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플라워 쇼와 첼시인 블룸 구경가기
Chelsea flower show & Chelea in bloom
The RHS Chelsea Flower Show 2022 / RHS Gardening
24~28, May, 2022
나에게 꽃꽂이는 정원의 재현 이었다. 내가 꿈꿔마지 않던 이상적인 공간, 나에게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공간이 바로 정원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그리워 할 고향 마저 없는 나라도 언제나 마음속에 서정적인 풍경하나 쯤은 품고 사는 것이다. 나의 그 풍경은 언제나 꽃으로 가득차 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런던은 공기마저도 향기로워 진다. 꽃향기 가득한 런던의 공기는 바로 템즈강변 첼시_Chelea 지역에서 열리는 첼시 플라워 쇼_Chelsea flower show 덕분이다. 1800년대 초반 시작된 이 플라워 쇼는 1,2차 세계대전 때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2020년에는 온라인으로, 2021년에는 가을에 개최되었다. 다행이 올해는 개최시기가 다시 5월 하순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다시 봄바람에 섞인 꽃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첼시플라워쇼는 세계최대의정원, 꽃박람회다. 축제 기간 내내 영국 내에서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꽃축제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사흘간의 행사기간 동안 입장객수가 제한 되어 있고, 첫째날은 플라워 쇼를 주관하는 영국왕립원예협회(RHS:Royal Horticulture Society)회원에 한해 입장에 한정되어 있다. 게다가 마지막 날은 할인된 가격으로 전시품과 식물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예매 경쟁이 치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나는 일찌감치 표를 예매해놓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 앉히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올데이 티켓_all day ticket과 오후 3시 이후에 입장이 가능한 두 가지 종류의 티켓이 있는데, 플라워 쇼를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다면 그 하루라는 시간이 플라워쇼를 구석구석 둘러 보기에는 너무 짧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무슨 전쟁에라도 나가는 사람 처럼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표를 챙겨 집을 나섰다. 꽃이 일이 되었을 때 나는 언제나 편안하고 행복했다기 보다 쓸데없이 비장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성격탓도 있겠지만, 찰나의 아름다움을 다루는직업적 특성이 나를 더욱 더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첼시 플라워쇼는 첼시 지역의 영국 왕립 병원_Royal hospial 자리에서 진행된다. 런던에서 넓게 펼쳐진 공원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평소에는 별로 넓지 않은 공간처럼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나는 현실감각을 상실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들이 펼쳐진 곳에서 정신없이 헤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플라워쇼는 새로운 품종을 선보이는 자리였지만 1900년 대 이후 디자인을 함께 선보이면서 지금의 규모에 이르렀다고 한다. 디자이너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새로운 꽃과 식물을 육종하게 하고, 또 새로운 식물이 다양한 디자인을 탄생하게 만드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였을것이다. 나 역시 꽃일을 하면서 꽃시장에서 신품종의 꽃을 만날 때 가장 기뻐했다. 30여개가 넘는 크고 작은 쇼가든, 플라워 디자인 작품. 새롭게 개발된 꽃과 식물들 그리고 농작물을 비롯해 가드닝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도 있다. 쇼가든은 야외에 설치되어 있고, 그 외에는 여러개의 대형 천막(파빌리온) 안에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 중 가드닝 용품을 판매하는 곳에는 탐나는 물건들이 끝도없이 늘어서 있어서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라고 해도 전혀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뿐만아니라 런던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명 플라워숍의 부스도 마련되어 있었고 플로리스트들의 디자인 시연을 보거나 사인을 받을 수도 있었다. 열심히 시연을 보고 있던 나는 완성된 작품을 선물로 받게 될 사람을 뽑아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나를 불러냈을 때 기쁘게 응했지만 추첨을 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실망감이란... 이렇듯 볼 것이 너무 많아 어디를 먼저 가야 할지 우왕좌왕 하다보면 사람들에 떠밀려 정처없이 헤메고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정신을 점점 아찔하게 만드는 꽃향기를 물리치고 먼저 지도를 꺼내 들기를 권한다. 행사장 안 뿐만아니라, 이벤트 내용까지 대략적으로 훑어 본 후 동선을 짜고 한 발 내딛는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플라워 쇼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정작 나의 두 발은 정신없이 쇼가든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한 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정원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말 그대로 ‘보는 정원’이라 정원 안을 둘러보거나 꽃향기를 맡을 수 없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미술관의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정원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 안에 심겨진 식물의 종류까지도 세삼하게 고른 흔적이 역력했다. 영국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영국의 자생식물로 만 이루어진 정원도 있었고, 보자마자 먼 이국의 땅을 떠 올릴 정원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동화속에서 막 튀어 나온 듯한 아기자기 한 느낌의 정원도 있었다. 뿐만아니라 환경과 생태적인 정원을 만들고자 ‘지속가능한’ 정원의 모델이 제시되기도 한다. 이미 학부시절부터 많이 들어왔던 ‘생태적인 공간’, ‘지속가능한 공간’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인 것이다.
식물이나 꽃 만큼 ‘때’가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딱 적당하게 피워서 정원을 밝히고 있는 꽃을 보자니 준비한 사람들의 노고가 저절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원에 어울릴 만한 식물을 찾아내고,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진지한 모습으로 정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렇게 플라워 쇼는 특정 직업군의 관심뿐만 아니라 생활가까이에서 영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서 정원을 둘러보고 나면, 직업적인 관심으로 눈이 한 층 더 커지는 꽃꽂이 작품을 구경하면 된다. 영국에서는 꽃꽂이를 플라워 어렌지먼트_Flower Arrangement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꽂는 행위만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닌 정리와 배열이라는 디자인의 개념이 더해진 용어인 것이다.꽃꽂이 작품역시 쇼가든처럼 금,은,동메달 수상작이 표시되어 있었다. 무심코 둘러보다가 금메달이라도 보게 되면 작품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는게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아무래도 대회출품 작품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꽃집에서 판매되는 상품과 다르게 기하하적 구성이라든가, 와이어를 많이 사용하는 테크닉적인 작품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작품과는 좀 차이가 있지만 창의적이고 배울거리가 많아 열심히 둘러 보았다.
정원과 정원 사이, 천막과 천막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다 지칠때 쯤 플로리스트의 꽃꽂이 시연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편안한 차림의 할머니나 어머니 연령대의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들 어찌나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보고 있는지 천막안은 발디딜 팀이 없이 꽉차 있었지만 강사의 목소리 외에는 고요하기만 했다. 뿐만아니라 내용역시 전혀 초보자들을 위한 꽃꽂이가 아니였다. 플로리스트가 마치 공연이라도 하는 것처럼 리드미컬하게 꽃을 꽂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쉽게 자리를 떠날 수 없었지만, 꽃이 얼마나 영국인들의 일상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작품집으로만 보던 유명 플로리스트라도 만나게 되면 연예인을 봐도 생기지 않던 용기가 불끈 솟아 싸인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다시 없을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이 소심한 나를 용기있게 만드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발길이 판매부스가 늘어서 있는 박람회장 내 마켓에 도착 할 때쯤이면 지쳐서 내 힘으로는 한발 한 발 내딛기 조차 힘든 지경이 된다. 하지만 언제나 박물관보다 기념품샵에서 더 눈이 반짝반짝하고, 런던 곳곳에 숨어 있는 마켓은 다 돌아봐야 하는 나는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또 다른 힘이 솟아 나는 것을 느꼈다. 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가드닝 용품 뿐만아니라 전문 서적, 옷까지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두 손을 가득 채우고 싶을때는 내 집을 멀리 떠나온 신세를 잊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구경은 실컷 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마음을 달래는 수 밖에 없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그림자가 길어질 때 쯤이면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한다.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또다른 꽃과 정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전혀 실망 할 필요가 없다.
첼시플라워쇼를 구경하지 못했다고 해서 전혀 실망할 필요는 없다. 뿐만아니라 나처럼 그 여운을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위안거리가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참관하는 개막식부터 행사내내 첼시플라워쇼가 BBC에서 생중계 될 뿐만 아니라, 정원 디자이너나 플로리스트, 새로운 식물에 대한 관련 영상이 계속해서 TV에서 방송된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첼시 지역 일대가 꽃으로 물드는 첼시인 블룸_Chelea in bloom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첼시 플라워 쇼를 가지 않고도, 플라워 쇼의 분위기를 한 껏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첼시인 블룸이다. 슬론 스퀘어 역 주변인 슬론 스트리트_Sloane street, 슬론 스퀘어_Sloane square, 듀크 오브 요크 스퀘어_Duke of york square 주변의 모든 숍들이 꽃으로 아름답게 단장된다. 각각 브랜드가 가지는 고유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도, 그 해의 주제를 다양하게 꽃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길을 따라 죽 늘어선 모습은 전시장안의 작품들과 또 다른 활력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길을 걷다 보면 큰 규모의 브랜드 숍 뿐만 아니라 작은 서점까지도 그에 걸맞는 꽃 장식을 선보이고 있었다. 플라워 쇼장 만큼이나 일일이 다 담아내기 힘들만큼 멋진 모습으로 단장한 숍들이 각자의 분위기에 걸맞는 모습으로 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수준높은 디자인 뿐만아니라 엄청난 물량공세에 나는 구경하는 내내 머리를 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첼시 뿐만 아니라 런던 시내 곳곳에서도 꽃으로 장식된 멋진 가게들을 구경할 수 있다. 꽃으로 덮여있는 길을 걷고 있자니 걸음을 떼는 것이 아쉬워 자꾸만 멈춰서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꽃구경을 위해 돌아보아야 할 곳이 런던에는 많이 남아 있다.
해마다 첼시플라워쇼를 통해 오디션 프로그램 처럼 새로운 스타 디자이너와 스타 식물이 탄생한다. 사람들은 전시되어 있는 식물을 내 집 정원에 심어 보기도 하고, 어떤 꽃들을 함께심을 것인지, 정원 어디에 심을 것인지 고민하며 플라워쇼에서 보았던 디자인들을 떠올릴 것이다. 정원문화 혹은 원예문화가 성숙할대로 성숙한 나라 영국, 과연 그 성숙하다는 말의 의미는 뭘까? '금방 시들어버릴 꽃인데 뭘 돈을 주고 사냐' 라든가 '그 돈으로 차라리 먹는 걸 사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은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말이다. 즉 꽃의 아름다움이 주는 가치를 알고, 그 행복을 누릴 줄 알며, 그 행복이 단순히 먹는것 처럼 직접적이지 않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가치를 알기에 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진지하고 또 행복하다. 그래서 나도 그곳에서 많은 고민없이 행복할 수 있었다. 이제 봄이 오고 있다. 꽃을 보고 그저 행복할 수 있기를... 많은 고민들은 잠시 내려놓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 먼길을 갔던 건 아니였을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플라워 쇼장 앞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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