 없는 그 분노에 여자는 그저 떨고만 있어야했다.
남편은 화가 없는 사람이었다. 거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여자의 경험상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은 상대가 좋아서도 있겠지만 대부분 타고난 성향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남편의 따듯함은 반드시 여자만을 향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누가 돈 빌려달라고 해도 절대 빌려주면 안 돼. 알았어, 알았어. 누가 보증서 달라고 해도 절대 서주면 안 된다고. 나 참, 요새 누가 보증 세워가면서 돈을 빌려? 그, 그래? 그건 내가 잘 몰라서... 어쨌든 안 돼, 안 돼, 다 안 돼. 다단계도 안 되고, 누가 투자 하라 그래도 안 되고... 나 돈 없어서 그런 거 하라는 사람 없어. 그래? 그럼 뭐... 됐어. 그럼 됐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바라는 유순한 성격의 남편이 결국 그 성격으로 여자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전 까지는. 엄마의 인생은 그렇게 형태를 바꿔가며 딸에게 되물림 되는 것이다.
누군가 농담처럼 ‘남의 집 가장은 빼오는 거 아닙니다’ 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여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 하고 싶어졌다. 남의 집 일꾼도 절대 빼오는 거 아닙니다...
남편과 돈을 합쳐 함께 살 집을 구할 때, 남편은 언뜻 시어머니를 언급하며 적금을 깨서 송금을 해 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여자는 결혼 전 남편의 돈을 시어머니가 관리 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여자의 친구 중에도 부모님이 결혼 전까지 열심히 돈 관리를 해준 경우가 왕왕 있었다. 친구는 십 원 한 장도 엄마 모르게 쓰지 못한다며 답답해했지만, 막상 결혼을 앞두고 목돈을 만들어 내놓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부모님께 돈을 맡긴 남편이 그저 착실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남편의 경우는 월세 보증금에 보탠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험도 청약도 연금도 주식도, 친구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그 어떤 통장도 그에게는 없었다. 씀씀이가 작은 남편을 생각하자면 의아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온갖 일이 다 생기는 법이고, 서로 의논해서 보증금을 내고 집을 구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정말 속상했을 때는 함께 살기로 하고 살림을 합쳤을 때였다. 남편에게 살림이랄 만한 것이 없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남편이 그나마 챙겨온 옷도 장인, 장모님께 인사 드릴 때 입으려고 급하게 샀다는 양복 한 벌을 제외하고는 당장 다 내다버릴 만한 것뿐이었다. 아니 옷은 그렇다 쳐도 궁색한 양말과 속옷은 눈물겨웠다. 흥부네 가족이야? 응? 나도 옷이고 뭐고 좋은 건 없지만, 자기는 좀 심해 보이는데... 아니야, 자세히 보면 다 아직 쓸 만해. 일단 자잘한 살림도 그렇지만 여보한테 필요한 거부터 사자. 여자에게 남편은 그 나이가 되도록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것이 여자는 안타까웠다. 그리고 여보 이제 보험도 들고, 청약통장도 만들고 하는 건 어때? 지금까지 그런 거 하나 넣으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어?
남편은 누나 셋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차례로 시댁에 머물렀을 때 그 심부름을 비롯해서, 운전기사까지 도맡아 했다고 했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친정에 머무르거나 자주 와야 하니 조카와 누나들을 데려오고 데려다 주는 일도 당연히 남편의 몫이었다. 그리고 누나의 남편들이 술을 먹거나 함께 어울려 놀 때면 그 역시도 운전기사는 남편이었다. 마트를 얼마나 드나들었는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하게 다 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럼, 가는 길에 여보한테 필요한 거나 좀 사지 그랬어? 형님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당연히 누나들 왕 쫄따구였고, 그치? 생활비야 아버님께서 은퇴하시고 부터는 뭐, 말할 것도 없겠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 가족이니깐. 여자 역시 진작부터 집안의 잡다한 일들을 다 도맡아서 해야 했고, 큰 일꾼이자 왕 쫄따구였다. 그것은 자식의 도리이기도 한 것이다. 아는 사람 중에 벌어서 생활비 보태고 동생 공부시키느라 정작 본인 결혼 할 때는 200만원 들고 간 사람도 있어. 우와, 그럼 남편하고 합쳐서 400만 원짜리 집 얻어야 하는 거야? 아니, 다행히 남편이 큰 집사왔어. 사실은 큰 집 사올 남편을 열심히 찾은 거지만... 그래도 가족들 먹여 살렸다는 데 누가 욕하겠어? 칭찬해야지.
남편과 여자도 서로의 고단함을 칭찬해주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 어느 날이었다. 여자가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을 번쩍 차린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빨리 집을 샀어야지... 결혼이 삼년 째 접어들던 어느 날, 갑자기 시어머니가 여자에게 왜 집을 빨리 사지 않았냐고 핀잔을 준 것이다. 그 때는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오르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집 사는 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이런 저런 예까지 들어가면서 ... 갑자기 경제 전문가에 빙의라도 되신 듯 이야기를 쏟아내는 통에 여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지금 까지 단 한 번도 집에 ㅈ자도 꺼낸 적이 없으신 분이 갑자기 왜? 여자의 머릿속에 이런 저런 의문들이 복잡하게 뒤섞일 때쯤 남편이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가구 계약서로 천만 원 가까이 되는 금액의 내역은 침대와 tv선반 이었다. 그 때 여자는 처음으로 시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이 재개발을 하게 되어 곧 이사를 가게 된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형님들을 앞세워 새로 이사 갈 집의 가구들을 사고, 인테리어 공사도 계약도 이미 끝냈다는 사실도. 남편이 그 계약서들을 발견하자 시어머니가 여자에게 너희도 빨리 샀어야지 하는 충고를 시작 한 것이다.
진짜 우리가 형편이 안 된다는 걸 모르신 걸까? 아니면 정말 우리가 멍청해서 집을 못산 거야? 그야... 뭐 형편이 안 됐으니깐 방법을 찾을 생각도 못해 본거지. 맞아, 뭐 알아보고, 공부하고 할 시간도 없었어. 몇 푼 벌겠다고 하루 종일 아당아당 한 게 허무하네. 집만 있으면 한 방에 그 큰돈이 가능한데 말이야. 그나저나 아버님, 어머님 잘되긴 잘됐다. 이제 아파트로 가시면 살기도 훨씬 편하고, 돈 걱정도 더실 거 아니야. 그렇지. 그 동네가 옛날부터 재개발 얘기는 많이 나오기는 했는데, 진짜 될 줄은 몰랐네. 자기는 형님들이 내려오셔서 같이 가구까지 사러 가실 동안 재개발 되는 줄도 몰랐던 거야? 하여튼, **누나는... 제 돈 아니라고 막 쓰고 다닌거야... 그래도 아버님 어머님도 막상 돈쓰실 땐 아들보다 딸들이 미더우셨나보네. 그리고 형님들은 다 잘 사시니깐 눈도 높은 거지 뭐. 그건 그렇고 아까 어머님이 왜 진작에 집 안 샀냐고 하실 땐 좀 섭섭한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우리 형편 헤아려 주실 줄 알았는데, 남의 집 얘기 하듯이... 그랬어? 난 몰랐네. 형편이 안 되니깐 안산거지 뭐 일부로 안 샀나. 그런 얘기는 왜 하셨대... 이제 우리도 우리 가정에 에너지를 좀 집중해야겠어.
하지만 정작 시댁의 이삿날이 되자 그렇게 자주 친정을 찾던 형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제 전문가가 되어 진작 집을 사지 않은 여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던 당당한 시어머니는 그저 이사를 감당하기 힘든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거절을 모르고 유순한 시댁의 일꾼이었고, 그제서야 여자의 눈에 남편이 경계해야 할 대상은 돈을 빌려달라거나 보증, 다단계, 투자 사기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도 우리 가정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자식이고, 또 가족인 것이다.
여보, 그럼 나는 좀 빼줘요. 양쪽 집 일꾼은 너무 힘들단 말이야. 결국 다 지나고 나면 너는 그동안 뭐했냐고 하실텐데... 난 안할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며칠 시댁을 오가던 남편의 몸이 두드러기로 뒤덮혔을때, 여자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홍삼을 사고, 남편을 챙기는 그 순간에도 남편을 낳아준 부모의 마음이 아내인 자신의 마음보다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것은 여자가 끼어들 수 없는 남편 가족의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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