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아들키운 값

나의 결혼 이야기

by aloha


여자와 남편이 신혼 여행길에 사온 선물을 시부모님 앞에 내밀었다. 여자는 그 선물을 고르면서 머리를 수도 없이 쥐어뜯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남편이 종이가방에서 그것들을 꺼내는 모습만 봐도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만 가자고 했다. 게다가 결혼식전에 이미 일 년 가까이를 함께 살고 있었던 부부였기에, 결혼식 날 아침은 별다를 것 없이 그저 가족 모임에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신혼여행은 그들이 함께 하는 첫 휴가이자 해외여행 이었다. 당연히 모든 준비는 신혼여행에 맞춰져 있었다. 신혼여행을 갈 수 있는 휴가를 얻기 위해 결혼식을 한다는 농담까지했다.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챙겨야 할 것이 한도 없이 느껴졌고, 거의 자유여행이라 도서관에서 여행지에 관한 책도 빌려서 읽었다. 하지만 신혼여행 내내 시부모님 선물만큼은 생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처럼 좋은 물건이 흔하고 웬만한 것은 이미 어른들도 다 갖고 계시는데 뭐... 괜히 짐만 더 늘고, 마음에 드실만한걸 고르자면 시간도 많이 들 거야. 됐어.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친정 부모님 선물은 생략해 버렸다. 하지만 며느리 입장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을 사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시부모님의 취향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여자는 난감하기만 했다. 여자와 남편이 쇼핑에 큰 흥미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여자는 오롯이 시부모님의 선물을 찾아 헤매며 이국에서의 하루를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다.


평소에 아버님, 어머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시간이 갈수록 초초해하는 여자를 보면서도 뒷머리만 긁적이던 남편은 결국 ‘그냥 대충 사라’고 했다.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괜히 선물을 안 드리는 것 보다 더 못한 거 아니야? 게다가 어머님은 까다로우시잖아...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우리 엄마 전혀 안 까다로운데...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기념품은 어때? 열쇠고리 같은 거 말이야. 좋은 생각을 해낸 자신이 기특한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남편을 보며 여자는 생각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 다녀온 기념이예요 어머님, 하며 짤랑 거리는 열쇠고리를 내미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면세점만 열었어도 여기서 이렇게 하루를 날리지는 않았을 텐데... 밤비행기라서 어쩔 수 없었잖아. 애타는 마음을 겨우 누르면서 쇼핑몰을 돌고 또 돌았던 그 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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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뭐 이런 걸 다 사왔니. 돈도 없었을 텐데... 비싼 건 아니었지만, 여자가 생각하는 수준에서 아니 그것보다 조금은 무리해서 괜찮아 보일만한 가방과 옷을 골랐을 때 여자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자가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시댁은 형편이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생활수준이 높았다. 딸이 셋이나 있는 시부모님이 눈이 높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혹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면 어쩌나 하고 내내 마음을 졸였던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뭐가? 평소에 선물 같은 거주고 받고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뭐든자꾸 해봐야 느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 뭔 잘 안 사봐서 그런지 좋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 어머님께서 뭐 이런 걸 돈 주고 사왔냐고 하시면 어쩌지?



고맙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시어머니의 말에 여자의 얼굴에도 긴장이 조금씩 풀려 갈 때쯤 시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고맙기는. 다 아들 키운 값이지. 안 그러냐? 흐뭇한 웃음을 띠고 남편을 보며 웃고 있는 시아버지는 여자가 작은 밥상을 앞에 두고 숟가락을 들자, 이제 며느리 밥 얻어먹어 보자고 했다.





여자가 절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 편해서 몸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운동 삼아 야간산행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절에서 밤에 보았던 풍경을 잊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어, 나도 야간산행 좋아 하는데... 따라 가도 돼요? 아, 일이 늦게 끝나서 9시나 돼야 출발 할 수 있는데... 어차피 동넨데 뭐 어때요? 아니, 많이 다녀 보신 것 같은데 저는 진짜 산에 잘 못 올라가요. 그래서 따라와도 지루할 텐데... 야간 산행을 좋아한다는 남자는 산 초입에서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어색한 사이여서라기 보다 둘 다 숨쉬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땀샘이 폭발했나 봐요. 남자의 머리 위에만 비가 내리고 있는지 얼굴에서 땀을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놀란 얼굴의 여자를 보자 남자는 쑥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야간 산행 좋아 한다더니 해보신 건 맞아요? 야간에도 거의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그 산은 야간산행 명소로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큼성큼 그들을 앞질러 가고 있었다. 한 길로 비켜서서 잠깐 쉬고 있는 사이, 남자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물을 꺼냈다. 열려진 지퍼 사이로 가방 안에 빽빽하게 들어찬 생수병이 보였다. 아니, 물을 몇 명이나 들고 온 거예요? 아, 뭐... 목 마를 텐데 물드세요. 남자가 뚜껑을 열어 생수병을 여자 앞에 내밀었다. 제가 마신 건 제가 들고 갈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한사코 여자의 물병을 뺏어서는 가방에 넣고 앞장서는 남자의 등에 여자가 손을 뻗었다. 어.. 어.. 가방을 손으로 잡자 남자가 뒤로 휘청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오신 거예요? 가방은 여자가 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이거 메고 올라가다가 뒤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남자는 급하게 몸을 돌리고 산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지금 본인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 보인다구요...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남자는 생수가 가득 든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쉴 때 마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 여자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는 여자 옆에 서서 부채를 힘차게 흔들었다. 아, 제가 더워서... 하지만 남자의 말과 달리 바람은 여자를 향해 불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물을 꿀떡꿀떡 마셨다. 남자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저 여자가 물을 많이 마시는 것만이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나 덜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야간 산행을 즐긴다는 남자는 언젠가 부터 운동코치처럼 여자 옆에 붙어 서서 물과 주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주고 있었다. 지금 나 운동 시키는 거야? 무슨 선수 키우는 거냐고? 아니, 아니. 사람들이 쳐다 볼까봐 민망해 죽겠네. 내가 어디 운동 근처라도 있게 생겼으면 또 몰라. 아, 진짜 부끄럽게. 뭐, 어때서? 힘들잖아... 누구보다는 괜찮아.




시부모님을 보며 그 때의 남편이 떠올랐다. 여자를 위해 무거운 가방을 웃으면서 매고 오던 남편을. 자신을 격려해주던 그런 남편 말이다. 여자는 남편의 그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부모님께도 잘 해야 하는 건데... 시아버지의 말대로 ‘값’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자의 마음에 그 말은 너무 무겁게 내려앉고 말았다. 살면서 너무 힘들었던 순간마다 여자는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 값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건 빚이 쌓여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빚이 쌓여 가고 있는 것일까.



내일 하루 더 쉰다고 했지? 네. 그럼 어른 들게 인사드리러 가야지. 아직 처가에도 못 갔는데. 그 때 남편이 의아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 말속에는 도대체 어른들이 누구냐는 의문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너희들이 폐백을 안 해서 말이야 여기 큰아버지네 하고, 저기 큰어머니한테 절도 못하고 갔잖아. 시어머니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여지’ ‘저기’를 짚고 있었다. 절도 하고 내일 찾아가 봐야지. 네. 그리고 너희들 말이야. 어머님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뭐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버님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할머니, **이 할머니 산소에도 둘이 가서 인사드려야지. 너도 기억나지.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예뻐하셨냐?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아버님은 잠시 옛 생각에 잠긴 듯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너희 엄마가 말이야 너희 누나 셋을 낳고 너는 안 낳겠다고 했을 때 할머니가 난리가 났었어. 당신은 기억나지? 아이고, 내가 왜 기억이 안 나겠어요. 어머님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아마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이는 세상 구경도 못했어. 그러니깐 너희 둘이 꼭 인사드리러 가야한다. 알겠지.



그래, 뭐... 우리 **이가 돈도 잘 벌고 하니깐 걱정 없다. 둘이 잘 살거라. 지방에 잠깐 내려갔다가 절 받으러 왔다면서 허겁지겁 현관문에 들어서는 큰아버지는 여자와 남편을 보자 소파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자가 몸을 돌려 큰어머니를 보자 시어머니와 나란히 서있던 큰어머니는 손을 크게 내젓고 있었다. 부모님께도 해본 적이 없는 절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공손하게 올리고 있는 여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를 끄덕이던 큰아버지는 그 한마디를 던져놓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아이고, 아들 장가보내는 게 보통일이 아니지? 고생 많았겠네. 우리 **이가 착실하게 돈 많이 모아 놨나 보네. 이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장가를 가고 말이야. 요즘은 아들 장가보내는 게 보통일이 아니잖아. 안 그래? 네, 그렇죠. 큰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사이가 좋지 않은 터라 시어머니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여자와 남편은 말없이 앉아 있었고, 시어머니와 큰어머니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가 듣기에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애들이 지들끼리 알아서 했다 라든가, 둘이 조금씩 합쳐서 그럭저럭 살기로 했다 라든가 그래서 시부모님께서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부조금만 챙기셨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돈도 많이 버는데다가 착실하게 모아서 결혼한 착한 아들이 되었고, 시부모님은 아들 장가보내기 힘든 세상에 주위에 아쉬운 소리 한 번 안하고 큰 일 치른 어진 부모님이 되었다. 여자는 그저... 남편과 시부모님께 잘해야 하는 며느리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여자는 괜스레 큰아버지에게 자신이 올린 절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폐백이었다면 받았을 절값도 당연히 없었을 뿐만 아니라 테이블 위도 차 한잔도 없이 내내 깨끗했다. 시댁에서 며느리는 손님이 될 수 없었다.



다음은 차를 타고 조금 더 가야 했다. 오는동안 차에서 시어머니에게 말을 걸던 여자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직 한군데가 더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큰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가시고, 여자와 남편, 시어머니를 맞아준 건 혼자 있는 큰어머니였다. 그래서 절은 하지 말라고 했다. 배고플 테니 얼른 밥이 차리겠다고 부엌으로 들어가기가 바빴다. 겨우 부엌에서 큰어머니를 끌어내다시피 한 시어머니의 눈짓에 여자와 남편이 얼른 절을 했다. 아이고 그래, **엄마가 **이 낳았다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벌써 이렇게 장가를 갔구나. 아이고, 형님도 참. 별소리를 다 하시네요. 그 때 얼마나 좋아했어, 응? 잊어버리지도 않으셨어요? 우리 **이 낳고 너희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했어. 큰어머니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여자를 보며 연신 자신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내가 다 눈물이 나던데 어떻게 잊어버려... 아니면 맛있는 거 시켜줄게. 여기까지 왔는데 저녁은 먹고 가야지. 새사람이 들어왔는데 내가 밥이라도 먹여서 보내야 마음이 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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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편을 보았다. 누나 셋에 막내아들 이라는 말에 여자는, 그럼 엄청 귀한 아들이구나 했었다. 누나들 쫄따구지 뭐, 귀한 아들 무슨. 손사래를 치던 남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이 터울도 고만고만한 딸 셋을 내리 낳고 더 이상 낳지 않겠다고 했을 때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난리를 쳤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없었을 남편에게 산소에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올리라고 했지만, 아들을 낳으라고 다그치는 할머니가 시어머니에게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감정 표현이 거의 없으신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했다니... 여자는 시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시할머니도 며느리였고 시어머니도 며느리였고 여자도 이제 며느리가 되었다. 하지만 여자는 며느리가 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맨날 남의 집 일에 여자들만 난리라니... 응? 뭐라고 했어? 아니...아무래도 어머님한테 치러야 할 아들 키운 값은 너무 비쌀 것 같아서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너무 귀한 아들이랑 결혼 한 거 같단 말이지. 여보는 어제 큰어머니가 하신 말씀 기억 안나? 아니야, 나는 우리집 심부름꾼이었다니깐 무슨 소리야. 혹시 어머님은 아들 장가보내기 싫으셨던 거 아니야? 어머님이 여보한테 결혼 하라고 하신 적 있어? 음... 아니, 없는 거 같은데. 진짜? 보통 부모님들은 그런 말 다 하시지 않아? 서른만 넘어가도 다들 걱정하신다 는데. 그래? 난 잘 몰라서... 어쨌든 우리 집은 안 그랬어. 형님들은 다 일찍 결혼 하신 걸 보면 어머님은 아무래도 아들은 평생 장가 안보내고 데리고 살고 싶으셨나보다. 그래? 아니면 그렇게 나한테 냉정 하실 수가 없지.



옛날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아들이 부엌에 있는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얼른 참한 색시 데려와서 엄마한테 효도할게 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그 장면은 꼭 아들가진 엄마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장면이었다. 여자의 나이에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아들들이 이제는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새로운 가정을 이뤄서 잘 살겠다고 한다. 여자의 시어머니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마음으로는 아직도 절대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그래서 표현하지 않기 위해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냉정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을 지도.



며느리가 된 여자 역시 그저 자기만의 계산법으로, 시부모님께 섭섭한 마음이 생길 때면 남편을 생각해서 좀 빼고, 시어머니도 한 때는 며느리였으니까 그 동질감으로 좀 빼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좀 줄어들어 있기를... 그렇게 자기 마음도 좀 달래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저 그 방법뿐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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